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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y 11. 2018

그들의 방에 밤이 찾아오면

일본의 밤은 해가 저문 시간이 아니다.


세상엔 어쩌면 시작과 끝이 없는지 모르겠다. 해가 떠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저물어 하루가 끝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자정이 지나 책을 펼치는 날도 있고, 어둠 곁에서야 비로서 떠오르는 생각도 있고, 밤이 되어서야 감각이 선명해지는 날도 있다. 하물며 술 한잔을 찾는 건 낮이 아닌 밤이고, 어둠의 자락에서 우리는 꿈을 꾼다. 일본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올 나이트 니뽄(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을 듣는다. 1967년 10월 2일 니뽄방송(ニッポン放送)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이 심야 프로그램은 다수의 뮤지션, 배우, 그리고 개그맨들이 '퍼스널리티'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밤의 시간을 제안하는 방송이다. 뮤지션 유즈와 아무로 나미에, 코부쿠로와 엑스재팬의 히데와 토시를 비롯 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스다 마사키, 마츠자카 토오리와 타마키 히로시 등이 이 방송을 거쳐갔거나 하고있고, 국내 뮤지션인 빅뱅과 SS501도 마이크를 잡은 적이 있다. 여러 개의 파생 프로그램을 낳고, 몇 번의 굴곡과 황금기를 거친 '올 나이트 니뽄'은 2017년 50주년을 맞이했다. '당신이 춤추고 내가 노래할 때, 새로운 시대의 밤이 태어난다. 태양 대신 음악을, 파란 하늘 대신 꿈을. 프레쉬한 밤을 리드하는 올 나이트 니뽄'이란 캐치 프레이즈처럼, 일본의 밤은 해가 저문 시간이 아니다. 

배우이자 지난 해 앨범을 내며 가수로도 데뷔한 스다 마사키의 '올 나이트 니뽄'을 듣는다. TV와 스크린 속이 아닌, 우리가 몰랐던 자정 이후의 스다 마사키를 듣는다. 어둡지만 빛이 나고, 빛나지만 어두운 묘한 매력의 이 남자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고, 菅田将暉,이 안엔 빛을 의미하는 두 글자가 숨어있다. 팬들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후지 패브릭(フジファブリック)의 '꼭두서니 저녁놀(茜色の夕日)'을 부르며 눈물을 떨꾸던 모습에 이끌려 그의 작품을 찾아봤고, 라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했지만, 해가 저물고 흘러나오는 스다의 목소리는 꼭두서니의 저녁놀이 아니다. 부끄러움과 체면을 뒤로 망상과 망상을 뛰어다니고, 밤의 은밀한 무드 뒤에 숨어 창피한 일화를 털어놓는다. 이륙이 늦어진 비행기 안에서 노래 '넒은 하늘과 대지(大空と大地)를 부르며 성이 난 승객들의 마음을 가라앉혔던 일본의 국민 가수 마츠야마 치하루(松山千春)를 보며 떠올렷던 망상을 왁자지껄 털어놓고,  모바일 쇼핑을 하다 팔에 쥐가 나 옷 하나 걸치지 못하고 택배를 맞이했던 아침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마치 어둠이 기지개를 켜듯,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걸어가듯, 우울이 마음껏 크게 웃음을 터뜨리듯,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어차피 해가 뜨면 모두 다 사라질 이 밤의 웃기고도 아픈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올 나이트 니뽄'은 DJ도 MC도 아닌 퍼스널리티가 진행한다. 사소한 명칭의 차이로 보이지만 '올 나이트 니뽄'에서 퍼스널리티는 사회자의 영역을 넘어 프로그램 전체의 콘셉트이자 무드이기도 하다. 방송을 구성하는 기획이나 코너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게 퍼스널리티의 기질과 분위기, 그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비롯된다. 스다 마사키가 바보같고, 다소 멍청하며, 창피하고 머쓱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낮보다 밝은 밤을 빚어낸다면, 아오이 유는 평소 차분하고 침착하며, 알 수 없는 이미지에 가려있던 의외의 발랄함을 보여주고, 유즈는 그들의 노래에 성실하게 흘러가는 응원하는 기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보다 편안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녹여낸다. 데뷔 10년차에 주연작도 수십편에 이르지만 언제나 예의바른 겸손으로 한발 뒤에 자리했던 마츠자카 토오리가 마음껏 핸드폰 게임 '유기요(遊戯用)'에 대해 한 시간 넘게 말문을 여는 것도 이 프로그램에서다. 개봉 영화 홍보 특집으로 꾸려진 편에서도 퍼스널리티나 게스트는 영화 홍보를 하려는 맘은 별로 없고, 그져 조금은 느슨해진, 그렇게 진심에 다가간 마음을 뱉어내기 바쁘다. 영화 '만우절' 특집 방송에서 오프닝을 거짓말로 도배했던 마츠자카의 능청, 마치 친구 집에 놀러온 듯 코너가 끝나고도 가지 않고 바이바이 손을 흔들던 야마자키 켄토의 천진난만함.  밤, 퍼스널리티, 그러니까 사람. 해가 저문 시간이 아닌 어둠이 찾아온 시간에서, 치열한 낮 시간에 고개를 내밀지 못했던 밤의 이야기는 어둠의 시간을 물들인다.

낮에 묻혀가는 마음이 있다. 빠른 리듬에 사라지는 기운이 있다. 말하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마음, 창피하다고, 민망하다고 숨겨와 쌓이기만 한 감정이 있다.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고, 너무 다가가 괜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올 나이트 니뽄'은 이런 못생기고 부끄러우며 그래서 상처 받은 마음을 감싸안는다. 청취자의 의견으로 패션의 최첨단을 소개하는 스다 마사키의 코너 '도쿄 다스 콜렉션'이 말하는 건 그저 조금 이상하고 심지어 괴상한 망상과 상황의 폭로고, 마츠자카 토오리 방송에 나온 유스케 산타마리아와 오자와 유키는 거친 입담과 취기가 담긴 듯한 이야기로 누가 MC이고 누가 게스트인지 분간하기 힘든 지경을 만든다. 조리있게 말하지 못해 '얼굴은 괜찮은데'이란 칭찬 아닌 칭찬에 '얼굴도'란 짧은 한 마디로 웃음을 자아낸 야마자키 켄토의 귀여운 구석을 마주하는 것도 도시의 불빛이 꺼지고 난 후다. 영화 '히바나(火花)'를 함께 한 스다 마사키와 키리타니 켄타가 뒤늦게 목욕탕에 함께 가자는 말을 주고받는 시간에서, 그림을 좋아한다는 스다의 말에 '우리 조카가, 우리 동생이 그린 그림을 주겠다'는 메시지가 쇄도하는 시간에서, 오랜만에 방송에 돌아와 '지금 생각하니 왜인지 미안'이란 기획을 진행하는 유즈의 키타카와 유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생은 어쩌면 조금 바보같아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스다는 '스다의 노래를 들으며 에너지 충전하고 있어요'란 틀에 박힌 메시지에 '여기선 그런 말 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낮과는 다른 리듬으로 굴러가는 말들, 그렇게 채워진 밤, 일본의 밤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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