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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제혁 Feb 23. 2021

고맙습니다. 덕분에 의사임을 느낍니다.


다니는 병원을 1년 만에 옮기기로 했다.

병원을 옮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동안 진료를 보았던 환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이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제가 2월까지만 근무하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좋은 선생님 외래 잡아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외래 때 오세요."

"예? 선생님? 정들만하니 그만두시니 너무 섭섭하네요. 잘 지내세요."

이렇게 말하실 때는 그래도 다행이다.


"네?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 평택으로 가는 데 머니까 여기서 진료 계속 받으세요."

" 왜 그렇게 멀리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몸이 정말 아프면 그쪽으로 갈게요."

 이런 경우도 많이 미안하긴 하다.

그런데...

"......... 예? 어디로 가시는 데요. 병원 이름이 뭔가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평택인데.. 좀 멀죠? 여기서 다니셔도 괜찮을 거예요. 많이 좋아지셨어요..."

"병원 이름이 뭔가요? 꼭 과장님께 진료를 계속 받고 싶습니다. 가르쳐주세요."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이런 경우는 내시경 시술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수 있거나, 아니면 내시경 시술이 잘 돼서 회복이 생각보다 잘 된 경우이다. 사실 현재 다니고 있는 병원에 계속 다니는 게 환자 입장에서 가장 편할 텐데, 따라오겠다고 하는 데 어쩌랴.... 이런 경우는 병원 이름을 가르쳐 드릴 수밖에 없다. 병원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나중에 인터넷 검색해서 오실 것이므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분은 술에 의한 급성 췌장염으로 인해 입원했던 39세 남자 환자이다. 20대 중반 이후 매일 소주를 3-4병씩 마셨고, 2년 전에 췌장염을 진단받았다. 이후 음주량을 줄였으나, 여전히 1주일에 2-3회 정도 술을 마시다가 2020년 8월 말에 보라매병원 내원 후, 입원병실이 없어 본원으로 전원 되었다. 입원 후 열이 나고 염증 수치가 높아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였다. 2일이 지났을 때 CRP라는 염증 수치는 무려 35.02 mg/dL(정상은 0.30 mg./dL 이내) , 황달 수치인 Total biliruin 은 6.03 mg/dL(정상은 1.20mg/dL 이내)까지 상승하고, 환자의 몸은 노랗게 변하고 전신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시행한 피검사에서 황달수치가 무려 10.01 mg/dL까지 상승하고 염증 수치는 39.00 mg/dL 까지 상승하여 복부 CT를 시행하였다. 복부 CT에서 췌장의 머리에 이전과 달리 약 5cm 크기의 커다란 병변이 생겼고, 이는 acute necrotic collection이라고 불리는 췌장의 괴사성 변화 (췌장의 급성 합병증의 일종이다.)가 생긴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화살표로 표시된 부위가 췌장의 괴사성 변화가 의심되는 부위이다.

아마 이 병변으로 인해 췌장 내부의 담도가 막히면서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잘 흐르지 않아 황달이 생기고 췌장염뿐만이  아니고 담도염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더 기다릴 순 없었고, ERCP(역행성 담췌관 조영술)라는 시술을 통해 좁아진 담관에 스텐트를 넣어서 담즙이 배출되도록 해야 했다.

환자와 보호자(환자의 어머니) 에게 시술 필요성을 여러 번 설명하였으나, 환자 보호자는 보라매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쪽 병원의 병실이 없어 이쪽으로 온 거고, 상급종합병원은 병실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가야 하며, 그냥 가면 입원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수차례 설명하였고, 그동안 ERCP 시술을 대학병원에서 충분히 하였기에 믿어도 된다고 설명하였으나, 환자 보호자는 서울대병원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믿고 오전 10시경에 퇴원하였다.

그 날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바쁘게 내시경을 하고 있는 데 연락이 왔다. 환자가 보라매병원에서 입원이 어렵다고 하여 다시 오고 싶다는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의사의 동의 없이 떠난 환자의 경우, 진료를 보기 난감해진다. 다시 본인 마음대로 할 경우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건을 달았다.

"여기 다시 올 순 있는 데, 입원을 하게 되면 제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동의를 하셔야 합니다. 다시 그런 일이 있다면 입원은 어렵습니다."

불과 30분도 안 돼서 환자가 왔고, 환자의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다음 날 ERCP를 시행하였고, 췌장의 괴사로 인해 십이지장 벽이 부어있었고, 십이지장으로의 내시경 통과가 쉽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십이지 장경(ERCP를 위한 내시경을 말한다.) 은 십이지장 2부에서 단축이 가능하나, 이분은 불가능하였다. 단축이 되면 내시경으로 인한 통증이 경감되나, 단축이 되지 않는 경우 내시경이 위 내에서 위를 계속 밀게 되어 시술이 매우 어렵고 환자도 통증을 심하게 호소한다. 진정 내시경(환자들이 흔히 수면 내시경이라고 불리는 말이다.) 이어도 통증은 느낄 수 있다.  

