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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제혁 Jul 30. 2020

환자가 수줍은 웃음을 지었을 때


“내리실 역은 대전, 대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고속철도를 내려 대전역에 도착한 후 나는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들어오는 지하철을 놓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 가장 빠르게 뛰었다.

지하철을 간신히 탄 후, 나는 전화를 걸었다. “백선생! 지금 혈압이 얼마인가요?” “예, 현재 혈압은 60/40 mmHg이고, 노르핀(norpine) 은 이제 막 달았습니다.” “내가 30분 안에 갈 테니 내시경실로 환자를 내리고, 선생님은 바이탈 좀 잡아주세요!”

 일반적으로 수축기 혈압이 140 mmHg, 이완기 혈압이 90 mmHg을 넘으면 고혈압이라고 하며, 수축기 혈압이 80 mmHg, 이완기 혈압이 50 mHg 미만이면 저혈압이라고 한다. 이 환자분은 현재 저혈압상태인데, 그냥 저혈압이 온 것이 아니고 패혈성 쇼크가 온 것이다.

패혈증 (sepsis) 은 인체에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이 혈액에 감염됨으로써 나타나는 전신의 염증반응을 말한다. 이 패혈증이 악화될 경우, 심장과 혈관에 영향을 미쳐 혈압이 떨어지는 것이 패혈성 쇼크이다. 패혈성 쇼크를 치료해주려면 원인을 교정해주어야 하는 데, 내가 이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이 패혈성 쇼크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담관염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이다.

이 환자는 약 2달 전에 담관에 돌이 생겨 담관이 막혔고, 담즙이 아래로 흘러내려가지 않아 발생한 담관염으로 인해 내시경 역행 담췌관 조영술, 줄여서 췌담도 내시경이라는 시술을 통해 담관의 돌을 제거하였다. 이후 담낭 내에 돌이 확인되어 복강경으로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담관은 담즙이 내려가는 길이며, 담낭과 연결되어 있다. 담관염을 앓았던 분들은 담낭 내에 돌이 있을 경우, 담낭관을 통해 담관으로 돌이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 담낭 절제술을 추천한다.) 담낭절제술 이후에 특별한 증상이 없었으나, 1주일 전부터 복부 불편감이 있어 금요일 오전에 외래를 방문하였고, 외래에서 시행한 피검사에서 경미한 염증 수치의 상승 외에 특이소견은 없었다. 하지만 전산화 단층촬영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CT 를 말한다)에서 수술 후 잘려진 담낭관 부위에 염증이 의심되어 영상의학과 선생님과 상의하였고, 수술 후에 그런 경우가 간혹 있어 항생제를 쓰면서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나는 뭔가 께름칙해서 (의사의 감이라고 표현해야 할 거 같다.) 입원해서 경과를 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환자분에게 말했고, 환자는 옆에 있는 4살 먹는 아이를 가리키며 ‘제가 또 입원하면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입원이 어려울 거 같아요.’ 라고 말하며 입원을 거부하였다. 환자에게 아프거나 열이 나면 꼭 오라는 말과 함께 약을 처방하고 귀가시켰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에 전공의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다. 통증이 반복되어 현재 응급실에 방문했는데, 입원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제와 피검사가 비슷하려거니… 하며 알겠다고 하였다. 다음 날 환자 상태를 노티하라는 당부와 함께.

 일요일에 다른 전공의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다. ‘36세 여자환자 *** 님은 AST/ALT (간수치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가 어제 464/241 IU/L 에서 265/370 IU/L 으로 떨어졌으나, Total bilirubin (이 수치가 올라가면 눈이 노래지는 황달이 발생한다.) 은 1.9 mg/dl 에서 3.9mg/dL 로 상승하였으며 C-reactive protein (염증수치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은 2.9 mg/dl 에서 14.8 mg/dl 로 상승했고, 열이 39도까지 나고, 심장박동수가 120회를 넘는다는 문자였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전화를 하여 복부 CT 를 바로 찍으라고 하였다. 시행한 복부 CT에서 담관이 2일 전에 찍은 CT에 비해 현저히 늘어나 있어, 담관이 막힌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경우 아직 혈압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패혈성 쇼크가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이런 경우 내시경을 해서 담관의 막힌 부위를 뚫어주지 않으면, 이 환자분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었다. 주말이라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겨우 오후 3시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환자는 시시각각 나빠져갔다.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다량의 수액을 주어서 혈압이 호전되었으나, 또다시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면서 의식이 처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계속 뛰어갔고, 5시 25분에 내시경실에 도착하였다.

 내시경실 앞에는 환자의 남편이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지난 번 입원 때에도 겁먹은 표정으로 서있었던 그 분은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정말 급하지만 환자 보호자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바로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아이에게도 ‘걱정마!’ 라고 한 마디를 하고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승압제 (환자의 혈압을 높이기 위해 쓰는 약을 말한다) 를 달고 다량의 수액을 맞고 있던 환자분의 혈압은 70/50 mmHg이었고, 혈압이 낮아 재우는 약을 쓸 수가 없어 환자에게 설명을 하며 검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 님, 저 왔어요.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내시경을 하면 금방 치료되는 데 수면으로 검사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빨리 할 테니 조금만 참아줘요.”

 환자의 의식은 명확하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였고, 검사를 진행하였다. 췌담도 내시경을 삽입하였고 (췌담도 내시경은 일반 내시경과 달리 렌즈가 내시경 옆에 있어 충분한 수련을 받은 후에 시술이 가능하다.) 이전 내시경 때와 다르게 유두부 (십이지장에 위치하며, 담관과 췌관이 내려오는 길이다.) 에 커다란 돌이 꽉 막혀 있었다.

유두부에 박혀 있는 돌(출처:google 검색)

돌을 피해 담관으로 유도철선을 통과시킨 후 풍선을 사용하여 이 돌을 제거하였고, 돌을 제거한 후 다량의 노란색의 고름이 나왔다. 췌담도 내시경을 한 후 이렇게 많은 양의 고름은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담관 담석 환자들은 담석이 아주 크진 않고, 담관을 완전히 막진 않지만, 이 환자의 경우에는 수술 후에 잘려진 담낭관에 돌이 있었고, 그 돌이 내려와 담관을 막으면서 담즙이 아래로 흘러내려가지 않아 급성 폐쇄성 화농성 담관염이라고 부르는 응급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급성 담관염 환자는 항생제만 사용하고 시술은 수일 후에 해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화농성 담관염이 발생하면, 의사는 시술 시기를 잘 판단해야 환자를 잃지 않는다.

 담관에서 다량의 고름을 제거한 후 시술을 종료하였고, 환자의 혈압이 낮아 중환자실로 옮겨 관찰하였다. 밤사이에 승압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정상 혈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환자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환자는 수일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1주일 후에 온 환자는 패혈증을 앓고 난 후라 얼굴이 해쓱했다. “** 님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안 아프지요?” 라고 말하면서 우측 배를 눌러보았고 (담낭과 담도가 있는 부위는 몸의 우측이다.) 환자분은 나를 보며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이제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정말 고마웠어요.” 라고 말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떠났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지?’ 라고 나에게 되물어 보았다.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해서 환자가 좋아졌을 때’ 라는 모범답안을 많은 의사들은 말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할 거 같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치료하고, 그 환자가 좋아져서 외래에 왔을 때 저를 보며 수줍게 웃고 그 가족 또한 행복해할 때’ 가장 행복하고, 존재 가치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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