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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08. 2017

반쪽의 나를 찾다

2017을 보내며, 2018을 기다리며



뒤돌아본다. 그렇게 돌아보지 말자 생각했던 날들을 돌아본다. 굳이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는 시간보다 나에게 왔다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시간은 본인이 실감할 때 비로서 흘러간다. 병원에서 시간은 오늘이 어제같았고, 회사에 다닐 때 오늘은 어느새 가고 없었다. 입원을 하고 집에서 쉬는 것도 일년을 넘겼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그대로인가를 생각하면 아득한 벌판을 보는 기분이다. 가슴에 무수히 걸려있어 마음을 아프게했던 일들은 세월과 함께 무뎌졌고, 조금은 더 간직하고 싶었던 예쁜 순간들은 빛바랜 기억이 되고말았다. 나츠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읽는다. 사놓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책장에 오래 꽂혀있던 책이다. 그가 런던탑을 관광하고 돌아와 적은 글들을 읽는데 지나간 시간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도, 친구도,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을 글이 해내고 있었다. 도착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 아픔은 이제야 자리를 찾았다. 시간이 흘렀다. 

 

혼자서 오래 앓았다. 말할 수 없었고, 말하고 싶지 않았으며, 말해선 안됐다. 그런 시간을 보냈다. 기억은 꽤나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어느 여름 나는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정지됐고 모든 게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모든 게 어둠이었다. 이후로 나는 반쪽으로 살았다. 타인이 보는 나는 나의 절반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반쪽 짜리 인생을 살았다. 기쁨도, 즐거움도, 재미도, 웃음도 반쪽이 되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을 전부 표현하며 살진 않는다고 하지만 내게 그 전부는 전부 이상이었다. 그렇게 용케도 살았다. 하지만 이제 그 반쪽을 되찾으려 한다. 맘껏 기뻐하고, 맘껏 즐거워하며, 맘껏 웃으려 한다. 병원에 있으면서, 아니 퇴원 후 집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제로 상태에 떨어졌다. 우울할 때면 마이너스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두웠다. 화장실에 있던 모든 물건은 버려졌고, 테이블과 이불, 담요와 옷 등 수 십개의 물건이 없어졌다. 아픈 사람은 말이 없으니 묻어두려 했다. 많은 눈물을 흘리니, 엄마의 말에 의하면 인생 낭비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나츠메 소세키는 '빼앗김에 대한 자각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라고 썼다. 그랬다. 고통이었다. 단순히 물건 하나가 없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기억이, 삶이 빼앗긴 것이었다.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주는 것이 나는 위로라 생각한다. 내겐 위로가 없었다. 그런 시간을 살았다.




스쳐가는 바람에라도 빌어보고 싶었다. 떨어지는 낙엽에라도 기도하고 싶었다. 10이란 숫자는 어딘가 마침의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성취감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일을 하고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으니 11년이 흘렀다.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에엔 예감이란 게 있고 나는 그 예감에 기대려 했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은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후퇴를 하고 있었다. 지독한 기침에서 폐렴으로, 그리고 세 번의 입원으로.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다. 어떤 예감도 믿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기만 할 뿐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를 갖는 건 나고, 나의 시간이며, 나의 의지라는 생각도 든다. 어리석게도 이제야, 서른 여섯이나 먹어 그런 생각을 한다. '삶이란 큰 길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면 그들 역시 살아야만 했으리라'고 나츠메 소세키는 썼었다. 나는 선택한다. 내일을, 내년을, 그러니까 살기를. 각오와 의지로 살려고 한다. 내 절반과 함께 2017년을 닫고 2018년을 열려한다. 애초 시간에 단위 따위 없었다.


당신은 다음 주 주말에 람프의 인터뷰를 한다. 당신은 일본에서도 보지 못한 공연도 본다. 당신은 브런치에 만들어 놓은 네 개의 매거진 중 하나를, 혹은 네 개의 매거진을 편집해 '씨네21' 때부터 써오고 있는 아이디 monoresque란 이름의 책을 부끄끄를 통해 낸다. 당신은 '도너츠 홀'이란 이름의 매거진 이름을 '일본을 생각하다'로 바꾼다. 당신은 3월에 제빵 학원에 등록을 하고 빵을 배운다. 당신은 돈을 모아 일본에 간다. 당신은 '비져너리 아츠'라는 곳에 입학을 한 뒤 또 빵을 배운다. 당신은 학교가 있는 시부야 사쿠라가오카 쵸에 집을 구하고 열심히 산다. 당신은 그렇게 제빵사가 된다. 당신은 한국에 들어와 빵집에 취업을 한다. 당신은 열심히 일해 또 돈을 모은다. 당신은 독립을 하고 인천 전동에 '도너츠 홀'이란 이름의 가게를 차린다. 당신은 가게를 빵집이지만 책도 팔고 커피와 기본 음료도 파는 공간으로 만든다. 도너츠는 팔지 않는다. 당신은 이벤트를 한다. 당신은 빵에 관한, 영화, 음악 등 문화에 관한 토크를 한다. 책은 한국과 일본의 독립 서적과 전적으로 당신 기호에 따른 잡지 등을 판매한다. 당신은 중개가 아닌 직접 발로 뛰고 고른 책들로 가게를 채운다. 당신은 잡지를 발행한다. 역시 '도너츠 홀'이란 이름으로, 소소하고 재미난 얘기들로 채운다. 당신은 얼마 되지 않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 글과 사진도 받는다. 당신은 꿈을 갖는다. 당신은 조금은 더 대범하게, 조금은 더 용기를 낸다. 당신은 반쪽이 아닌 온전한 당신으로 산다. 당신은 얼마 남지 않은 2017년을, 2018년을 그리고 내일을 산다. 夢を見たく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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