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인생은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 목욕탕
'사장이 수증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행복 목욕탕 당분간 휴업합니다', '행복 목욕탕'에 붙은 표시다. 나카노 료타 감독의 영화 <행복 목욕탕>은 부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다기리 죠의 주연 영화로 홍보되고 있지만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 오다기리 죠는 없다. 그러한 사장의 빈 자리를 메우는 건 가장 가즈히로(오다기리 죠)의 아내인 후타바(미야자와 리에)와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다. 후타바는 목욕탕은 쉬더라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딸을 기르는 강인한 여자고, 이즈미는 그런 엄마의 말을 잘 듣고 따른다. 철부지 아빠 하나 없다고 흔들릴 모녀가 아니다. 하지만 후타바의 몸이 문제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쓰러진 그녀는 병원에서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더불어 여생이 2~3개월 뿐이란 말도 듣는다. 이후 영화는 후타바가 남은 인생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나 둘 처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 드라마의 울타리를 두르고 있지만 이야기의 줄기는 후타바의 남은 생애다.
<행복 목욕탕>에서 가족은 피로 이어진 끈끈한 인연이 아니다. 아즈미는 실은 후타바의 딸이 아닌 가즈히로의 전처 키미에(시노하라 유키코)의 딸이며, 가즈히로는 또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한 집에 배 다른 딸 둘이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후타바는 두 딸 아즈미, 아유코를 데리고 하코네로 여행을 떠나는데 휴게소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고 있는 청년 타쿠미(마츠자카 토오리)를 만난다. 타쿠미는 생모의 얼굴도 모른 채 아빠의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후타바는 목적지 없이 여행하는 타쿠미에게 뜨끔한 충고를 건넨다. 후타바가 남편 가즈히로를 찾기 위해 의뢰를 한 상대인 탐정(스루가 타로) 역시 아내 없이 딸을 혼자 기르고 있는 남자다. <행복 목욕탕>은 영화의 후반부 재개한 '행복 목욕탕'에 이들을 다 모은다. 넉살 좋은 타쿠미를 비롯 탐정과 그의 딸, 그리고 아즈미의 친모 기미에까지 모두가 가족인 것처럼 그려진다. 핏줄로 이어진 연이 아닌 관계가 형성한 대안의 가족인 셈이다
'물을 끓일 정도로 뜨거운 사랑', <행복 목욕탕>의 원제다. 그리고 이 사랑의 주어는 후타바다. 그녀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에게 부여한 과제를 안간힘을 써가며 해나간다.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딸 아즈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치고, 행방불명이 된 남편 가즈히로를 찾아 와 '행복 목욕탕'을 재개한다. 탐정의 힘을 빌리면서까지다. 자신의 삶 앞에서 당당하고, 그 태도를 딸 이즈미에게도 가르치는 후타바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남김 없이 쓰고 가려는 것만 같아 절절하고 애달프다. 미야자와 리에는 쇠해가는 체력 속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강인함을 한 여자의 몸으로 아름답게 연기한다. 특히나 가즈히로와 딸들이 준비한 생애 마지막 선물 앞에서 내뱉는 '죽기 싫어, 살고 싶어'란 말은 보는 이의 마음에 뜨거운 눈물처럼 떨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재가 된 후타바의 육체는 그녀가 항상 좋아했던 색깔 빨간 연기가 되어 하늘로 떠오른다. 마술같은 장면이다. 빵구가 나면 떼우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없어지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