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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1. 2017

無印良品

아무 표시도 없는 삶. 하지만 모든 게 충분한 세상, 무인양품

트위터의 오후 3시. 무지의 멘션이 올라온다. 시리얼 스틱부터 바움 케이크, 그리고 센베이와 쿠키까지. 무지가 추천하는 오후의 간식이다. 아침 혹은 오전에는 BGM의 링크가 걸린다. 17번째 앨범까지 제작된 무지의 BGM 시리즈는 매장에서, 그리고 CD로 판매돼 일반 가정집에서 오전의 배경음악이 된다. 하루를 무지와 함께 한다. 셔츠와 바지, 식기와 테이블, 슬리퍼와 담요, 비누와 타올 등 하루 24시간을 쪼개 세세히 들여다보면 아마 일상 어딘가에 무지가 있을 것이다. 긴자와 신주쿠 등 시내 중심가에는 ‘Cafe Meal MUJI'란 이름의 무지 커피숍도 있다. 무인양품(無印良品). ‘표시 없이 좋은 물건’이란 뜻의 공식 명칭 앞 두 글자를 따 쉽게 무지라 불리는 이 브랜드는 일본의 일상을 그린다. 2009년부터는 집도 만들고 있다. ‘나무의 집’, ‘창의 집’, ‘아침의 집’이란 이름으로 제작되는 주택들은 그동안 무지가 만들어온 생활의 조각들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다. 일본에서 무지는 일상이다.


요식업과 건축업, 의류업과 유통업 등. 일본에도 양다리를 걸치는 회사는 많다. 국내처럼 적게는 대여섯, 많게는 십 수개의 문어발식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도 많다. 하지만 무인양품처럼 일상을 범주로 일본인의 24시간을 디자인하듯 사업의 영역을 넓혀가는 곳은 없다. 1980년 월마트의 일본 자회사 세이유(西友)의 브랜드로 시작한 무인양품은 당시 그저 싼 생활용품 메이커였다.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판매를 전개했고 물건의 품질도 싼 만큼의 퀄리티였다. 하지만 1983년 도쿄 아오야마(青山)에 직영점을 내면서 무인양품은 본색을 드러냈다. 창업 멤버였던 그래픽 디자이너 다나카 잇코는 ‘No brand goods'를 모토로 무지를 기존 브랜드의 안티체제로 꾸려나갔다. 새로운 콘셉트의 물건들은 호평을 받았고 무인양품은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제품 디자이너로 참여한 후카사와 나오토, 하라 켄야가 만들어낸 상품들은 무지의 ’노 브랜드‘를 ’첨단의 디자인‘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네모난 방 정 가운데 구멍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구멍은 신의 자리다. 하라 켄야는 차실을 일본 공간 구조의 기본이자 핵심이라 말했다. 그의 저서 <백>은 일본의 모든 공간과 사물은 신의 자리를 품고 있고, 그 자리는 여백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애니미즘의 공간적 변용이다. 그리고 무인양품이 이 철학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설립 당시 모토로 내세웠던 ‘No brand goods'란 말은 멋이나 치장보다 쓸모와 편리를 중요시하는 브랜드의 이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일본이 과거부터 계승해온 만물에 대한 개념의 현대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지의 물건들을 하얗다. 여백이 많다. 그리고 이것이 무인양픔이란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다. 일본의 경제학자 이시이 쥰조는 “미국의 코카콜라가 그렇듯이 무인양품은 일본의 정신, 일본 사람들의 생활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고 했다. 무인양품은 의류와 가전제품, 생활 잡화와 주택 등을 만드는 일 이외의 다수의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이시이 쥰조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 무인양품은 일본 대중에게 ’소비의 브랜드‘, ’구매의 브랜드‘를 넘어 ’습관의 브랜드‘가 되었다.


무인양품은 2011년 11월 자사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을 이용한 소셜 게임 ‘MUJI LIFE'를 만들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시험해보는 무인양품 스타일의 라이프였다. 그리고 홈페이지의 ’삶의 양품 연구소‘ 코너에서는 제품을 만들며 오고간 토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자전거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의 마을 가꾸기 제안이랄지, 신생아 의류에 대한 고민의 공유, 그리고 각 지방의 음식 문화에 대한 알림 등. 2009년에는 기존의 의류 사이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접수해 ’사이즈 다시 보기‘ 캠페인을 벌였다. 보통 남녀의 신체 치수를 재고 이에 맞는 사이즈 체계로 정비하는 일이었다. 올해 4월부터는 일본 전국을 카라반으로 돌며 곳곳의 명물을 소개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무지는 더 이상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며,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간소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세상이 오늘날 일본인들의 일상을 대변한다. 아무 표시도 없는 삶. 하지만 모든 게 충분한 세상. 무인양품은 지금 일본에 제시된 하나의 이상적인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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