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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06. 2017

소소함이 불편하다

소소한 행복으로 넘쳐나는 불편한 세상에서 나는



침대에 앉아 노트북 하는 시절에 안녕을 고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하고 있던 테이블은 다리가 짧은, 그러니까 앉아서 사용해야 하는 테이블이었다. 아마도 내가 '씨네21'을 다니더 무렵, 아니면 그 이후 여행지에 다니던 무렵 사용했던 무지의 테이블이다. 이태원 동을 시작으로 합정동, 그리고 신사동에서까지 사용했던 테이블은 어디가고 없었다. 엄마는 모른다고 하셨다. 어제 밤 엄마는 누나와 얘기를 하셨다. 누나는 항상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디가 내귀에 다가왔다. '인생 낭비야.' 내가 그간 해왔던 생각들이, 소비했던 감정들이, 흘렸던 눈물들이 어쩌면 인생 낭비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얼마를 울어도, 얼마를 생각해도, 얼마를 감정 소비하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씀은 쓸모없다.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그렇게 엄마가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내복을 입어도 다리는 시렸지만 참을만한 추위였다. 정리할 생각이 한 더미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어제 보낸 메일에 대해, 오늘 하려는 일에 대해. 어제 나는 모두 일곱 통의 메일을 보냈고 한 통의 메일도 받지 못했다. 모두 무시당했고 모두 외면당했다. 하지만 어떻게 감정이 방향을 틀었는지 괜찮게 느껴졌다. 고작 2차선임에도 신호가 8차선 급으로 긴 신호등이 내가 횡단보도 앞에 서자 파란 불로 바뀌었고, 담배를 한 대 피우자 버스가 금새 도착했다. 별 것도 아닌 일들이다. 나쁜 일만 반복된다 생각했고, 아직도 지난 해가 끝나지 않았다 생각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 안의 무언가가, 어딘가가 내일을 향하고 있었다. 삐친 채로 살 수는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게는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조금은 용기를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갖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나다. 말로 뱉으면, 생각으로 정리하면 금새 부서져 달아날 것 같아 안달했던 나다. 그렇게 소심하고 쫄보였던 나다. 하지만 며칠을 우울과 좌절 속에 있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어쩌면 꿈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목표를 세워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갖자고 생각한다. 꿈을 갖는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아마 이런 용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다음 주 주말에 람프의 공연을 본다. 그들의 인터뷰도 한다. 전주 영화제에서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메일을 보냈더니 '얼굴까지 기억난다'며 답변을 보내왔다. 인생 중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일 정도로 기뻤다. 아침이면 '좋은 아침'이라 말하자. 밥을 먹을 땐 '잘 먹겠습니다'라 말하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마지막 대사다. 아무렇지 않게, 별 일 아니게. 그렇게 살자.


소소한 행복이 유행이라는 글을 하나 보았다. 보는 순간 공감했다. 소소함의 미덕이 숨겨진 진실처럼 다가왔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새로운 삶을 발견한 듯 느끼고 감사했다. 온라인 서점의 첫 화면을 보면 소소함 천국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문장도 여러번 썼다. 하지만 소소함에 질식할 지경이다. 모두가 이제는 작게 살자고 말한다. 소소함이 감사한 건 어둠에 갇힌 현실이 바라볼 수 있는 내일이 고작 그것 정도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소함이 더이상 소소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힘든가. 왜 이렇게 소소함을 찾는가. 정작 소소한 행복이 필요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텐데, 그 얼마 되지 않는 이들 사이에 자신이 속한다고 생각하면 소소한 행복을 찾을 여유조차 없을텐데 왜 다들 그런가. 히로키 유이치의 영화 '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의 배우 타키우치 쿠미는 인터뷰 중 히로시마 원전 주민의 말을 하나 전했다. '슬픔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에요.' 소소한 행복은 여유 속에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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