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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23. 2018

얼룩진 보라도 보라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찌든 현실 속 무니의 시간, 영화가 현실을 구원하는 순간



아이스크림을 먹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화면이 온통 보라빛으로 가득 찼을 때, 그런 담벼락을 카메라가 계속 응시하고 있을 때, 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총천연의 보랏빛은 어쨌든 벽에 도색돼 박제된 거고, 아이들이 먹던 아이스크림은 플로리다의 열기를 이기지 못해 사정없이 녹아내린다. 보랏빛은 이렇게 아픔을 품은 색깔이 된다. 영화는 2008년 경기 침체 이후 디즈니 랜드 주변 모텔들이 빈민 거주 용도로 변하면서 펼쳐지는 삶의 자락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가 플로리다에서 벌인 테마파크 사업의 이름이다. 장기 투숙이 안 돼 주 단위로 거처를 옮겨야하고, 고의에 의한 교통사고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며, 시도때도 없이 헬기가 하늘을 소음으로 물들이고,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폐가가 위협하는 삶. 하지만 캐릭터의 왕국, 동심과 환희의 세계 바로 곁에 있어 항상 그 모든 것과 마주해야 하는 삶, 매직 캐슬, 퓨쳐 랜드, 오렌지 월드란 이름이 그저 허울에 머무는 삶. 다소 도식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영화는 품고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허울 속 환상, 동심, 환희가 지독한 현실의 희망이 되는 순간을 길어낸다. 헬기가 진동으로 물들이는 하늘에도 비개인 후엔 어김없이 무지개가 떠오르는 순간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희미한 희망이 그렇게 흘러간다.  





영화는 아이들이 주역인 작품이다. 매직 캐슬에 사는 무니와 스쿠티, 그리고 퓨쳐랜드에 거주하는 젠시가 동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벌이는 일종의 장난과 소동을 영화는 그린다. 위험 요소가 다분한 도시이지만 이들에게 플로리다는 그저 오색창연의 놀이터다.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가 자신의 방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새로 눈에 띈 차가 있으면 함께 달려가 침을 뱉으며, 손님의 거스름돈을 받아 아이스크림을 사 나누어 먹는 일은 이들에게 디즈니 랜드 못지 않은 즐거움이고 동시에 현실에 물들지 않은 일과다. 영화는 이들의 순진무구한 웃음과 밝은 에너지에 힘을 빌어 현실에 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는 현실 너머 현실을 그린다. 그건 아이들만의 현실이고, 그들만의 자리다. 하지만 영화가 전적으로 아이들의 동심에 기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어른들의 현실에서도 애씀의 흔적을 찾아낸다. 매직 캐슬의 매니저 바비가 고된 일과를 마치고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동시에 각 호실에서 켜지는 불빛은 이들에게도 디즈니 랜드가 존재함을 애절하게 드러내고, 아동 보호소의 점검을 위해 마리화나를 모텔 직원에게 건네는 무니의 엄마 해일리에게 직원이 건네는 '다 잘 될 거에요'란 한 마디는 영화가 어찌할 수 없는 곤경의 현실를 바라보는 자세의 아름다움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결코 비판하지도, 물러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 무리하지 않으려는 자세, 그렇게 아픔을 살아가는 사람. 이들이 사는 곳은 매직 캐슬이고, 퓨쳐 랜드며, 오렌지 월드다.





영화가 위태로워 보이는 순간이 한 장면 있다. 무니와 스쿠티, 그리고 젠시의 장난으로 불이 난 폐가에 소방차가 출동하고 사람들이 불구경에 환호할 때, 해일리는 무니에게 사진을 찍자고 한다. 엄마의 핸드폰 카메라를 향한 무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순진무구했던 시간이 장난과 동심, 웃음으로 무리해 애썼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는 현실을 무니의 얼굴이 얘기한다. 디즈니 랜드 곁 빈민촌 현실의 얼굴이고, 동심과 환상 옆 아픔과 슬픔의 얼굴이다. 하지만 영화는 원인을 묻고 따지지 않는다. 무니의 엄마는 분명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엄마이지만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어찌할 수 없이 아픔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모든 걸 인정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플로리다 프로젝트'엔 있다. 매우 용감하고, 매우 지혜로우며, 매우 애달픈 시선이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현실에 출구를 만들고, 영화를 삶 곁에 데려다 놓는다. 세균 박멸 조치 할 돈으로 건물을 노란 색으로 도색하고, 모텔의 관리 뿐 아니라 해일리와 무니의 사정까지 살피는 바비의 모습은 아픔 속 보라와 핑크, 그리고 오렌지를 구원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현실에 찌들어가는 총천연 컬러의 도시 플로리다를 잃지 않으려는 애씀이 영화엔 있다. 성매매가 발각된 해일리와 아동 보호소에 가게 된 무니. 무니의 세계는 끝내 현실과 직면한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보라와 핑크, 오렌지의 시간을 물들인다. 하지만 영화는 움츠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니의 세계를 확장해 비약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환상만으로 존재했던 상처난 동심과 판타지를 향해 질주하는 시간이 펼쳐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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