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Aug 06. 2017

상실의 시간을 살다

과거의 자락들은 과거의 나를 불러왔고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보듬었다

핸드폰을 바꿨다. 유심을 갈아 끼우고 이것저것을 세팅하자 오래 전 시간이 내게 다가왔다. 록밴드와 함께 남산 자락에서 촬영을 했던 날, 거리를 걷다 강아지에 셔터를 눌렀던 순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자 회견장에 앉아 한국어로 변환되어 전해지는 불어를 들었던 시간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 사진 한 장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마음이 덜컹 내려 앉는 것 같았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짜증이 다시 또 잔인하게 폐부를 찔러왔다. 지운줄 알았는데 남아 있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 해 겨울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와 누나들은 나를 대신해 신사동 집을 정리했다. 사람 없는 집에 월세를 낼 수는 없으니 급하게 처리를 한 것인데 고맙고 죄송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이사는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 타탄 체크 패턴의 꼼데 갸르송 숄더 백이 없어졌고, 검정 색의 페니 로퍼가 사라졌으며, 베이지와 아이보리 사이의 색을 하고 있는 메신저 백 역시 없어졌다. 이 상실의 리스트를 다 열거하면 끝이 없는데(그렇게 느껴지는데)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방이 다섯 개 이상, 신발이 세 켤레, 반 바지 및 옷가지가 대여섯 개, 라이언 맥긴리와 변순철 그리고 일본의 연예인 텟짱의 사진집과 몬드리안의 전시 도록, 그리고. 그리고. 상실의 자리는 왜 이토록 지독하나. 상실은 왜 내게서 멀어지지 않나.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고 내 삶은 도중에 멈춰버린 양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 여를 보냈다. 매일같이 주사를 맞았고 매일같이 약을 먹었다. 매일같이 검사를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내 삶의 시간만은 흐르지 않았다. TV를 보는 게 괴로웠고 주변의 소식을 듣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멀쩡한데 나만 폐렴에 걸린 것 같은 느낌, 이건 상행선에서 혼자 뒷걸음질을 치는 자동차의 꼴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은 내게만 적용되지 않았다. 그런 것 같았다. 일단은 퇴원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퇴원을 하고 보니 크나큰 상실이 내게 닥쳐왔다. 없어진 타탄 체크의 숄더 백에는 도쿄의 하라주쿠를 거닐던 나의 시간이 담겨있었고, 사라진 페니 로퍼에는 신발을 두고 나눴던 선배와의 대화가 깃들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서 없어지고 사라진 건 단지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시간이었고, 기억이었다. 없어졌다, 사라졌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실은 자욱을 남긴다. 없어지고, 사라진 상태가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시간은 매우 쓰디썼다. 


핸드폰을 바꿨다. 유심을 갈아 끼우고 이것저것을 세팅하자 오래 전 시간이 내게 다가왔다. 아이폰을 쓰던 시절 사용했던 것들의 기억이었는데 이 기억의 조각들은 나를 과거로, 이제는 평온해진 과거의 품으로 데려다 주었다. 연락이 뜸해진 친구와 나눴던 오래 전 문자의 대화, 뉴질랜드와 태국을 취재하며 남겼던 감정의 기록들, 수 년 전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들었던 곡들의 리스트와 장난 삼아 해보았던 카메라 보정 기능의 결과까지. 모든 게 따뜻했다. 모든 게 편안했다. 과거의 자락들은 과거의 나를 불러왔고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보듬었다. 상실의 형태는 결국 오늘의 상태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라짐으로 인해 상실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사라짐으로 인해 그 사라짐 이전의 상태가 존재했음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두 달여의 병원 생활은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잊고 살았던 많은 걸 되돌려 느끼게 해 주기도 하였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숄더 백 생각이 나거나 신을 만한 검정색 구두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면 짜증도 나고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존재가 있는 한 상실도 있고 상실로 인하여 존재는 더 빛을 발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쓰지만 쓰지 않은 게 인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Please Like 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