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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3. 2017

우울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절감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유없이 찾아온 우울은 오늘도 여전해서 마음이 끝도 없이 암흑 속을 파헤쳤다. 오전에 갔던 병원에선 '어제 오늘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울적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다. 기장 수선을 부탁했던 바지는 여전히 소파 위에 놓여있고, 엄마는 어제 내가 사온 타코야키를 닮은 오코노미야키를 먹다 마셨다. 그렇다. 유치하다. 이건 다 내가 유치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별 거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혼자 삐진다. 이게 일상이 되버렸다. 하지만 이 별 거 아닌 일로 인한 우울은 꽤나 진지한, 몹시 심각한 딜레마를 들쑤신다. 우울을 어찌하지 못해 무얼할까 고민하다 말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노래를 트니 쿠루리의 음악이 흘러 나온다. 눈을 감았다. 떴다. '생각이 흘러흘러' 치명적인 우울에 도달한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있을 수 없잖아. 있을 수 없잖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있을 수 없잖아. 그런 거잖아. 방법이 없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코가 가려워져 한 손으로 닦아내니 콧물이 묻어나온다. 가슴이 미어졌다. 정말로 출구가 없는 것 같았고, 그야말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말하고 말았다. '있을 수 없잖아.'




'신이시여, 아주 조금만 그림에 그린 듯한 행복을 나누워 받을 그 날 까지 어떻게든 눈물을 모아놔 주세요.', 이 대사를 알 것 같았다. 왜 '눈물'인지 알 것 같았다. 아리송했던 가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 10월, 왜인지 여름으로 기억하는 어느 오후에, 나는 119에 실려갔다. 그랬었다. 그리고 변했다.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오후에 마츠모토 카나가 연출한 '마더 워터'란 영화를 보았다. 빤한 얘기도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안에서라면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역설적이게 말하고 있는, 그 외에는 별 의미도, 가치도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상이 지루해지면 바꿔봐요. 그래도 지루하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요. 새로운 경치가 펼쳐져 있을지 모르니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다.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절감했다. 우울이 알려줬다. 이제 어느 조직에, 어느 회사에 소속되는 건 무리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퇴원 후 몇 차례 시도했는데 전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깔끔하지 못했던 전 회사에서의 마지막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그냥 이제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하고 말았다. '있을 수 없잖아,'




그제의 꿈 이야기를 어제 글로 썼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오기'란 단어가 새어나왔다. 무의식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은 감각으로 새어나왔다. 꿈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꿈이었다. 그런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무기력함의 이면에는 '오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그러했다. 보이지 않는 조각을 모으고 있다.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희망을 모으고 있다. 쿠루리의 음악이 '기적'에 도착한 순간 나는 울컥이고 말았다. 내가 이제 바랄 수 있는 건 고작 기적 뿐인가 싶은 자괴감이 나를 울렸다. 하지만 항상 우울은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 느낌이 싫지 않다. 꽤나 좋다. 나는 코를 풀며, 눈물을 닦으며, '오기'를 부렸다. 메일을 두 통 보내기로, 카세 료와 오기가미 나오코, 그리고 '카이탄시 서경'에 관한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동시에 어쩌면 희소식이, 희망의 자락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희망을 갖는 것조차 주저하는 성미다. 그런 성격이다. 생각해버리면, 말로 뱉어내 버리면 될 일도 되지 않을 거라 두려워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더욱 '오기'를 부렸다. 애써 말해 보았고, 애써 생각해 보았다. 우울은 내게 이런 것들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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