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는 함께의 반대말이 아니다. 혼자는 혼자라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
2007년 여름, 나는 혼자가 됐다. 다섯 누나, 그리고 엄마, 아빠 아래서 자란 덕에 집 안이 사람들로 북적였었는데 회사에 들어가 독립을 하니 집에는 나 말고 없었다. 나는 아침에 혼자 일어났고, 혼자 밥을 먹었으며, 혼자 회사에 갔다. 어려서부터 낯을 가렸고 친구 사귀기를 번거롭게 생각했기에, 당연히 친구가 몇 없었다. 물론 1년 365일 24시간 계속 혼자였던 건 아니다. 학교에선 그래도 급우가 있었으며, 회사에선 선후배, 그리고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 안에 있어도 난 항상 혼자임을 느꼈다. 얼마 전 한번은 모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한 선배와 함께 갔었는데 그곳에서 난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하객 속에서 내가 아는 건 같이 간 선배 둘 뿐이었다. 선배들은 서로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동안 난 뒤에서 멀뚱멀뚱, 여기저기를 배회했다. 함께 있어도 난 혼자였다.
직업 특성상 행사를 자주 간다. 많으면 일주일에 서너번도 간다. 행사장에는 종류, 형식을 망라하고 사람이 많다. 당연히 내가 아는 사람은 고작 한 두명 뿐이고, 그것도 업무상으로 몇 마디 주고받아 본 행사 관계자나 다른 회사의 사람 정도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곳이 행사장이다. 친구들은 있는데 친구는 없는 상황.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어떤 경우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돌아온 적도 있다. 물론 행사장이 사교의 자리는 아니니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 때 난 혼자가 아닐까? 외로움을 모를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함께라고 다 외롭지 않은 게 아니고 혼자라고 꼭 외로운 것도 아니다. 혼자는 함께의 반대말이 아니다. 혼자는 혼자라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
혼자있는 건 고독이고 혼자있지 못하는 게 외로움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양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은 혼자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있어서 누리는 즐거움"이라 말했다. 나는 혼자인 게 두렵지 않다. 혼자이기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집중해 글도 쓸 수 있다. 그러니까 혼자라서 누릴 수 있는 건 수없이 많다. 혼자보는 영화는 영화에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으며, 혼자하는 식사는 음식 맛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혼자여야만 가능한 활동도 있다. 명상과 독서, 그리고 요가와 같은 운동. 모두 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활동들이다. 세상엔 수많은 관계가 있다. 연인, 부부, 형제, 자매, 선후배, 동료 등.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게 아는 듯 모르고 모르는 듯 아는 관계다. 그리고 실로 우리는 이러한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디까지 들어가야할지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아리송한 길을 걷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혼자인 건 어떨까. 불필요한 눈치와 생각을 거두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삶, 고독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외톨이가 되었다고 두려워 떨 거 없다. 혼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쁨이 세상엔 수도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