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Nov 17. 2017

상냥한 우연과 만나다
優しい偶然との出会い

장갑을 낀 손가락이 차갑게 시려왔다. 꽤나 추운 날이다



31분 30초.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라떼가 아직 다 식지 않았고 핸드폰 배터리도 아직은 충분했다. 퍼블리의 프로젝트 '쓰는 시대의 도래'를 위해 인터뷰를 몇 개 하긴 했지만 왜인지 오늘의 인터뷰가 꽤나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보그'에 다니던 무렵 나는 자주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패션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나갔고, 피쳐팀 사람은 나를 포함 기껏 셋 뿐이었다. 물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다 함께 회식도 했고, 피쳐팀끼리 파스타나 문어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편했다. 사무실 안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이 확보될 수 있는 건 한시간 남짓한 점심 시간 때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홀로 점심을 먹는 이에게 친절하지 못하다. 사방이 무리로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이니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했었다. '도쿄 팡야'는 그렇게 만났던 빵집 중 하나다. 도산대로 커브 길에 있는 그 가게는 붐비는 일이 거의 없었고,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건 내가 점심을 마치고 나가는 한 시 가까이 쯤이었다. 그러니 편했다. 눈치를 볼 필요도, 눈치를 볼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 곳에서 버거를 닮은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자주 먹었다. 그만큼 행복했다.



기분이 묘했다. 허망한 것 같기도 하고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묘했다. 재미난 에피소드도 들었고 조금은 웃기도 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후회도, 만족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묘했다. 인터뷰를 마친 내 마음 상태 얘기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혹시나 얕보면 어쩌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묘했다. 직원이 실수했다면 내어 준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가치 피우며 마음을 가라 앉히려 애써 보았다. 답답함이 쌓여만 갈 뿐 나아지지 않는다. 담배를 든 손가락이 에일 정도록 바람이 차기만 하다. 다시 들어와 책을 꺼냈다. 장장 장편 세 권은 될 것 같은 볼륨의 나츠메 소세키 단편집 '몽십야'가 가방에 있었다. '도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감', '화로', '하숙'으로 나아가는데 생각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에도 시대의 이야기가 그저 휘발되듯 스쳐 지나갔다. 기분이 묘했다.




허기가 느껴졌다. 닭다리를 유자와 후츄, 그리고 오일에 버무린 파스타와 빵을 네 조각이나 먹었는데 그랬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프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 느끼지만 육체는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 우울해서 침대에 엎드려 울 때도 나를 일으켜세우는 건 인중을 타고 내려오는 콧물이다. 그리고는 일어나 빵을 여러 개 샀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앙금과 버터가 들어간 바게트와 조미 빵 서너 개를 샀다. 와중에 구색은 맞췄다. 바게트는 커팅을 부탁해 테이블 위에 놓았고 나머지는 포장을 해서 가방에 넣었다. 먹었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바게트를 꾸역꾸역 씹으며 삼켜 넘겼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맛이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육제는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은 네 시를 앞두고 있었다. 지금 쯤이라면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컵이 놓인 트레이를 계산대에 갖다 주고 밖으로 나섰다. 코와 입은 마스크로 막고, 점퍼의 지퍼는 목 아래까지 채우고. 장갑을 낀 손가락이 차갑게 시려왔다. 꽤나 추운 날이다.



역시나 앉을 수 있었다. 1300번 버스는 1400번 버스보다 깨끗하다. 흔들림도 적다.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일단 앉으면 마음은 가라앉고 한다. 요즘의 내 마음 상태다. 분하다 悔しい, 쿠야시. 한국말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본인 코바야시 스스무가 유일하게 일본말로 물었던 단어다. 나는 처음엔 '잘 안다', '상세하다'를 뜻하는 쿠와시 詳しい로 알아듣고 그렇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가 아니라며 다시 한 번 말해 줘 그것이 쿠야시, 분하다, 悔しい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하며 그 단어를 골랐다. 중국에서 회사가 파산해 돌아오게 된 경험에 대해, 그랬던 자신에 대해.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남아 떠나갈 줄 몰랐다. 어쩌면 나는 분했던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에게, 지난 나에게, 흘러간 나의 10년에게. 어젯밤 보았던 TV 프로그램 속 후쿠시 소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회를 본 라쿠고가 落語家이자 배우인 츠루베는 후쿠시에 관해 이야기하며 '지금의 20대가 다음의 30대를, 다음의 30대가 그 다음의 40대를 만든다'고 말했다.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그 때의 내가 미웠다. 그리고 나의 30대가 가여웠다. 사이하테 타히는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를 무시할 수 있어서 아름답다'고 썼는데,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은 어제가 모여 찾아오는 것이다. 분하다, 悔しい。



아무로 나미에의 댄스 음악은 꽤나 아프다. 춤을 추며 화려하게 노래해 그렇게 보이고 들리곤 하지만 그녀는 그만큼의 아픔과 고독 또한 노래 속에 새겨 넣어 부르고 있다. 기다려 봤자 소용없다 말하면서 동시에 길을 찾아야 한다 외치고 어디에 가든 길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용기를 받았다. 온몸이 전율하는 그 느낌이 위안이 맞다면 위안도 받았다. 그리고 다가왔던 한 구절이 있다. ’또 다시 돌고 도는 계절이 새로운 예감을 데리고 와. 눈을 감고서는 알 수 없어. 이렇게 세상은 아름다운데 어두운 감정 억누르지 못하고 정의와 바꿔왔어. Get myself back again. 상처 받기 위해 태어난 거 아냐.' 내일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렇게 들렸다. 내가 너무 미워서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너무 어찌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났다. 이럴 때 노래는 노래 이상의 것이 되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어느 프레즈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어딘가에 누군가는 상냥할 거야'라고 아무로는 노래했다.' 優しい、상냥하다. 결국 도시에서 기댈 수 있는 건 이 상냥함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때로는 가족도, 친구도 무게로 다가올 때가 있다. 어찌됐든 타인이기에 완벽한 이해와 공감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상냥함에 기댄다. 그리고 우연은 상냥함에 다름아닌 것 같다. '도쿄 팡야'와 '아오이 토리', 그리고 '아오이 하나'까지.' 내가 혼자만의 한 시간을 위해 찾곤 했던 이 세 가게는 모두 빵을 굽는 남자 코바야시 스스무가 일했거나 대표로 있는 곳이다. 나는 오늘 우연과 마주했다. 어느 하나의 매우 상냥한 우연과, ある一つの優しい偶然と。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