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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26. 2017

아쉬움을 뒤로하고, 2018

얼마나 많은 아쉬움의 시간을 살았을까.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내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가 그것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 회사를 옮길 때, 혹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나는 낯을 가리는 사람으로 설명됐다.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먼저 말 걸지 못했다. 자연스레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지 않으면 거의 외톨이었다. 다행히도 내겐 그런 몇몇의 친구가 있었다. 떄로는 여자였고, 때로는 호감을 갖고 있던 남자였으며, 때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냥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고, 웃음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반장이었다. 그의 엄마는 나를 좋아했다. 2층 집 친구의 방에서 밤을 새우며 시험 공부를 했던 날이 기억난다. 작은 설레임을 감출수 없었다. 난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나 정도 키에, 멀끔한 얼굴을 한 그는 댄스 그룹 연습생을 했다고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언덕길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언덕길을 올라 자습실에서 수학을 가르쳐줬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세상에 전부인 것 같던 그 시절, 난 혼자가 아니기 위해 몹시 애썼다. 내가 아닌 내가 되보려 했고, 어울리지도 않는 걸음걸이와 말투를 연습했다. 다행히도 몇몇의 친구로 인해 애씀이 헛되진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그저 아쉽게 흘러간다. 어떤 바람에도, 어떤 어둠에도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인지라 나는 아쉬움의 시간을 걸어왔다. 기자가 되어서도,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내 시간은 아쉬움이란 구멍을 품고 흘러갔다. 36. 아쉬움을 생각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상한 기운에 휩싸이는 날은 도쿄에서도 찾아왔다. 카나이 후유키를 만나러 시부야의 '온 더 코너'란 카페로 향하던 날. 구글 맵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육교를 사이에 두고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기분은 짙은 어둠 바닥으로 하락했다. 흘러내리는 땀, 묘한 감각의 자책, 원인 모를 후회와 어둠에 갇힌 자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인터뷰를 앞두고 그랬다. 카페에 앉아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매쉬 포테이토가 나오는 메뉴를 차가운 커피와 함께 시켰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먹었다. 테이블 한 켠에 질문지를 올려놓고 모든 걸 지우려 애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운치있고 힙한 곳이었는데 당시의 내겐 그냥 어둠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흐르듯 감정도 흘렀다. 카나이는 거의 늦지 않고 도착했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의 느낌보다 작았고, 생각했던 만큼 깊이 있었다. 이야기 서두에 그는 자신이 게이라고 이야기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미디어, 진을 만드는 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커밍아웃이었다. 순간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럴 자리가 없었다. 이야기를 더듬으며 다음 질문을 생각하기에 바빴다. 어쩌면 또 다시 아쉬움이 진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나는 빨리 호텔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이야기의 여운이 다가왔지만 한 시간 전의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았다. 함께 밖으로 나오며 그는 '또 얘기할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후회가 된다. 조금 더 다가갔으면, 어둠을 이겨냈으면,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얼굴까지 기억나요'라고 했다. 기뻤다. 10년도 더 전, 전주 영화제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났던 람프의 소메야 타이요는 메일에 그렇게 써서 보냈다. 몇 번의 메일이 더 오고갔고 공연 다음 날 람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메일이 현대 시대의 유일한 아날로그처럼 느껴졌다. 인터뷰 하루 전, 소메야는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기타를 일본에 보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싶었다. 꽤나 덩치가 나가는 물건을 해외로 보내는 일에 대해 조금도 아는 게 없었지만 그랬다. 하지만 핸드폰이 말썽이었다. 지난 밤, 음악과 영상이 부딪혔는지 오류가 났고,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사진도, 녹음도 해야하는데 모든 게 무너졌다. 또다시 우울에 졌다. 비관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돕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오래 전 핸드폰을 꺼냈다. 녹음 어플을 다운 받았다. 테스트를 해봤다. 안되지 않는다. 내일을 떠올리며 지도를 그렸다. 인터뷰 장소인 여의도의 호텔과 기타를 보낼 우체국의 약도를 수첩에 그려넣었다. 하필이면 눈이 내렸다. 전차는 멈추기 일쑤였고, 드라이하고 처음 입은 코트엔 눈이 녹아 얼룩이 지려했다. 다시 기분이 이상한 기운에 휩싸였다. 이해할 수 없는 징후다. 기타는 영등포 우체국까지 가야만 보낼 수 있었다. 호텔 근처의 우체국은 너무 작았다. 소메야와 나는 택시를 타고 영등포로 갔다 다시 여의도로 왔다. 그는 내게 3시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괜찮으면 함께 하지 않겠냐는 뉘앙스의 말을 건넸다. 두번이나 그랬다. 하지만 어둠은 아직 내 곁에 있었고 나는 핸드폰을 고쳐야 했다. 후회가 된다. 조금 더 다가갔으면, 어둠을 이겨냈으면,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빨리 걷는다. 걸음이 빨라졌다. 혼자 걷는 거에 익숙해져서 인 것도 같고 거리에 있으면 어느새 무언의 이상한 기운에 휩싸여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상쾌하게 나왔다가도 우울해지고 우울하게 나왔다가도 상쾌해진다. 며칠 전 어느 아침도 그랬다. 버스에서 내려 또 다시 버스를 타려 걷는 도중 어느 남자가 전단지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순간 교회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살짝 목례를 하고 길을 가는데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그란 생김새에 웃고 있었다. 받을 걸 싶었다. 마음이 찜찜했다. 그저 친절한 한 마디였을 텐데 굳이 무시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흡연 장소에 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남자의 얼굴을 생각했다.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모든 감각이 아쉬움으로 뒤덮인 시간 속에 떨어졌다. 후회가 될지라도 보낸다. 설레는 마음이 차게 식은 커피 속에 떨어진다 해도 말을 건다. 보내고 나서, 말을 걸고 나서 한참을 앓겠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보낸다. 혹시나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끙끙대도 보낸다. 일본에선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을 쿠리봇찌(クリぼっち)라 한다는데, 그 신세를 면했다. 좋아하는 사람(Nikki S. Lee)의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쌀과 밀가루가 섞인 도우의 피자를 먹고 영화를 보았다. 얼마나 많은 아쉬움의 시간을 살았을까. 얼마나 많은 후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까. 36. 아쉬움과 후회를 생각한다. 내가 온전하지 않기에 낯을 가린다 생각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아프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온전함이란 건, 완전함이란 건 누군가와 함께일 때 완성되기도 한다고 느낀다. 아쉬움의 시간이 어둠과 함께 걷히는 새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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