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밤이고, 그래서 푸른 빛이다.
시가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스토리는 없고 여백은 많아 감정과 심상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영화화 될 수 있을까. 설령 있다 한들, 가능하다 한들 시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시를 닮은 영화에 그치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망하지 않을까. 최소한, 내가 아는한 시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없다. 만들어진 것도, 만들고 있는 것도, 만들 예정인 것도. 그런데 이시이 유야가 그 난제에 도전했다. 이시이 유야라면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 등 사람 애기를 휴머니즘 터치로 녹여낸, 훈훈하고 따듯한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다. 동시에 데뷔작인 ’사와코 결심하다'와 그 다음 몇 편을 제외하면 프로듀서의 입김이 강한, 그래서 다소 정제되고 필터링된 작품을 만들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사와코 결심하다'와 '행복한 사전'의 터치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이번 영화 '도쿄의 밤 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역시 '행복한 사전'의 프로듀서와 다시 합을 맞춘 작품이다. 이시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시작이 '프로듀서가 시집 한 권을 가져온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원해서 시를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프로듀서의 속내가 궁금하다.
'행복한 사전'은 성공적이었다. 영화는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좋은 소리를 들었다.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일본 대표로 선정된 것은 물론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여섯 개 부분을 석권했다. 힘도 있고 생기도 넘쳤지만 어쩔 수 없이 풋내났던 감독이 불과 4년 만에 일본 대중 관객 품에 안착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의 호흡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시집이길래 이렇게 큰 일을 냈을까, 도대체 어떤 구석에서 영화화의 가능성을 보았을까. 원작은 사이하테 타히의 2016년도 시집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최고 밀도의 파란 빛이다'다. 외로움과 폐소감, 허무함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해 동일하게 외로움과 폐소감, 허무함을 안고 살아가는,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식이다. 그렇게 쓰여졌다. 다분히 절망적이고, 다분히 폐쇄적이며, 다분히 우울하다. 하지만 이 시집이 독보적인 건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고, 간단 명료하다는 것이다. 가령 사이하테 타히는 ’도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쓴다. 여백을 품은 은유, 감정을 어루만지는 표현 따위, 여기 없다. 그녀는 도시를 말한다. 도시는 직설적이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시집 '밤 하늘은 언제나 최고 밀도의 파란 빛이다'와 영화 '도쿄의 밤 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블루다'의 연결 지점은 도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이번 작품을 얘기하며 '시집을 읽었을 때의 감정, 심정을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시집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가 취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들린다. 동시에 사이하테 타히의 시가 지금의 도시를, 도쿄라는 공간을, 그곳의 사람들의 마음을 무엇보다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처럼도 들린다. 사이하테 타히는 도시의 화법을 쓴다. 표현을 에둘르지 않고 '시어(語)'에 갇히지 않으며, 낡고 닳아 의미를 상실한 언어에서 현실의 의미를 길러낸다. 가령 '아름다우니까 좋아한다(美しいから好きだよ)'라는 시에서 사이하테는 아름다움(美しい)을 시험한다. '눈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있다. 새하얀 민낯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은 모든 사람이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너의 말보다 몇 배나, 나를 아프게했다.' 흔하고 흔해, 차고 넘치는 아름다움 속에, 그러니까 도시가 차용하는 아름다움 속에, 사이하테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응시한다. 그녀는 우울하지 않다.
사이하테 타히는 지금 일본 문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한 명이다. 누적 시집 판매 부수는 25만에 이르며, 잡지와 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2월부터는 '사이하테레비(最果レビ)란 프로그램이 후지TV 온 디맨드에서 방송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Cinra''에선 여배우 니카이도 후미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사랑이란 단어를 표면적으로만 사용하다 보면, 그 사랑은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것이 되어버려요. 그러다 잊혀지고요.' 단어는 의미의 감옥이다. 동시에 감정을 제단한다. 우리는 단어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언어의 옷을 입혀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단어가,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감정을 백프로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이하테 타히는 '알 수 없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로, 그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생각을 갉아먹는 것과 같아요. 그러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개념뿐이죠.' 그러니까 그녀에게 시는 '알 수 없는' 이야기, 감정이다.
영화 '도쿄의 밤 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주인공 신지를 연기한 이케마츠 소스케는 영화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도쿄에 대해 말하면서 '좋아하지 않지만 싫다고 말할 수 없고, 싫어하지 않지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울에 관한 드라마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비극을 그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영화는 자연스레 희망에 접근한다. 도대체 어떻게 희망이 길어질까 싶지만 그렇다. 신지와 여주인공 미카는 서로에게 기댈 자락을 찾아가고 외로움, 폐소감, 허무함을 안은 채 그래도 살아간다. 이는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페이지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시는 어둠 곁에 빛을, 부정 옆에 긍정을 바라본다. '의미도 없이 타들어가는, 사라져갈 뿐인 목숨이, 아름답지 않다면 별 역시 마찬가지다. (생략) 거리의 보석은 네온도, 별도 아니고, 잠들 수 없는데도 애써서 감은 너의 눈꺼풀 속에 있다.' 이 시집에 관한 감상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반대인 듯 싶지만 비슷하고, 비슷한 듯 싶지만 반대다. 그래서 밤이고, 그래서 푸른 빛이다. 이렇게 어둠은, 아픔은, 고독은 시 안에서 빛을 낸다. 사이하테 타히의 언어가 그렇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