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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13. 2018

노래가 도시가 되는 순간

노래가 도시가 되는 순간, 나는 꿈을 꾼다.


노래에서 도시를 느낄 때가 있다. 도쿄에 살던 시절 미타카다이 역에서 무레 6쵸메까지 걸으며 들었던 노래는 제이팝도, 케이팝도, 보아의 노래도 아니었다. 그건 어떤 도시의 멜로디였고, 나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의 보아의 시간이었다. 2001년 열 여섯 나이에 일본에 건너가 홀로 살았던 보아는 아마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많이 외로웠을 것이고, 많이 울었을지 모른다. 그녀가 어느 곡의 가사를 쓰며 유일하게 한자로 적은 건 눈물, 涙, 한 자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보아는 'This is who i am'에서 '당신에게 무언가 해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나 의외로 인디펜던트하다' 노래했고, '모르겠지만 꽤 싸워왔어. 가끔은 솔직하게 받아줘'라 아픔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수차례 '이것이 나야, 너는 몰라'라며 자조도 했다. 내게 보아의 7번째 일본 앨범인 'Identity'는 매우 외로운 모놀로그이고, 동시에 매우 강인한 엘레지며 , 나아가 어느 도시의 눈물이다. 어느새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팬을 향해 노래한 'my all'을 만날 때 내게 노래는 누군가의 품이 되었다.  



ゆず라 쓰고 ゆうき, 용기라 읽는다. 어느 노래라 할 것 없이 이들의 노래엔 거리의 꿈이, 희망이, 내일이 담겨있다. 요코하마 시 이세자키쵸 마츠자카야 백화점 앞에서 노상 라이브를 하며 음악을 시작한 두 남자는 '죽을 정도로 넘어져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보물', '큰 빗방울이 되어 대지를 다져낼 눈물'을 노래했고, '그렇게 울지 않아도 돼. 곁에 있어. 그러니까 너의 다리로 걸어'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물론 그저 흔하디 흔한 용기와 희망의 노래일 수 있다. 꿈을 얘기하는 노래는 쟈니즈 노래만해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유즈의 노래엔 어떤 장르로도, 어떤 카테고리로도 아우를 수 없는 어떤 정서와 감정이 있다. 나는 그것을 도시의 아날로그라 말하고 싶고, 동시의 눈물이라 쓰고 싶다. 보아의 노래가 그러하듯 유즈의 노래도 그들 자신 외의 그 어떤 이름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시간을 품고 태어난 노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만나고 그렇게 도시의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진다. 내게 그건 보아의 노래였고, 유즈의 노래였으며, 동시에 lamp와 시이나 링고, 그리고 Paellas와 D.A.N, Polaris의 음악이다. 노래는 도시가 되었다.




긴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 처음 갔을 땐 백화점과 빌딩 숲 복판에서 헤매기만 했고 모든 게 완벽하고 빈 틈 없는 공간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두 번째 갔을 때 긴자는 차이가 교차하고 시간이 쌓여 이뤄진 고유한 정서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비가 내리는 길가를 걸으며 포스터 디자이너 카메쿠라 유사쿠의 전시를 보았고 조금 더 빗길을 걸어 로프트 긴자에서 열린 On the table 전시를 보았다. 지난 해 시이나 링고는 긴자에 새로 오픈한 쇼핑몰 긴자 SIX의 테마 송을 토타스 마츠모토와 함께 불렀다. 시이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있는 정서'를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격정의 역사가, 그 안에 가득 찬 뜨거운 눈물과 마음이 긴자엔 쌓여있었다. 그러니 너무나 완벽하고 조금의 틈도 없어 재수없다 생각했던 내 마음은 오해였다. 그곳엔 참아낸 아픔, 이겨낸 고독의 흔적이 있었고, 그런 시간이 흘렀다.



Paellas의 노래를 들으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거리가 생각난다. Polaris, D.A.N의 노래를 들으면 도겐자카 너머의 시부야나 하치코 입구 저편의 사쿠라가오카쵸가 떠오른다. 스쳐 지나가는 꿈과 스쳐 지나가는 만남, 스쳐 지나가는 아픔과 스쳐 지나가는 기쁨이 그들의 노래와 함께 흐른다. 그건 시부야의 노래고, 동시의 나의 어느 한 구석의 노래며, 나아가 도시의 어떤 찰나에 관한 노래다. lamp를 만난 순간을 기억해 낼 수 없다. 아마도 하나의 우연이었을거라 추측하는데 그저 어떤 환상처럼 남아있다. 내게 lamp의 노래는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어떤 안심 속에 있다. 그건 설레임의 다른 말이고, 희망의 한 조각이며, 내일의 한 자락이다. '보랏빛 그라데이션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었어'라 노래할 때 나는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꿨고, '빌딩 사이로 꿈을 꾼다'라는 대목에선 아픈 나의 현실에도 내일은 찾아온다는 진부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그들이 노래하는 '아침이 오기 전'과 '밤이 끝나지 전'은 가려진 도시의 시간임과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거기서 나는 안심했다. 조금은 행복했고, 조금은 편안했다. 그건 내가 찾은 도시의 안락한 품이었고 그들이 선사한 따뜻한 시간이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도시의 시간이었다. 노래가 도시가 되는 순간, 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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