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Oct 24. 2017

I've Got Mail

메일과 메일 사이, 감정과 감정 사이의 텍스트

메일은 오지 않았다. 심야 중으로 보내겠다는 답변은 도착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 Zine을 발견해 주워 기쁘고 고맙다던 인사는 휘발된 지 오래다. 퍼블리에서 일본의 자비출판과 진에 관한 리포트를 쓰면서 수 통의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이번 리포트는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가능한한 많은 인터뷰를 하려고 작심했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일본어 자판을 두들겼고 수도 없이 'お世話になります(신세지겠습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진을 만드는 이토 콘도라는 여자 분의 소식이 끊겼다. 심야가 벌써 두 번이나 지났음에도 올 예정인 답변은 도착하지 않고 있다. 그냥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고간 대화의 무게가 꽤나 커 그렇게 되지 않는다. 확실한 거절의 의사가 없으면 그 메일은 아직 진행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콘도 씨는 아직 심야 중에 있다.


메일을 주고 받다 보면, 메일을 쓰다 보면 메일만이 전해주는 감정이란 게 있음을 느낀다. 인터뷰 장소를 정하면서 'OOさんの都合に合わせます(그 쪽의 상황에 맞출게요)'란 말을 자주 쓰는데 '중판미정'이란 책으로 자비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카와사키 쇼헤이는 '시부야라면 기뻐요(嬉しいです)'란 말로 답해왔다. 기쁘다는 말, 좋겠어요나 좋아요가 아닌 기뻐요라는 말. 여기엔 약간의 쑥스러움, 수줍음이 깃들여 있다. 결국 우리는 시부야에서 만났다. 더불어 화가 치미는 순간들도 있다. 거의 10여 차례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인터뷰 섭외에 공을 들였던 '브루타스'의 니시다 젠타 편집장. 그는 처음부터 완고했다. '대답 하고 안하고는 별개로 질문지를 부탁 드립니다'란 문장엔 오만이 가득 담겨있었고, 거절의 의사를 표하며 내세운 '당신에 대해서도, 퍼블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원래 메일 상으로 인터뷰는 하지 않습니다'란 이유는 애초에 했어야 할 말이었다. 나는 되받아쳤다. 메일에서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그럼에도 나는 또 메일을 쓴다. 메일에는 메일만이 가진 감정이 있고 현실적 물리적 거리를 무색하게 하는 감정의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 진을 만드는 또 다른 여자 키쿠치 유미코는 자신의 답변이 늦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며(출산, 도쿄 북아트페어 참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니터 상에, 활자 뿐인데도 그게 느껴진다. 게다가 메일은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브루타스, 뽀빠이에 일러스트를 그리는 여자 미야기 치카는 이미지와 답변을 잃어버린 내 실수에 조금의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수고스럽게 다시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 말해왔다. 그래서 쓰게된다. 그래서 신중하게 된다. 한 자, 한 자에 내 성질이 드러날까 조심하게 되고 한 자, 한 자에 내 기분을 잘 담으려 애를 쓴다. 메일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그녀의 맘이 알 것 같다. 그의 '매우 죄송하다'는 말 속엔 정말 죄송함이 담겨 있었고, '심야 중으로 보내겠다'는 말엔 정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는 메일을 썼을 거다. 다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다.



https://publy.co/project/1230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