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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제혁 Jul 07. 2023

이번 생에는 췌장담도 의사로 살겠습니다.

응급으로 해야 하는 시술. 췌장담도 내시경(ERCP, EUS)

저는 췌장담도 의사입니다. 췌장은 각종 소화 효소와 인슐린을 분비하여 장내 음식물을 분해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담도는 담즙이 흘러서 십이지장유두부로 내려가는 길을 말합니다.  췌장과 담도가 담석 등으로 막히면 그 상방에서 담즙이 흘러 내려가지 못해 담도염이 생기고, 그 부위를 ERCP라고 부르는 특수내시경을 통해 뚫어주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2018년부터 시술한 ERCP 개수를 세어보니 어느새 3000개 가까이 시술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ERCP를 많이 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열심히 배웠고,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를 살리기도 하였으나, 천공 확률이 0.1~1% 가까이 되는 워낙 위험한 시술인지라,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경우도 안타깝게 있습니다.

치료가 잘 되어 환자가 좋아지면 의사도, 환자도 좋지만, 예상하지 못한 합병증이 발생하여 환자가 나빠질 경우, 의사의 마음 또한 너무 아픕니다. 의사라는 존재는 처음 보는 환자라도 아파서 병원에 오면 그분이 대통령이든, 범죄자든 상관없이 그냥 그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췌장담도 의사가 된 이유는, 요즘 말하는 필수진료의사가 된 이유는........

ERCP, EUS는 다른 소화기내과 선생님들이 꺼리는 위험한 시술이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시술이 성공할 경우, 극적으로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이 좋아지고 퇴원하여 외래로 와서 고맙다는 한마디를  해주시면, 그동안 힘든 게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이런 의사의 마음을 환자와 보호자들이 꼭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작년(2022년)에 '췌장담도 내시경 인증의'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전국에 대학병원 교수님들 포함해서, 충분히 췌장담도 내시경을 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자격증입니다. 저도 그동안 열심히 시술을 해서 받을 수 있었고, 전국에 약 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잘 모르더라도, ERCP를 하는 의사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오후 눈이 노란 황달 환자가 외래로 왔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가족과의 저녁식사 시간이 소중합니다. 하지만, 이 환자분의 신체상태와 피검사결과(빌리루빈 정상수치가 1.2 정도인데 이 환자는 10이 넘었습니다.), CT를 종합하였을 때 오늘 저녁에 시술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것으로 판단되어 ERCP를 오후 늦게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시술을 잘 되어 담석을 부수는 데 성공하였고 (아래 그림 참조), 회진을 돌 때 환자분은 속이 편안하다고 웃으셨습니다.

단단한 담도의 돌을 부수고 있는 ERCP 시술

제가 오늘 집에 온 시간은 저녁 8시였습니다...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식사도 못하였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췌장담도 의사이기 때문에 저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시술을 하였습니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는 '필수진료 의사'에 대해서 사회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이렇게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저에게도 '췌장담도의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혹 생깁니다. 시술이 생각보다 잘 안 되었을 때, 환자가 제 생각과 달리 나빠졌을 때,  보호자들의 질책이 너무 심할 때.....

나름 시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고, 열심히 공부해도 합병증은 시술을 많이 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 그냥 위내시경, 대장내시경만 하고 지낼걸... 왜 힘든 ERCP를 배워서 이런 책망을 들어야 할까...'

하지만 저에게만 5년 가까이 다니면서 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십이지장 유두부암 환자, 대장암으로 인해 1달간 변을 못 봐서 대장이 거의 막혔지만, 극적으로 스텐트를 넣는 데 성공한 환자, 제가 어디를 가든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담석 환자, 췌관이 막혀 췌관스텐트를 수개월 마다 꼭 교체해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저에게 이번 생애에 주어진 '췌장담도 의사'의 사명을 쉽게 버리긴 힘듭니다......


의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필수의료 의사가 바라는 건 하나입니다.  의사를 범죄자로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자가 나빠지면 의사도 너무 슬프다는 것을 꼭 알아주시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의사와 환자는 어떤 경우에도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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