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Oct 08. 2017

마음은 바다 위 한 척의 배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마음을 전하는데 서투르다. 남의 마음을 읽는데도 둔감하다. 사교성은 제로인데 영업 사원이고 밥을 먹을 땐 늘 혼자서 책과 함께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2013년 영화 '행복한 사전'을 이제서야 보았다. 마츠다 류헤이가 주인공 마지메 역할로 나오는데 어딘가 나와 많이 닮아 처음부터 마음이 뭉클했다. 이름부터 지루한(真面目, 마지메는 성실하다는 의미다) 마지메는 우연히 사전 편집부에 들어간다.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는 사실과, 오른쪽의 의미를 독특하게 풀이하는 솜씨를 보고 사전 편집부의 선배 아키라가 발탁해서다. 소위 왕따거나 오타쿠일 듯 보이는 캐리터지만 영화는 마지메를 사전과 만나게 함으로서 신선한 드라마를 뽑아낸다. 사람을 사전에 비유하면서, 사전을 사람에 비유하면서 서투른 인생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것이다. 마츠다 류헤이는 이 서투르면서도 어리숙한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한다. 말 못한 마음, 들켜버린 마음, 실패한 마음을 모두 품어낼 정도로 마츠다 류헤이의 그릇은 자못 커다랗다.  


영화는 대도해란 이름의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어를 수집하고, 용례를 만들고, 다른 사전과 비교해 차별점을 두는 작업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지루할 법한 일들이고 그럴만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꼼꼼하고 치밀하며 지난한 작업의 이야기를, 사전을 바다 위 한 척의 배에 비유하며 품을 키워간다. 여관에서 생활하는 마지메의 주인장은 마지메에게 말한다. 말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전하냐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말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의 자리를 사유한다. 단어를 수집하는 일은 곧 사람의 마음 한 조각 한 조각을 주고받는 일이고 사전을 만드는 일은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줄 단어 하나를 찾아 떠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전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마지메의 서툰 마음도 자리를 찾아간다.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 영화는 이 기적같은 일을 잔잔한 바다 물결의 리듬으로 일궈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실의 시간을 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