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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31. 2017

SNS라는 릴레이션십

SNS는 좋아요도, 하트도, 두 번의 터치도 아니다

SNS를 한다. 트위터를 하고,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한다. 계속 여기저기 글을 쓰고 여기저기 대답을 한다. 처음엔 트위터를 애용했다 인스타그램과 병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한다.

인스타그램은 자랑이다. 트위터는 뉴스고 페이스북은 일기다. 최소한 나의 경우엔 그렇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은 '갔다왔다', '먹어봤다'의 커뮤니케이션이고, 트위터는 '너 아니?', '나 알아'의 커뮤니케이션, 페이스북은 '나 이런 하루를 살고 있어. 좋은 거 같니?'의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좋아요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다 신경쓴다. 눌리지 않고 꿈쩍도 안하는 좋아요를 보면 심통해지고, 조금이라도 높아진 좋아요 수엔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의 좋아요는 '더 좋아요'가 되기도 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게 뭐 대수냐며 쿨한 척을 하기도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페이스북을 열고 글자를 써내려간다.  


좋아요의 숫자가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그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아주 친한 사람이 절대 안 누르는 경우도 있고(그럴거면 친구를 끊지), 누구지 모르는 정말 누군가가 자주 눌러주는 경우도 있다. 정말로 하나도 없는 좋아요가 너무 외로워 보일 때면 내가 나서서 좋아요를 해줄까 할 때도 있지만, 너무 없어 보일까봐 결코 하진 않는다.


SNS는 좋아요도, 하트도, 두 번의 터치도 아니다. 어쨌든 기호가 기호를 만나는 자리고, 정보가 정보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다. 스쳐가든 머무르든 어찌됐든 만남의 자리라는 것이다. 'When'이 아닌 'a Point', 하지만 억수로 많은 포인트. 누가 거기에 사람이 살고있지 않다 말할 수 있을까. SNS는 삶을 닮았다.


나는 오는 사람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블로그를 지금도 갖고 있다. 이렇게 빈도가 낮음에도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나만 보는 일기장은 너무나 외로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섹스 앤 시티>의 캐리는 "너무나 많은 걸 노출했어. 그래서 감정적으로 헤퍼졌지"라고 했다. 최근의 내가 딱 그랬다. 좀 헤퍼지더라도 노출하면 얻어지는 위안이 있다. 그리고 내가 헤프다는 걸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보고 지나친 글, 눌렀다 취소한 좋아요. 어쩌면 진짜 관계는 이렇게 이뤄지지 않는 만남, 스쳐 지나간 자국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러니까 SNS가 진짜 릴레이션십이 아닌가 싶다는 얘기. 진짜 친한 친구는 어쩌다 만나고, 이름만 아는 사람과는 매일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차피 리얼리티와 릴레이션십은 다르다. 릴레이션십은 리얼리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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