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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6. 2017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나는 가장 젊다

써놓았던 자기 소개서를 훑다 여전히 유효하구나 싶어 들춰본다. 아마도 올 여름 자락에 바라보았던 나, 그리고 나의 시간들.


조금은 더 있고 싶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오는 오후 세 시, 아침을 먹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들락거리는 오전 아홉 시, 엄마와 단둘이 TV 앞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오전 열 시와 거실에서 자전거를 타며 이러저러한 생각 사이를 거니는 저녁 일곱 시. 이러한 시간은 그 결이 곱고도 고와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잡아당겨 간직하고 싶습니다. 서랍에 넣어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앞으로 흐르기만 하는 법. 세월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2006년 학교도 졸업하기 전 영화 전문지 <씨네21>에 들어가 글을 쓴지가 어언 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못다한 생각을 글로써 풀었고, 글을 쓰며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저에게서, 지금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을 붙잡으려 글을 써왔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공기를 애써 간직하려 자판을 두드렸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흘러도, 세월은 지나가도 나에게 이러한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는 걸 그 어딘가에 새겨두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글은 저에게 사적인 역사이자 세상과의 대화입니다.


약속이 있어 역삼동에 다녀왔습니다. 남산 1호터널, 한남대교, 신사 중학교, 압구정, 학동역 사거리를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살고있는 인천 논현동부터 학동역 사거리까지 두 시간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추억이 강물의 물결처럼 흘러 제게 다가왔습니다. 서교동 카페 비하인드에서 책을 읽다 472번 버스를 타고 신사중학교에 내려 신사동 집까지 걸어갔던 때가,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그 아티스트가 그려준 제 그림을 받았던 때가, 그리고 가로수길 시골밥상에서 갈치 조림이 매워 반도 먹지 못했던 기억이 흘러간 흑백사진처럼 제 머리와 마음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제 페이스북 페이지 한 켠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몹시도 그립고 아팠습니다. 한 편으론 그래도 남겨둔 곳이 있어 다행이고, 다시 되뇌일 수 있어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 대한 글을 쓰고 <씨네21>에 입사했습니다. 회전문 앞에서 돌아서는 경수의 모습과 취로의 길목에 선 제 마음을 글로 썼습니다. 당시 면접을 보셨던 남동철 편집장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칭찬입니다. 이후 여행 전문지인 <AB-ROAD> 부터 남성 패션지 <GEEK>, 그리고 여성 패션지 <VOGUE>까지 저는 잡지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배우고 느낀 것을 잡지 한 권에 담아왔습니다. 제 삶을 반영하고, 저와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게 제가 걸어나가는 길입니다.


얼마 전 일본 드라마 <취활가족~분명 잘 될거야>를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가족 전원이 실직이 되는 가족 최대의 위기 상황을 그린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며 극중 아빠 토미카와가 하는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토미카와는 임원 승진 목전에서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회사를 관두고 재취업을 결심하며 아내에게 말합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고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제 나이, 서른 여섯입니다. 접어서 오십을 지난 지가 꽤 됩니다. 꿈을 갖기에도, 목표를 새로 세우기에도 어쩌면 늦은 나이일지 모릅니다. 경력도 짧지 않을 만큼 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토미카와 씨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가장 젊은 때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저는 일본에 갔습니다. 환경을 바꿔보자고, 다름 삶을 모색해보자고 도쿄 미타카다이 원룸에 가 생활했습니다. 4년여의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 나섰습니다. 모든 게 새롭고 신선했지만 동시에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김영사의 제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살아있는 위인전’ 작업을 하며, <씨네21>과 <매거진T(현 아이즈)>의 도쿄 통신원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은 건 새로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글을 쓰는 게 좋았고, 제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는 게 즐거웠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글은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어디 쓸모가 없을 지라도 뱉어진 글은 후에, 그 어딘가에서 쓸모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씁니다. 소변을 보며, 자전거를 타며,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글을 씁니다. 저에게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조금은 더 넓고, 깊게 살아가는 방법이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그냥 매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트로트 가수 홍진영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내 인생은 데 누가 뭐라 하냐”며 “끝까지 가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제겐 아직 살지 않은 삶이 더 많고, 쓰지 못한 글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여전히 사는 게 재미있습니다. 분명 잘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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