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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23. 2018

신(新)배우의 탄생
서른 세 번의 유아인

유아인의 시간은 현실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확장하며 나아갈 뿐이다.


2008년 11월 유아인을 만났다. 물론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불안한 청춘 종대를 지나 정반대의 청춘, 기범(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시간을 막 졸업한 뒤였고 나는 '씨네21'에서 2년차 영화기자 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과 영화를 만나던 때였다. 달라보였다. 처음부터 그랬다. 매주 일요일 아침 TV를 켜면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언저리를 서성이는 소년의 시간이 흘렀다. 새로웠고 흥미로웠으며 아름다웠다. 성장 드라마'란 꼬리표를 달고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그는 유독 성장을 향해 있지 않았다. 아니 성장이란 개념을 무화시켰다. 유아인은 성장이란 개념 밖에 존재했고, 때로는 너머에 있었으며, 가끔은 뒷편에 존재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조숙하다는 말이, 성숙해 보인다는 말이 그의 이름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유아인은 애초에 다른 시간 속에 있었다. 홀로, 유일하게, 그 어떤 캐릭터 프레임에도 수렴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그 곁에 흘렀다. 기꺼이 나는 매주 일요일을 그와 함께 보냈다. 개인적으로 다른 감각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고, 거기서 자유로웠다. 유아인는 내게 위저의 'Butterfly'였다. 어떤 아름다운 이질적인 존재. 상청동의 어느 가을, '유아인의 시간이 흘렀다.  



'왜 사니?' 유아인의 시간이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던 건 노동석 감독의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였다. 종교에 빠진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빠 사이에서 오직 형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종대는 현실에 도착하지 못한 청춘, 그 자체였다.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영화라고 얘기하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유아인과 닮아있다. 초반부터 쏟아지는 '(세상은)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 '가장 먼 미래가 뭐야', '왜 사니'란 대사가 얘기하듯 종대는, 아니 유아인은 현실에 수긍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실제로 유아인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고, 열일곱 나이에 홀로 서울에 올라왔으며, 무수한 잡음과 구설수를 예상하면서도 할 말은 하고 살았다. 비범하다. 물론 그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얘기하는 '최강칠우'를 포함 '성균관 스캔들', '결혼 못하는 남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완득이', 그리고 '깡철이' 등을 거치며 보다 대중의 프레임에 들어섰다. 하지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글로서, 스튜디오 콘크리트란 이름의 플랫폼으로 자신을 발화했고, 배우란 프레임서조차 벗어나는 시간을 살았다. 유아인은 유아인 이상이다.



시끄러웠다. 끝이 나지 않았다. 댓글은 댓글을 나았고 비판은 비판을 넘었으며, 조롱은 조롱을 비난하고, 비난은 비난을 조롱했다. 흡사 마녀사냥의 꼴이었다. 불과 두 달 전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 아수라 속에서 명확하고 선명하며 자명한 시간과 마주했다. 굳이 구구절절 사태를 훑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게 보였던 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이의 철저한 자세였고 명확한 태도였으며 아름다운 노력이었다. 유아인이 지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끝내 글로 맞선던 건 어떤 오기도, 일시적인 분노도, 거만한 비아냥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시간을 살았고, 말할 권리를 행했으며, 표현할 자유를 누렸다. 오래 전 내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기자한테 잘 보이려면 그렇게 답하면 안돼요'란 기자의 말에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나 좀 팔아주십쇼라고 있는 게 아닌데'란 말을 참고 침묵을 건넸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여혐의 프레임에 결박되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어떤 이즘도 사람에 우선할 순 없다. 그리고 2017년 마지막 달에 GQ와 가진 인터뷰를 보며 내가 느낀 건 치열한 마음과 아름답게 부서지는 열정, 하지만 다시 태어나고 확장하는, 여전히 뜨거운 시간이었다. 유아인의 시간은 현실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확장하며 나아갈 뿐이다.



존재가 드물어 값지긴 하지만 자기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 없는 건 아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흐름은 촛불 정국을 거치며 조금은 확장됐다.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에 머물고 만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철저히 자신의 고뇌에서 표현하고 현실을 예술로 확장하기 위해 애를 쓰며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염두한다. 그런 노력의 시간이 지금의 유아인을 설명한다. 그는 7년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감정이 어떻고 내가 누구고 어디에 있다는 글을 쓰는 시기는 끝났고 이제 그런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할지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갇혔던 청춘의 발화다. 그리고 지난 해 GQ와의 인터뷰에선 '우리는 사회 관계망 안에서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냥 껍데기를 누가 더 잘 드러내느냐의 전투만 하고 있고, 정작 내 감정이 뭘 반영하는지 살피는 덴 두려움이 커요. (중략) 전 감정이 전부라는 걸 말하면서 인간성을 환기시키는 거예요.'라 말했다. 유아인은 인간 너머의 인간을 바라본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란 이름의 창작집단으로 예술을 일상에 끌어오는 것 역시 이 발언의 일환일 것이다. 자꾸만 프레임을 벗어나는 피사체, 현재를 이탈하는 시간의 주인공, 인간이돼 인간 이상을 향하는 인간. 유아인은 언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의 누군가의 노래 'Dream Boy'를 올렸었다. 누구의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나는 그보다 네 살이나 더 먹었다) 대신 Yogee New Waves의 'Dream Boy'를 인용하고 싶다 '산을 넘고 바다까지 날자. 갈라진 구름 사이에서 빛이 흘러 넘치고 바람을 낳고 하늘을 달리는 거야. 사랑에 맡겨, 바람에 맡겨.' 그가 본명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GQ 인터뷰 화보의 제목은 '줄탁동시'였다. 신(新)배우가 탄생했다.

_사진 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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