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Apr 01. 2017

물을 끓일 정도로 뜨거운 사랑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 목욕탕

'사장이 수증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행복 목욕탕 당분간 휴업합니다', '행복 목욕탕'에 붙은 표시다. 나카노 료타 감독의 영화 <행복 목욕탕>은 부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다기리 죠의 주연 영화로 홍보되고 있지만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 오다기리 죠는 없다. 그러한 사장의 빈 자리를 메우는 건 가장 가즈히로(오다기리 죠)의 아내인 후타바(미야자와 리에)와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다. 후타바는 목욕탕은 쉬더라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딸을 기르는 강인한 여자고, 이즈미는 그런 엄마의 말을 잘 듣고 따른다. 철부지 아빠 하나 없다고 흔들릴 모녀가 아니다. 하지만 후타바의 몸이 문제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쓰러진 그녀는 병원에서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더불어 여생이 2~3개월 뿐이란 말도 듣는다. 이후 영화는 후타바가 남은 인생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나 둘 처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 드라마의 울타리를 두르고 있지만 이야기의 줄기는 후타바의 남은 생애다.


<행복 목욕탕>에서 가족은 피로 이어진 끈끈한 인연이 아니다. 아즈미는 실은 후타바의 딸이 아닌 가즈히로의 전처 키미에(시노하라 유키코)의 딸이며, 가즈히로는 또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한 집에 배 다른 딸 둘이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후타바는 두 딸 아즈미, 아유코를 데리고 하코네로 여행을 떠나는데 휴게소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고 있는 청년 타쿠미(마츠자카 토오리)를 만난다. 타쿠미는 생모의 얼굴도 모른 채 아빠의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후타바는 목적지 없이 여행하는 타쿠미에게 뜨끔한 충고를 건넨다. 후타바가 남편 가즈히로를 찾기 위해 의뢰를 한 상대인 탐정(스루가 타로) 역시 아내 없이 딸을 혼자 기르고 있는 남자다. <행복 목욕탕>은 영화의 후반부 재개한 '행복 목욕탕'에 이들을 다 모은다. 넉살 좋은 타쿠미를 비롯 탐정과 그의 딸, 그리고 아즈미의 친모 기미에까지 모두가 가족인 것처럼 그려진다. 핏줄로 이어진 연이 아닌 관계가 형성한 대안의 가족인 셈이다


'물을 끓일 정도로 뜨거운 사랑', <행복 목욕탕>의 원제다. 그리고 이 사랑의 주어는 후타바다. 그녀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에게 부여한 과제를 안간힘을 써가며 해나간다.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딸 아즈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치고, 행방불명이 된 남편 가즈히로를 찾아 와 '행복 목욕탕'을 재개한다. 탐정의 힘을 빌리면서까지다. 자신의 삶 앞에서 당당하고, 그 태도를 딸 이즈미에게도 가르치는 후타바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남김 없이 쓰고 가려는 것만 같아 절절하고 애달프다. 미야자와 리에는 쇠해가는 체력 속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강인함을 한 여자의 몸으로 아름답게 연기한다. 특히나 가즈히로와 딸들이 준비한 생애 마지막 선물 앞에서 내뱉는 '죽기 싫어, 살고 싶어'란 말은 보는 이의 마음에 뜨거운 눈물처럼 떨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재가 된 후타바의 육체는 그녀가 항상 좋아했던 색깔 빨간 연기가 되어 하늘로 떠오른다. 마술같은 장면이다. 빵구가 나면 떼우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없어지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믿지 못해 떨구는 눈물, 믿음에 실패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