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여 완성되는 우주도 이 세상엔 존재한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는 요즘이다. 회사를 나오고 1년 반 쯤. 아마도 18개월.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직도 그대로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지만 어딘가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은 고여있고 매일은 멈춰있으며 새해는 의미를 상실한다. 자주 요일을 헷갈린다. 종종 날짜 감각을 잊는다. 심지어 아직도 2018년인지 2017년인지 아리송하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나간 글들을 훑어보다 어느 문장 앞에 멈춰섰다.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존 버거가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인터뷰를 하며 건넨 말이다. 그렇게 살았었다. 남들보다 나, 당신보다 나, 그러니까 나를 중심으로 살았었다. 그래서 때론 고집스러웠고 가끔은 오만했으며 그렇게 B형이었다. 하지만 10여 년의 끝, 남아있는 건 텅 빈 공간이다. 상처 덩어리의 시간 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매일 나에게 실망하고 매일 나에게 실패한다. 생각을 해야지. 새삼 다져보는 마음이다.
빵을 배운다. 아직 한 달 여가 남았지만 배운다. 그만큼 거의 집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달여의 시간이 두려웠다.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허무함이란 감정은 며칠 째 떠가가지 않고 고여있다. 괜찮게 지내다가도 불현듯 위기가 느껴지고 이거 정말 큰일이라는 초조함이 밀려온다. 쓰고 있는 소설도 내 길이 아닌 가 싶고 하고 있는 부크크 작업도 이게 과연 책이 되기나 할까 싶어진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동행한다. 슬픔과 동행하고, 아픔과 마주하고, 상처난 시간을 살아간다.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우주를 갖고 있지 않은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를 부정하고 찾아오는 내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가야할 곳은 돌연 찾아오는 내일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어제와 오늘이란 생각이 든다. 꿈을 두려워했다. 섣불리 생각하는 걸 주저했다. 목표란 말은 너무나 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그저 몰래,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저 작은 꿈, 그냥 작은 목표도 가능하다고 느낀다. 우울을 이겨내는 것, 작은 선의를 배푸는 것, 원망 대신 기쁨을 느끼는 것. 차곡차곡 쌓여 완성되는 우주도 이 세상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