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운수 나쁜 날이라는 건 잘못 만난 우연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치과에 가는 날이다. 채비를 마치고 신문을 읽고 있는데 곰돌이가 화장실 밖에다 오줌을 갈겼다.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났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오줌을 치웠더니 곰돌이가 불쌍히 여겨진다. 종종 있는 일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밖으로 나왔다. 잔잔한 안개비가 내린다. 미세먼지 비라는 말이 생각나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우산을 챙겨 나오는데 곰돌이가 현관으로 줄행랑을 친다. 다시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났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에 가슴 속 깊숙이 찜찜한 앙금이 생긴다.
운수 나쁜 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입고 나온 바지의 찢어진 구멍 속으로 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버스를 타려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타야하는 34번 버스가 막 지나가고 있다. 다음 버스는 10분 후, 거의 항상 대기하고 있던 택시는 한 대도 없다. 한참을 기다려 대기 시간이 6분이 됐던 차, 택시 한 대가 보였다. 냉큼 타고 보니 운전 기사가 없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더니 '타~, 타~' 반말을 내뱉는다. 보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내렸다.
치과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예약 시간은 1시 30분. 빨리 가면 빨리 봐줄 줄 알고 일찍 갔는데 정확히 점심 시간에 딱 걸렸다. 1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먼저 와 기다리고 계셨던 엄마가 왜 구멍 뻥 뚫린 바지를 입고 왔냐고 뭐라 하신다. 웃으며 받아 넘겼지만 엄마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가지고 간 <캠퍼스21>의 부록 소설을 펼쳤다. 고등학교 급식 비리를 소재로 한 소설이었다. 재미가 하나도 없다. 쓰레기통에 쳐넣었다.
진료는 정확히 1시 33분쯤 시작됐다. 자리에 누워 입을 벌렸는데 이상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나무 막대기, 플라스틱 막대기를 위 아래 사이에 넣고 씹어보는 걸 수 차례 했다. 다만 잇몸에 염증이 조금씩 있다고 하셨다. 옳은 양치질, 바른 치간 칫솔 사용이 해결책이랬다. 괜히 왔다 싶었다. 진료비는 1만 7500원이 나왔다. 씹는 거 몇 번 하고 거짐 2만원 돈이 날아간 셈이다. 역시 오늘은 운수가 나쁜 날인가 보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우산 없이 지나다니고 있다. 비가 그쳤다. 날카롭게 차던 바람도 잦아졌다. 엄마는 이왕 나온 거 하려던 거 하고 가라며 돈을 주셨다. 그렇게 스타벅스에 와있다. 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하나 시켰고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다. 오랜만에 맛보는 밖에서의 여유다. 곰돌이에게 화 냈던 순간도, 돈 아깝다 짜증냈던 기억도 비와 함께 그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팔랑개비다. 어쩌면 운수 나쁜 날이라는 건 잘못 만난 우연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심각하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 흔하디 흔한 한 낱 인생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