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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14. 2018

불꽃놀이, 옆에서 보고 싶다

남아있는 여름, 찰나의 시간, 삶의 이면


어느 여름 날의 오후로 기억하는 10월의 하루가 있다. 독한 기침으로 회사를 등뒤로 하고 집에서 지내던 날, 늦은 점심을 먹으로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가게에 들어가 차돌배기 덮밥을 시켰고, 유아인을 닮은 남자가 대각선 오름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많이 먹지 못했다. 혼자였고 오렌지 한 조각을 남길 뻔하다 입에 물었으며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묘하게 슬펐다. 직선으로 2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아무런 생각 없이 걸어 집에 들어갔다. 약을 먹고 두 통의 전화를 주고 받고 그렇게 병원이었다. 이 날의 기억은 왜인지 선명해 아직도 가끔씩 나를 그 착각 속 10월의 여름 날로 데려간다. 1993년 일본에선 'If もしも'란 옴니버스 드라마 시리즈물이 있었다.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됐고 기획의 타이틀답게 '만약'이란 설정으로 매회 이야기가 하나의 분기점에서 갈라지는 형식을 취했다. 이와이 슌지의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역시 이 기획물 중 하나다. 드라마는 단순하다. 불꽃이 옆에서 보면 어떤 모양일지를 확인하기 위해 등대로 떠나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여름이란 이름의 평행 우주를 보았다. 현실 곁에 존재하지만 찰나에 그치고 마는 시간을 드라마는 그려낸다. 소년들의 서툰 고백, 장난이 섞였지만 절대적인 어떤 진심의 내기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의 공기 속에 흘러간다. 드라마의 원래 제목은 '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기획의 룰과 많이 부딪혔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이와이 감독이 옆에서 바라본 불꽃놀이의 모습을 온전히,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택형의 질문은 여름이란 세계를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한 타협이었다. 여름은 어딘가 다른 세계의 질감을 준다. 김애란 작가가 소설의 제목을 '바깥은 여름'이라 썼을 때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그 책은 내게 현실 너머를 향했다. 여기서 바깥은 공간의 밖 뿐 아니라 시간의 밖 또한 의미한다. 이와이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바탕엔 미야자와 켄지의 '은하철도의 밤'이 흐른다고 말했다. '은하철도의 밤'은 신비로운 여행과 친구의 죽음이 얽힌 동화다. 그 죽음의 기운이 이 드라마의 여름 속 어딘가에도 스며있다. 여름은 유독 치명적이다. 흘러가는 대신 끝나버리는 것이 여름이다. 그리고 내게는 2년 전 여름이 그랬다. 가을의 자리까지 치고들어온 여름은 내 삶의 한 시기를 끝내버렸고, 그렇게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것이 멀어져갔고, 사라졌으며, 많은 것이 아픔으로 남았다. 아마도 나는 매번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이 문턱에 설 것 같다. 10월에 남아있던 어떤 여름 날에. 그러니까 삶의 어떤 찰나의 세계에. 이와이 감독이 옆에서 바라본 불꽃 놀이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위험하며, 또 때로는 치명적인 것이 여름이다. 어쩌면 이것이 여름의 본 모습이란 걸, 가을 품에 남아있던 여름 날이 알려주었다. 불꽃놀이, 옆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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