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또다른 얼굴
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혹은 차로 열다섯 시간. 하늘에 닿았다. 고도 1750m 히말라야 줄기에 선 마을 다람살라(Dharamsala)는 육지보다 하늘과 더 가까운 곳이었다. 하늘의 너른 품이 험한 땅을 감쌌고, 곳곳의 비구름은 나무와 건물 사이 다리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 달라이 라마(Dalai Lama) 사원의 주소지. 현재 지구상에서 어쩌면 가장 애달픈 사연을 지닌 이 도시는 이렇게 조금씩 땅과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바람에 쓸려, 혹은 바람을 타고. 만물의 질서가 분방하게 정돈됐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일본의 여행 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방랑>에서 이렇게 썼다. 좋게도 나쁘게도 다람살라는 슬펐다. 티베트 문화의 피난처로 잠시 지구에 정착한 이 마을은 이별의 아픔을 초월한 시한부 세상 같았다. 모든 게 처연했고, 모든 게 의연했다. 아픈 시간을 스스로 감내해본 곳의 풍경이었다. 인도 대륙 가장 높은 땅 위에서 우리는 그저 지구라는 별의 일원이 되었다. 나무도, 사람도, 흙도, 바람도, 그리고 수많은 소들도. 이것이 다람살라의 질서라고, 하늘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도는 대륙이다. 땅덩이 자체도 크지만 인종, 종교, 정치가 뒤섞인 모양새가 불균질한 지층을 이룬다. 기원전 2500년 경 인더스 문명에서 시작된 이 나라는 불교와 자이나교의 혼재, 이슬람계 왕조인 무굴 제국과 힌두 계인 마라타 왕국의 잔재, 영국 식민시대와 자와할랄 네루(Javāharlāl Nehrū)가 시작한 민주주의가 한 나라 이상의 복합성을 이루고 있다. 지역마다 풍경, 생활, 문화가 다르며, 계층 간의 갈등도 존재한다. 인도의 수도 델리가 메트로폴리탄의 모던이라면, 남인도의 해변지역은 유유자적한 휴양지고, 북서쪽의 고원은 오지의 자연을 간직한 근대 이전의 세상이다. 인도 북부 지역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주에 속하는 다람살라 역시 또 다른 인도다. 영국 식민 지배 당시 영국 사람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쓰였던 다람살라는 높은 땅, 풍성한 숲, 넓은 하늘이 소박한 마을을 이룬 곳이다. 아이들은 오르막길을 걸어 학교에 가고, 승려들은 좁은 길을 나란히 줄지어 내려온다. 인도라기보다는 티베트, 혹은 인도가 아닌 인도. 이곳에서 사람들은 델리 또는 주변 도시로 나갈 때 그냥 인도에 간다고 말한다.
다람살라의 방식
출발 하루 전. 어깨 죽지가 쑤셨다. 간단한 근육통이라 생각했는데 통증이 심해졌다. 누군가는 인도로 여행을 떠날 때 준비는 버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인도에서 여행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한다. 막연한 환상이라 생각했던 이 말들이 가슴의 통증을 찔렀다. 피로에 지친 몸이 아프다고 짜증을 내자 냉소했던 환상의 조각들이 떠오른 것이다. 피부질환에 즉효라는 님(Neem) 나무 오일, 온몸의 질병을 입으로 빨아 뱉어낸다는 주술사 등 약해진 몸뚱이가 어리광을 부렸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혹은 좋게도 나쁘게도 몸은 자연스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날을 세우고 새 풍경을 훑는 것보다 겸허하게 새로움을 관조하는 것이 인도에는 더 어울리는 자세다. 그렇게 막연하게 믿었다. 다람살라를 여행하는 동안 가슴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선선하고 습한 공기의 여유가 그저 마음을 조금 달래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숨 속에서 다람살라의 방식을 보았다. 이곳에서 ‘나’는 없다. 티베트 불교는 사람들에게 나의 행복이 아닌 세계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 가르친다. 모두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 믿기 때문이다. 빤한 바른 말이라도 아픈 어깨 죽지는 한숨을 골랐다.
인도는 신비의 나라라고 한다. 흔히들 쉽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곳의 첫 인상은 중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쓰레기는 거리를 뒹굴었고 자동차 클락션 소리는 끝없는 돌림노래였으며, 소떼와 뒤엉킨 개떼, 호텔 지붕을 쿵쾅거리는 원숭이 무리는 사람보다 난폭했다. 거리에 나와 물건을 파는 승려들, 동냥에 나선 모녀와 할아버지도 결코 조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람살라에 들어오자 인도의 이 난잡함이 어떤 그림을 그려줬다. 하늘에 걸린 듯한 마을 다람살라에서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것이었다. 산자락 어딘가에는 항상 비구름이 걸려있었고 그러다 하루 언제가 비를 뿌렸다. 모든 게 그냥 있었다. 벌목하다 만 나무는 도로 한쪽을 삐죽 치고 나왔고, 소의 배설물은 거리에 엠보싱 반점을 그렸으며, 길을 가다 지친 개들은 도로 한복판에 배를 깔고 누웠다. 이곳에서 쓰레기는 치워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레 세상에 나왔다 흩어지는 것이다. 더러움의 판단 기준이 이곳에는 없다. 소의 배설물도, 잘리다 만 나무도, 거리의 소음도, 먹다 만 음식물도 그렇다. 우리는 자연에 터전을 잡은 뒤 모든 걸 스스로 콘트롤하려 한다. 하지만 다람살라에서 사람은 그저 자연 한 쪽을 차지하고 살아가면 된다. 쓰레기를 치울 필요도, 거리를 정돈할 필요도 없다. 좋거나 나쁘거나 모든 건 그냥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