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24번째 '도망친 여자'
아침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홍상수의 새 영화 '도망친 여자'엔 몇 번의 새벽을 울리는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단순히 '집안이 망한다'란 오랜 속담 속 한 구절에 '도망친 여자'라는 파괴된 가정을 암시하는 타이틀을 엮어붙인 조악한 문장이지만, 그의 이번 영화, 스물 네 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를 보면 새벽의 암탉, 암탉의 울음 소리를 간과할 수 없는 모티브가 가득하다. 다만, 여기서 암탉은 오랜 세월 속 성차별적 비유로 굳어진 남자의 대립항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아침을 열어젖히는, 도망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현실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조금 다른 표정의 아침이다. 수탉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암탉의 별 거 아닌 장면을 지나 영화는 밭일을 하는 영순(서영화)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소소하지만 남다른, 그래서 묘하게 아른거리는 세계가 시작한다. 그러고보면 '풀잎들'에서의 시작은 민희가 카페 앞 풀들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는데, 영순은 집앞 텃밭에서 잡초를 뽑아낸다. 카페가 아닌 집, 바라봄이 아니라 생활의 노동. 난 이 순간 홍상수가 다시 삶을 살아가자고 결심을 한 게 아닐까 상상했다.
'도망친 여자'는 영순,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 그리고 김민희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남편이 출장간 사이 '감히'는 세 명의 친구를 만난다'라고 쓰고있지만, 감히의 방문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네 여자 사이의 '만남'이라기보다, '감희'란 인물이 지나가는 새벽, 산, 비오는 아침, 그리고 닭 울음 소리거나 창 너머 바라보는 산과 같은 영화다. (아마도) 서울을 떠나 한적한 산자락에 살 터를 잡은 영순, 창 너머 인왕산이 보이는 집으로 얼마 전 이사를 온 수영, 그리고 그 산 너머 어딘가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는 우진은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고있지만, 감희의 방문, 한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보이지 않던 일상의 뒷면, 삶의 모순, 모순의 아름다움같은 게 드러난다. 존재할 것 같은 진실함의 순같이 평범한, 소소한 하루처럼 흘러간다. 우연히 그곳엔 모두 여자만이 있고, 어쩌다 남자는 등장했다 사라진다. 감희는 두 차례 CCTV 너머로, 그리고 현관 인터폰 화면으로 영순과 수영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감희를, 영순, 수영, 우진과 다른 층위의, 절친한 사이이지만 이질적인 세계를 응시하는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감희는 영순과도 수영과도 우진과도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만, 유일하게 똑같이 이렇게 말한다. "우린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은 떨어져 있으면 안된다고 해서." 아마도 현실 불가능의 문장, 관계, 그리고 사랑. 혼자가 된 영순과 수영과 우진 곁에서 감희는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보고, 최소한 그녀는 이곳이 아닌 너머를 은유한다.
홍상수 감독은 매번 새벽에 긁적인 쪽대본으로 촬영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어느 틀에도 머무르지 않지만, 그의 영화엔 그곳에만 존재하는 이상한 질서의 팁이 있다. 초기엔 반복과 차이에서 생겨나는 환시의 불온함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최소의 단위로 세계 너머의 보이지 않던 세상을 감지하는, 발견해내는 조용한 산책자의 길을 간다. 특히나 칸느에서 촬영된 '클레어의 카메라'와 줄곧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는 '풀잎들', 그리고 이번 '도망친 여자'에서. 바로 전작인 '강변 호텔'을 보면, 눈 내린 강변의 호텔, 다른 타이밍에 찾아온 두 명의 아들, 경수와 병수라는 한 자만 다르고 같은 이름, 남자와 여자의 기묘한 동석같은 이질감의 병렬은 '보지 않음'과 '보지 못함'의 사이, 삶과 죽음, 생의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강변, 그곳에서만 보이는 현실 너머의 현실을 은유했다. 강가에선 자연스레 너머를 바라보고, 남자 곁엔 여자가 있고, 병수가 있어 경수란 이름이 지어졌고.... 영화는 한 남자의 종말로 끝이 나지만, 진정한 엔딩은 그가 남겨놓은 시와 그걸 읽는 그의 목소리다. 어느 순간 홍상수는 반복과 차이로 인한 파괴가 아닌, 이곳에 엿보이는 작은 기적, 그렇게 현실을 벗어난 순간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 칸느에서의 '만희'와 '풀잎들'을 지나온 김민희가 수행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도망친 여자'에서 김민희의 이름은 감희다.
