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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28. 2017

지금이 추억이 되기 전에

바깥은 2017년. 오늘을 살자. 오늘을 생각하자. 오늘을 느끼자.



메리 크리스마스라 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 말한다. 시간이 그렇게 흐른다. 2017년이 몇 프로 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2016년과 헤어지기 위해 애썼던 한해다. 세 번을 입원했고, 그 중 두 번을 도망치듯 퇴원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머물렀던 기억인데 그곳에 해는 뜨지 않았다. 나리타 공항에서 짐을 버리고 신주쿠를 헤매었고,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사질렀다 탈의실에 두고 나왔다. 짐이 많다는 이유였다. 매장을 나서는 등 뒤로 '스미마셍, 저기요'라 울리던 어느 여직원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처음 해본 입원인데 암흑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무 미웠고, 매우 초라했으며, 몹시 작았다. 하물며 퇴원 수속의 지난한 시간을 참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일을 바라보며 살았다. 다음 식사가 오는 시간을 기다렸고, 퇴원하는 날을 생각했으며, 계절이 바뀌기를, 봄이 오기를 기도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힘들었다. 그런 시간만이 흐른다는 절망에 울었다. 하지만 감사의 시간은 항상 곁에 있었다. 몸부림을 치며 우울을 걷어내니 그런 감각이 살아났다. 폐렴은 일종의 트리거였다. 119에서 시작된 중환자실 생활은 내 안에 곪아있는 모든 상처를 드러냈다. 거의 모든 과를 돌며 검사를 받았고, 강남 세브란스와 인천 길병원에서 3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현태백화점 무연센터 점 앞의 차가운 바람, 맨발의 나, 수상한 사람들과 어느 이름 모를 폭력. 시간이 잠식당했다. 그런 마지막이었고 그런 시작이었다.  



설명되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이해받을 수 없는 시간의 계속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아팠던 건 몸보다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갑에 들어있어야 할 엔화는 왜인지 수트 케이스 속에 깊숙히 박혀있었고, 엔화를 찾으려 가방을 연 나는 짐들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방을 놔둔 채 공항을 뒤로했다. 여기서부터, 아니 이미 이전부터 내게는 괴물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인지 여권과 돈이 든 봉투가 수트 케이스 안에 있을 거란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다시 공항으로 향했던 밤을 기억한다. 왕복 택시로, 공항을 뒤로한지 불과 20시간 만에. 건물 하나 없는 도로는 어둠 그 자체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직원은 경찰서에 가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모든 게 싫어졌다. 다시 택시를 탈까 생각하다 호텔을 물었다. 다행히 공항 내에 호텔이 있었다. '9 Hours'라는 심플하고 모던한 캡슐 호텔이었다. 내겐 아무 것도 없었다. 시계도, 핸드폰도. 무수히 많이 시간을 물었다. 조금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남자가 내 앞에서 무어라 말을 하는데 마치 유령같았다. 남자의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 언제인지 모를 새벽 지하를 걸어 규동을 먹었고, 넥스 시간을 쳐다보다 택시를 탔다. 다시 어둠과 어둠으로 이어진 길이 시작됐다. 규동에선 규동 맛이 나지 않았다. 다리에선 피가 흘렀고, 여권과 봉투는 매고 온 파란 백팩 속에 있었다. 아침이 곁에 와 앉았다. 시계가 아침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겨낸다. 그런 시간이었다. 모든 게 어둠을 향하고 있었고 모두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그런 우울 속에 갇혀 살았다. 하지만 내게도 빛은 흘렀다. 아침은 찾아왔다. 김희주 님의 연락으로 퍼블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 연으로 두 번째 프로젝트 역시 할 수 있었다. 오래 전 썼던 포틀랜드 기사가 계기로 창간하는 잡지 '나우' 매거진에 포틀랜드 글을 쓰며 웃었던 날들을 돌이켜 볼 수 있었고, 적지만 몇몇 매거진에 글을 조금 쓰기도 했다. 처음으로 통역이란 일을 해본 것 역시 내겐 새로운 아침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온전히 빛나지 못했다고 느낀다. 3개월의 입원, 폐렴이 불러온 지나간 상처들의 자욱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징크스를 믿으시나요? 아침 식사 후의 짧은 휴식을 믿으시나요? 정해진 시간, 그렇게 흘러가는 운명을 믿으시나요? 이러한 질문 앞에 나는 작았다. 초라했다. 낮지 않았다 생각했던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다.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보는 내가 밉고 싫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떤 이름 모를 비관의 추억에 다름없다고 느낀다. 지나간 시간을 지울 순 없지만 흘러가는 걸 멈출 수도 없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타고, 폴라리스나 스피츠의 노래를 틀고, 방송을 기다린다. SNS의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바라본다.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두루고, 향수를 뿌리고, 신발 끈을 매고. 바깥은 2017년. 오늘을 살자. 오늘을 생각하자. 오늘을 느끼자. 지금이 추억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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