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기호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요코하마(横浜)의 초대를 받아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요코하마 시의 관광과 여직원은 불가피하게 금연 객실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코하마의 중심지 미나토미라이 지역은 대부분 금연이었다. 호텔도, 식당도, 카페도 그랬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도 흡연이 되던 나라다. 담배 종류는 한국보다 많은 40여 가지였고, 사람들은 휴대용 재떨이까지 소지해가며 흡연을 했다. 하지만 강산이 한 차례 바뀌자 일본의 흡연 사정도 달라졌다. 담배 값이 갑자기 100엔 이상 올랐고(보통 400엔 정도), 넉넉했던 식당의 흡연 공간은 좁아졌다. 심지어 요코하마가 속한 가나가와 현(神奈川県)에서는 2010년 음식점에 흡연을 권고하는 조례를 확정했다. 아시아 흡연의 천국인 일본인 '흡연 프리(Smoking Free)' 지역이 된 것이다.
일본의 금연 열기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에는 세계 어디를 가도 금연이 대세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이제 자리를 비켜야 하는 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다. 한때 애연가들의 파라다이스라 불렸던 프랑스가 공공장소에서 금연을 실시한 것은 오래 전 일이며, 영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이 움직임에 동참했다. 대표적인 여행지 하와이에서는 2006년 11월 발효된 법안에 의해 주요 호텔들이 모든 객실을 금연으로 돌렸고,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elaka) 역시 2011년 6월부터 관광지에서 금연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심지어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Taiwan Taoyuan International Airport), 오스트렐리아 대부분의 국제공항, 그리고 중국 베이징 서두 공항(Beijing Capital International Airpor) 등에는 흡연 구역이 일체 없다. 담배가 고파 여행을 못 떠날 지경. 그야말로 흡연 여행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때 비행기 안에서도 흡연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1930년대 애연가들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쿠바 산 시가나 파이프 담배를 물었다. 2차 흡연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고, 비행기의 안전은 장시간 비행 금연의 수고를 이기지 못했다. ‘스모킹 랙(Smoking-lag)' 따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기내 흡연율은 점점 높아졌고, 1970년대에는 무려 그 수치가 60%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사정은 급변했다. 항공사들은 흡연석을 비행기 후미 쪽으로 내몰기 시작했고, 점점 그 수를 줄였다. 비행의 안전, 금연 승객의 건강이 이유였다. 1998년 금연이 결정된 미국 항공사들의 국내선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2012년 현재 흡연이 가능한 비행기는 단 한 대도 없다.
담배는 기호다. 좋고 싫음에 따라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건강을 챙기는 것은 자기 몫이다. 하지만 최근의 전 세계적인 금연 광풍은 건강, 청결, 에티켓을 이유로 흡연자의 자리를 지우고 있다. 기호에 대한 존중이 없다. 물론 흡연 에티켓, 매너도 중요하다. 걸어가며 피우는 담배, 버스 정류장, 공연장 앞 줄 등 사람 밀집 지역에서 피우는 담배는 공중도덕에 어긋난다. 꽁초와 재 관리도 흡연자가 챙겨야 할 몫이다. 하지만 흡연 구역은 늘어나는 금연 구역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홍콩의 경우 노상 재떨이가 가뭄에 콩 나듯 있다. 거의 도시 전체가 금연이다. 흡연 매너를 지킬 공간이 없다. 금연 권리는 증진되는데 흡연 권리는 무시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닐 클라크(Neil Clark)는 “이제 택스 프리(Tax Free) 지역만큼 흡연 천국 지역이 여행의 큰 이슈가 될 것이다”라고 <가디언>에 썼다. 담배 신세가 참 처량하다.
세상에 나쁜 기호는 없다. 대부분의 문화가 그런 것처럼 어떠한 기호도 다른 기호를 위해 희생될 필요는 없다. 그저 규칙과 에티켓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옳은 것 하나를 찾기 위한 질주에 매달린다. 그 편이 효율적일 뿐더러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담배 사정도 비슷한 과오의 반복은 아닐까. 흡연이 성행하던 시절 금연은 사치였다. 금연자의 건강, 2차 흡연을 하지 않을 권리 따위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금연이 성행하자 흡연이 사치가 됐다. 흡연실 설치, 환기 관리. 모든 것이 돈이다. 여행도 어쩔 수 없이 산업이라 할 때, 건강과 청결을 위한 금연은 과연 누구를 위한 캠페인일까. 금연자는 금연을 하며 여행할 권리가 있고, 흡연자는 흡연을 하며 여행할 권리가 있다. 세상의 모든 기호는 존중되어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