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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3. 2017

기무치에 죄는 없다

일본의 사랑 고백에 계속 발끈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김치를 통해 일본의 한 여자가 성장한다. 지난 2월18일 일본 중부지방 7개 현에서 NHK의 개국 70주년 기념 드라마 <사랑하는 김치>가 방송됐다. 영화 <골든 슬럼버> <퍼레이드>, 드라마 <버저비트 벼랑 끝의 히어로> 등에 출연했던 여배우 칸지야 시호리와 국내 아이돌 그룹 초신성의 윤학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한국의 전통음식 김치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춘천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기후현의 카가미가하라시를 무대로 마을을 위해 김치 만들기에 빠져야 하는 시청 여직원이 교환 직원으로 일본에 온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일면 한류 드라마의 흐름을 쫓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공개된 드라마는 김치를 이해하려는 일본 여성의 마음을 주제로 김치 만드는 과정을 진중히 탐구했다. 전국 방송이 아니었음에도 13.6%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드라마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김치 레시피는 호평 속에 많은 블로그로 퍼 담아졌다. 3월21일에는 일본 전국에서 다시 한 번 방영된다.


일본에서 김치는 이제 생소한 음식이 아니다. 동네 슈퍼에 가면 쉽게 김치를 종류별로 살 수 있고,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이자카야의 인기메뉴로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월17일 일본의 정보 프로그램 <와랏떼 이이토모>가 방송한 ‘세대별 일본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국물요리’에선 김치찌개가 전 세대에 걸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순위에서 김치찌개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물 요리인 모츠나베, 스키야키, 샤부샤부도 이겼다. 김치가 좋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연예인도 많다. 각트는 한국을 찾을 때마다 두 손 가득 김치를 사가고, 아라시의 멤버 사쿠라이 쇼는 깍두기에 빠졌고, 마츠다 류헤이의 동생이자 고 마츠다 유사쿠의 차남인 배우 마츠다 쇼타는 냉장고에 항상 김치를 가득 채워놓는다고 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가 매 끼니 때마다 식탁에 김치를 차리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식재료를 소비하는 나라 일본은 이제 김치를 즐긴다. 일본식의 단맛이 강한 김치가 아니라, 맵고 유산균이 풍부한 한국식 김치를 선호한다. 선호층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아줌마, 아저씨는 김치와 함께 맥주캔을 따고, 젊은 세대는 와인 병을 연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60년대만 해도 일본에서 김치는 맵고 마늘 냄새가 강해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김치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매운 음식 붐과 함께 정착된 김치의 보편화가 이제 완연히 일본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건강, 미용에 좋다는 이유에 더불어 김치 맛에 대한 선호도 생겨났다. '공통통신사'가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2004년 기준 김치는 일본의 절임 음식 다음으로 일본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식이다. 요즘 일본에선 김치 냉장고를 집에 들이고, 직접 김치 담그는 교실을 찾으며, 국내 산 김치를 찾아 해외 배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 밥상에 김치가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김치는 종종 일본에서 활동하는 국내 연예인들을 괴롭힌다. 카라, 정우성, 영웅재중 등이 근래 일본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치-기무치’ 발음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한국 음식인 김치를 기무치로 발음했다는 게 네티즌들의 원성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일본 활동 중 일본어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논란은 그저 어처구니없다. SMAP의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는 방송 중 국내 스타와 만나 스시를 초밥이라 수십 번 얘기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일본인은 없었다. 당시 쿠사나기 츠요시는 한국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어엔 받침이 없기에 김치를 정확히 발음할 수 없다. ‘김치 원조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이 논쟁은 오히려 국내의 영어식 표기법 문제 탓이 더 크다. 공식적으로 김치는 Kimchi이지만 아직도 kimuchi, kimchee, Gimchi 등으로 표기된 식당도 많다. 불고기도 Bulgogi인 식당도 있고, Bulkogi인 곳도 있다. 떡볶이, 삼계탕, 순두부 등 잘못된 영어 이름으로 걸린 우리 음식은 한두개가 아니다. 통일된 영어식 표기법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불고기를 야키니쿠라 말했다 한 들 불평할 여지가 있을까. 실제로 한국 음식을 취급하는 일본의 많은 음식점들은 정확한 한국식 표기 확인이 어려워 곤란하다고 한다. 일본의 김치 사랑을 김치 전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우선 우리 밥상에 대한 정확한 이름 붙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기무치, 야키니쿠’에 대한 일본의 사랑 고백에 계속 발끈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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