세 개의 에피소드, 세 번의 만남,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상영 시간이 77분밖에 되지 않는 이 영화는 이렇게 단촐한 3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다. 영화엔 인왕산과 나머지 이른 모를 두 개의 산이 등장하고, 별 다를 사건 없이 잔잔한 이야기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단 세번, 그리고 한 번이다. 이번 영화의 음악은 홍상수 감독 자신이 작업했다고도 한다. 감독 본인은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영화엔 자연스레 갖춰지는 별 거 아닐 작은 세계의 질서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질서'들이 그의 영화, 일상의 사소한 틈들을 사유하게 한다. 영화 초반 영순이 이웃 여자에게 "(얼굴) 하나도 붓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도 붓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건 그저 그런 다반사로 스쳐가지만, 감희의 방문 이후 "머리 잘 잘랐어"라고 했다가 "정신 나간 중학생같다"고 말했을 땐 '말은 곧 진심인가'란 질문이 삐져나온다. 반복이 야기하는 익숙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 하지만 이러한 건 홍상수 영화의 초기부터 보였던 징후들이고, '도망친 여자'에선 그 모순의, 자기부정의, 실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혹은 흘러가는 시간의 어떤 '변이점', 그럼에도 괜찮은 순간들을 확보하려는 애씀이 보인다. 비개인 아침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 같은. '채식을 하겠다는 마음은 예쁜 거야'라는 순영의 말과 같은. '도망친 여자'엔 유독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압도적으로 여자들 사이의 말이 많다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 홍상수 영화는 어쩌면 '너머보다 이곳', 현실에 비치는 미지(未知)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산을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게 좋았다"라고 말했는데, 어김없이 '너머의 말'이라 생각했던 나는 감희의 산책길, 두 번의 감상을 지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산,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았던 세계, 너머의 어디가 아닌 이곳의 어디임을 어슴프레 느낀다. 김민희와의 작업 이후, 홍상수 영화에 알 수 없는 실체를 향한 갈구, 죽음 앞에 발길을 돌리는 남자의 서사는 조금씩 물러나고, '5년동안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감희는 결코 현실 불가능할 사랑, 아름다움, 진실의 파편들을 산의 측면을 바라보듯 걸어간다. 집요하게 찾아오는 스토커 시인과의 작은 트러블 이후 감희가 수영에게 건네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 아마도 남자 친구를 뺏어간 친구 우진을 우연히 만나 사과를 받고 손을 맞잡는 순간, 남편과 힘들게 이별한 영순에게 "우리 남편이 언네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해주는 감희의 친절함. 전체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알 것 같고, '사랑에 증명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랑한다 느끼는 순간은 있다. 그걸로 어쩌면 괜찮은 시간을 감희는 환기한다. 비 오던 아침과 산자락 아래 집, 닭 욺음 소리와 고양이 한 마리, 타버린 깜파스와 유리잔의 막걸리. 그리고 영순과 수영과 우진과 감희. 남자는 없지만, 나머지 한 쪽은 알지도 못하지만, 예쁘고 괜찮은 시간이 흘러간다.
'도망친 여자'라고 하지만, 영화에 도망친 여자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순도, 수영도 혼자 살고있기는 하지만, 밭을 갈구고 고기를 구워먹고 와인잔을 기울이는 그곳에 도망나온 여자의 서글픈 감정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제법 잘 살고 있는 독립한 여자들의 오늘을 보여주는데, 그건 감희가 부러워하고, 재밌게 산다고 말하고, 대단하다고 얘기하는 일상이기도 하다. 도리어 그곳엔 (무언지 서술하진 않지만) 수탉에 등허리를 쪼이는 삶에서 벗어난, 일종의 해방, 하고싶지 않은 말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야 하는 현실을 뒤로한 경쾌함같은 혼자의 가뿐한 세계가 고요하게 흐른다. 그 세계는 그저 평범하고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와 하루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감희가 세 명의 여성이 아닌 한 명의 남성을 만나는 대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네 번째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홍상수는 도망의 흔적, 영순과 수영과 우진이 넘어온 바다의 한자락을 보여준다. 우연히 우진이 일하는 영화관을 찾았던 감희가 오래 전 사귀었던 남자를 만나고 그의 말들을 피해 나왔던 영화관에 다시 들어갔을 때, 굳이 말하자면 유일하게 도망을 쳤을 때, 여태 본 적이 없는, 아마도 처음으로 마주하는 파도가 몽연하게 장대하게 펼쳐진다. 거의 텅 비어있는 극장과 1열 앞의 외국인 남자 관객, 몇 열 뒤의 감희와 형용할 수 없는 파도와 파도. 이 바다에서 물결은 어느 하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고, 그렇게 현실 속 조금은 생소한 현실 혹은 자연, 어쩌면 너머의 세계를 품어낸다. 홍상수가 김민희를 빌려 이야기해왔던 몇 편의 영화를 생각하면, 이 '도망'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감희는 무언지 모를 미소를 짓고, 미래는 어느새 여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