정상적으로 내시경이 단축된 모습. 이런 경우는 환자가 통증이 심하지 않아 시술이 용이하다.
내시경 단축이 되지 않은 모습. 이경우 환자의 통증이 심해 계속 움직여 시술 난이도는 올라간다.
췌장 주변의 괴사로 인해 십이지장이 부어 있다.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였으나 시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위험할 수 있기에 조심하면서 부어 있는 십이지장을 통과하여 십이지장 2부의 유두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십이지장은 1부~4부까지 나뉘며, 2부에 담즙이 배출되는 곳인 유두부가 있다.) 유두부에서 탁한 색깔의 담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도에서 십이지장으로 담즙이 빠져나가는 십이지장 유두부의 모습

내시경이 고정되지 않았기에 간호사에게  내시경을 단단히 잡아달라고 부탁하였고, 조심스럽게 담관 입구를 찾아 카테터라고 불리는 관을 삽입하였다. 췌관과 담관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췌관을 건드릴 경우 췌장염을 더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시술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담관으로 카테터가 들어갔고, 담관을 관찰하였을 때 담관 아래쪽이 췌장염으로 인해 좁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관을 조영하여 x-ray 로 확인하는 모습. 위쪽 담관과 비교해서 아래쪽 담관은 막혀 있다.

좁아진 담관에 스텐트라고 불리는 플라스틱관을 삽입하면, 그 관을 통해 담즙이 배출돼서 담도염이 호전되게 된다. 환자의 고통을 달래주면서 조심스럽게 담관 스텐트를 삽입하였다.

담관 내부에 플라스틱 스텐트를 삽입한 모습. 이 스텐트를 통해 담즙이 배출된다.

다음 날 시행한 검사에서 CRP는 11.19 mg/dL, Total biliruin 은 5.80 mg/dL로 호전되었고,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황달은 사라졌고, CRP는 0.74 mg/dL까지 좋아졌다. 이때 CT를 다시 추적 관찰하였고, 약 5cm 크기의 췌장 머리 쪽에 물혹처럼 보이는 병변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췌장의 괴사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화살표로 표시된 부위가 약 5cm 크기의 췌장 괴사 병변이다.

이때, 환자는 식사에 어려움이 없었고, 전신 상태도 양호했다. 피검사 결과도 좋아져서 퇴원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경우 췌장 머리의 병변이 호전되는지 추후 추적관찰이 꼭 필요하였다. 만약 병변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이 병변 내부에 스텐트를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였고, 환자와 보호자는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었다. 퇴원 후 약 1달 후에 CT를 시행하였다. 1달 후 시행한 CT를 보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였다.

"축하드립니다. 췌장의 괴사 병변이 많이 줄어들어서 추가 시술을 필요하지 않고 약 1달 후에 스텐트를 제거하면 되겠습니다."

보호자와 환자는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말하였다. 나 또한 내 환자가, 나의 도움으로 인해 좋아져서 정말 기뻤다. 다른 병원에 갔어도 치료가 잘 되었겠지만, 나의 도움으로 인해 이 환자는 회복할 수 있었다.

위의 사진과 비교해볼때, 췌장 머리쪽 괴사가 좋아져서 담관 스텐트도 확인이 가능하다.

직업윤리란 '직업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덕적 가치관'이다. 내가 소화기내과 중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췌장, 담도 파트를 하는 이유도 직업윤리와 관련이 있다. 시술이 어렵긴 하지만, 성공해서 환자가 좋아져 퇴원하고, 이후에도 나를 믿고 따라와 줄 때, 환자뿐만이 아니고  환자 가족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느끼게 된다.

2021년 2월 18일은 이 환자의 마지막 진료를 본 날이었다. 1월 말에 환자에게 내가 다른 병원에 가기로 했고, 환자는 좋아졌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 병원에서 추적관찰을 받으라고 설명을 드렸다.  황달 수치가 조금 올라가 있고, 당뇨병 전 단계가 의심되어 2월 18일에 다시 진료를 보기로 하였다.

환자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똑바로 보며 말하였다.

환자-"안녕하세요. 저희 가족은 선생님 따라 평택에 가기로 했어요."

"네? 평택에 이사 오신다고요?"

환자-"아니요. 멀긴 하지만 선생님께 진료받으려고 합니다..."

"아니, 이제 상태가 좋아져서 저한테 안 오셔도 됩니다...."

환자-"아닙니다. 멀어도 선생님께 다니고 싶습니다......"

".... 알겠습니다. 서류를 복사해서 올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오세요. 제가 기록을 다 알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때 뵙겠습니다."

환자-"정말 감사합니다. 평택에서 뵐게요."

이미 대전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몇 번 겪었고, 몇 명의 환자가 나를 따라왔다. 그때도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하였지만,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1년 간 짧게 있었지만,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내가 의사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믿어주셨던 모든 환자들에게 글로나마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의사임을 느낍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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