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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27. 2018

이겨내지 않아도 괜찮아

밤이 되면 유독 마음이 착해진다.


https://youtu.be/fnfa6qK4wMg

밤이 되면 유독 마음이 착해진다. 노래를 켜고 생각을 하기도 자주 무언가를 중얼거리곤 하는데 그러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행복하다. 많은 게 스쳐지나가고 많은 게 치유되며 많은 게 나쁘지 않은, 그러니까 괜찮은 기억으로 남는다. 한국어로, 요즘은 일본어로 더 많이 종알거리고 있다보면 모르던 감각이 솟아나고, 놓치고 지나갔던 것들이 떠오르고, 몰랐던 감정이 느껴진다. 마치 대충 읽은 책을 시간을 들여 탐독하는 기분이 든다. 밤이라서, 밤의 나라서 가능한 것들이 어둠 안에서 펼쳐진다. 수십번을 울었다. 두 번의 새해를 눈물로 보냈다. 묘하게도 지독한 악몽을 꾸었고,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꿈을 꾸고 싶어 눈을 감았는데 알 수 없는 공포가 찾아왔다. 철저히 혼자임을 알리는 내일을 맞으며, 그렇게 부서진 나는 그만하고 싶었다. 어쩌면 쉬운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밀린 신문을 펼쳐보며 자살한 이의 유가족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혼자라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 함께라는 아픈 현실을 상기시켰다. 외면당한 마음은 포기한 순간 누군가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아픔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외면 역시 구원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외면하는 순간, 희망은 정말 사라진다. '포기의 앞에도 바람은 불어요'란 노랫말이 흘렀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말보다 '비 내린 길바닥이 햇빛에 비쳐 반짝인다'는 말이 어쩌면 더 현실적일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하루의 수고를 다독일 밤이란 시간이 있다. 

 

'만났다(出会った)'란 감각이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가 본 유튜브에서 '하나만 바꿨어(一つだけ変えた)'란 노래를 만났다. 키세루(キセル, KICELL)란, 이름도 어여쁜 밴드의 노래를 만났다. 단조로운 음과 함께 무심하게 뱉어내는 가사가 마음에 차곡히 쌓였다. '낮은 구름, 둔해진 하늘(低い雲、鈍い空)'로 시작하는 노래는 그냥 지금의 나와 같았다. '내 얘기같다'고 느낀 노래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피츠(スピッツ)의 노래가, 후지패브릭(フジファブリック)의 노래가, 유즈(ゆず)의 노래가 그렇다. 하지만 키세루의 '하나만 바꿨다'는 그런 현실을 얘기하며 위로를 건네는 노래가 아니었다. 그냥 아픈대로, 상처난 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을 노래하고 있었다. '변함 없이 있기 위해 하나만 바꿨다(変わりなくあるためtに一つだけ変えた)', '멀리까지 가기 위해 하나만 바꿨다(遠くまでゆくために、一つだけ変えた)'는, 이 아이러니한 가사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나 뿐이었고, 나의 지금 뿐이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상실의 흔적은 꿈에도 남아있었고, 그렇게 땀을 흘리며 찾으러 다니다 깨곤 했다.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를 보며 그 모든 것에 다가가는(寄り添う)는 것이 최선의 삶이란 사실과 만났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고 오래 전 선배는 윤상의 노래 'RE: 나에게'를 알려주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수없이 울었던 때의 나를 보며 웃음을 짓는 언젠가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희망했다. 꼭 이겨내지 않아도, 그저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 바닥을 쳐보니 알겠다.


자주 울먹인다. 좌절과 절망의 눈물이 아니다. 올림픽을 보면서도 수차례 울컥였고 기사나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눈물을 짓는다. 어제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며 또 울먹이고 말았다. 일본에서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언내츄럴(アンナチュラル)'를 보는데 왜인지 가슴이 무너졌다. 주인공인 이시하라 사토미가 냉동 창고에 갇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말할 때, 강에 빠진 트럭 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함께 있는 동료에게 '말려들게 해서 미안. 내일 내가 한턱 쏠게. 뭐 먹을까'라 말하는 순간. 그저 애절하고 애달파 눈물이 흐를뻔 했다. 사람이라 다행이란 생각, 그런 시간이 절절히 느껴졌다. 삶은 밀물과 썰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과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아픔이 걷혀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우울을 원망하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우울의 끝에서 본 건 맑게 개인 하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썰물도 아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아픔, 아물지 않은 상처, 하지만 곁에 흐르는 한 줄기의 빛이 내일을 일으켰다. 새해가 왔다고, 아침이 밝았다고 달라지는 건 사실 별로 없을지 모른다. 밤에 비추는 햇살도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있다.


フォト_森栄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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