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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pr 02. 2018

최고 밀도의 시간,
이효리란 이름의 삶

그렇게 아름다운 고등어를 본 적이 없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파도. 이들 만으로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아닌 머물고 남는 순간으로 흐르는 이 시간은 힐링과 휴식, 버리는 삶과 미니멀리즘 같은 유행의 파편과는 다른 결을 산다. 유행으로 찾아와 그저 허공을 부유하는 트렌디한 일상 깊숙한 곳엔 어떤 수식도 필요하지 않는 삶이 흐르고 있다. 이효리와 이상순이 민박집을 오픈해 제주도에서의 시간을 담은, 인기리에 두 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보며 든 생각이다. 이효리는 댄스 그룹 핑클의 멤버였고, 한 시대를 풍미한 댄스 솔로 가수였지만 어느새 그저 이효리란 이름으로 자리한다. 물론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은 여전히 많다. 종류가 달라졌을 뿐 그녀의 곁엔 요가라는 운동이, 제주도라는 지명이, 순심이와 모카, 미미 등 반려 동물의 이름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에게 붙은 다양한 수식어가 아니라 그렇게 확장된 시간의 품이고, 달라진 시간의 결이다. 이효리의 시간에 이상순의 시간이, 순심이, 모카, 미달이, 구아나, 석삼이, 고실이의 시간이, 그리고 2만 1천명의 지원자 중 선택된 무수히 많은 타인의 시간이 더해진다. '효리네 민박'은 일상같은 여행, 여행같은 일상으로 해석되지만 이효리는 그저 자신의 시간을 산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시간이고, 그렇게 품어낸 순간이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제주도 집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둘은 자꾸 찾아와 벨을 누르는 사람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흘러 둘은 불특정 다수에게 집을 공개하는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시작했다. 정반대로 보이는 요청과 선택이지만 실은 둘다 자신의 시간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란 점에서 같은 얘기다. 남의 집에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행위는 남의 시간을 침범하는 것과 같고 동시에 무수히 많은 팬들의 아우성 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이효리의 과거 시간이다. 다만 방송을 보며 자주 마음이 뭉클했던 건 20여 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고, 타인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한뼘은 넓어진 자신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 애절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방송 속 그녀는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20대 초반의 숙박객을 보며 자신의 20대를 떠올리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웃어제끼는 어린 숙박객을 보며 그러지 못했던 자신을 곱씹는 모습은 뭉클함 그 자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 곁엔 이상순의 시간이, 다섯 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 두 마리의 시간이,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보다 넓고 깊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흐르고 있다. 댄스 음악에 맞춰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던 그녀는 그래서 더 외로웠지만, 제주도 소길리에 내려와 차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그저 소박하게 아름답다.



'효리네 민박'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자주 지나간다. 제주도 로케에, 여행을 품은 프로그램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당연한 장면을 삶을 바라보는 이효리의 어떤 자세가 그저 아름다운 풍경 이상으로 만든다. 민박객 맞이를 위해 장을 보고 돌아가던 길, 차에서 바라본, 황홀이란 수식도 모자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에 둘은 노래를 틀자고 말한다. 이상순은 '지금 딱 좋은 곡이 생각났어. 그거 틀어주면 좋겠다'라 말하고, 이효리는 그 딱 좋은 곡을 튼다. Alexi Murdoch의 노래가 흐른다. 그저 아름다운 하늘에, 그에 걸맞는 노래를 그저 더하는 것. 이것만으로 하늘은 장면이 되고, 시간은 순간이 된다. 듣지도 못하는 에릭 클랩튼의 카세트 테이프를 기타 선생님이란 이유로 간직하고, 신발이 더러워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도랑을 뛰어 건너며, 더러워졌지만 구아나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담요를 버리지 못하는 시간이 '효리네 민박'에는 흐른다. 타인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따듯함이고, 제주도 소길리를 물들이는 나날이다. 둘이 차를 마시던 공간이 함께 밥을 먹는 공간이 되고, 그렇게 일상이 되어가는 건 단순히 혼자가 함께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타인의 삶을 품는 시간의 장면이고, 그렇게 넓어진 우리의 시간이다. 윤아와 해변을 산책하다 도랑을 넘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던 이효리는 마치 바다 위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녀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고등어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고등어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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