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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17. 2017

14시 20분의 '로마서 8:37'

세상엔 묘한 우연으로 만나는 영화도 있다



상영 전 광고에 심히 불쾌감을 느끼는 편이다. 원하지 않은 광고를 무려 십 분이나 넘게 봐야한다는 사실이 좀처럼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이놈의 광고 시간은 점점 더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영화를 보기도 전에 짜증이 일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광고를 즐겁게 볼 때도 있다. 아주 가끔, 흔치 않게 꽤나 잘 만들어진 광고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광고를 보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거나 어둑한 빛 아래서 책을 읽는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 광고를 보러 간 것이 아니다. 오늘은 볼 일이 하나 있었다. 계획하고 있는 일의 첫 걸음이 될 나름 중요한 일이다. 영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을 듣고 토스트로 간단히 점심을 떼운 뒤 밖으로 나섰다. 날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H&M에서 만 오천원을 주고 산 숄에 가까운 목도리 덕택이었는지 모른다. 십 분 남짓 대기를 하고 볼일을 마쳤다.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요한 서류에 대한 안내를 듣고 밖을 나오는데 기분이 수상했다. 영화 시간을 떠올렸다. 16시 25분에 시작하는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 16시 25분이다. 16시 25분.  



중간에 시간이 뜰 것 같아 나츠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왜인지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한 시가 넘어 있었다. 영화는 16시 25분에 시작한다. 적어도 두 챕터는 읽을 수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왜인지 빠듯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니 이상하다. 무작정 걸었다. 스타벅스에 가 토피넛 라떼를 톨로 주문했다 숏으로 바꿨고 두 모금을 마신 뒤 밖으로 나왔다. 또 다시 걸었다. 극장까지 두 번 신호등 앞에서 멈춘 걸 제외하면 계속 걸었다. 수상한 기분은 여전했다. 티켓을 끊고 로비 의자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봤는데. 상영 시작 10분 전이 지났음에도 '로마서 8:37' 입장 멘트는 뜨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상영관으로 걸어갔다. 직원이 없었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그냥 들어갔다. 극장은 한산했다. 나를 포함 고작 열 명 정도 될 것 같았다. 노래를 들었다. 화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광고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고 나는 D.A.N과 cero, 그리고 Yogee New Waves의 노래를 들었다. 드디어 장내가 어두워졌다. 노래를 끄고 헤드폰을 벗어 무릎 위에 두었다. 우리말과 한국 사람이 나와야할 화면에 애니메이션에 영어 나레이션이 흐르고 있었다. 짜증이 일었다. 또 광고인가 싶었다. 시간은 14시 20분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14시 20분에 시작하는 '로마서 8:37'을 보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 시간에 상영된 건 마크 웹 감독의 '리빙 보이 인 뉴욕'이었다. 상영관은 둘 다 6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핸드폰 빛을 빌려 티켓을 확인했다. '로마서 8:37', 6관이라 되어있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봤다. 6이란 숫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빛나고 있다. 마음을 쓸어 내리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중반 이후부터 한국 편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사전에 확인한 바 상영시간이 꽤나 길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 뉴욕을, 칼럼 터너와 제프 브리지스, 그리고 피어스 브로스넌을 비추고 있었다. 신연식 감독이 용쾌도 호화 캐스팅을 했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본 건 14시 20분에 상영된 마크 웹 감독의 '리빙 보이 인 뉴욕'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아차 했다. 귀신에 씌인 느낌이었다. 상영관을 정리하는 스탶에게 물었다. 여기가 6관이 맞냐고.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다. 미칠 것 같았다. 같은 제목의 외국 영화가 또 있는 거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시간을 착각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리빙 보이 인 뉴욕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을 보았다. 14시 20분에.




세상엔 묘한 우연으로 만나는 영화도 있나보다. 내가 이상한 느낌을 참아가며 자리를 뜨지 않았던 건 영화가 나를 끌어들이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을 영혼을 잃은 도시로 설명하며 시작하는 나레이션은 왜인지 이 영화가 종교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래서 더욱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소 진부하다. 성공한 출판사의 대표 이든은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조한나와 바람을 피우고 이를 알게된 아들 토마스는 조한나를 스토킹한다. 하지만 영화엔 마치 신과 같은, 선지자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름도 불명확한 F.K로 나오는 남자다. 그는 토마스가 사는 아파트 이웃으로 이사와 토마스와 교류를 하며 글을 쓴다. 영화의 후반부 그가 토마스의 친아빠로 밝혀지지만 영화엔 어딘가 삶을 초월한, 현실을 넘어선 진실의 기운이 가득하다. 동시에 영화는 토마스의 성장기다. 아직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싶은지도 모르는 그가 F.K와의 교류로 조금씩 삶을 가꿔간다. F.K는 어느 순간 그에게 말한다. '너의 세상이 이제야 이야기가 되었다'고.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10년의 기자 생활을 마치려 한다. 그래서 오늘 필요한 첫 준비를 마쳤다. 목표도 세웠다. 2020년, 1390000만 엔. Visionary Art. 츠루베가 말했던 얘기가 달리 이해됐다. 20대의 삶이 30대를 만든다는 것은 20대의 성과가 30대를 빛나게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실패도 30대의 삶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토마스는 아빠가 아닌 걸로 밝혀진 이든에게 '도망치지 않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괜히 다가온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4시 20분에 시작하는 '로마서 8:37'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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