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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2. 2018

어쩌면 이 아침은 최선이다

착해지는 15분, 일본의 아침 드라마


일본에도 아침 드라마가 있다. 국내에선 대략 8시 즈음 시작하는 드라마를 그냥 아침 드라마라 부르지만, 일본에선 아침 8시 15분부터 15분간, 30분까지 방영되는 NHK의'연속 테레비 소설'을 그냥 '아사도라(朝ドラ)', 아침 드라마라 부른다. 매회 15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주 6회 방영되고, 그렇게 반년을 지속해, 대개 작품당 150회를 넘긴다. 일년에 두 편,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마음이 착해지는 아침이 일본엔 찾아온다. 주로 불륜에서 시작해 치정극에 다다르는 질펀한 이야기가 다수인, 그렇게 가정 주부의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가 되고마는 국내의 아침과 달리, 일본은 어제의 피로를 일으키고, 하루의 시작에 조금의 활기를 더하는 아침을 만든다. 먹구름 가득찬 우중충한 하늘과 맑게 개인 파란 하늘만큼 서로 다른 한국과 일본의 아침이지만, 왜인지 둘은 모두 여성을 중심에 둔다. 1961년 시작해 지금까지 99개의 작품 중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었고, 이야기는 여자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자신만의 성공을 향해 또 한번의 아침을 열어가는 그녀들의 아침을 그린다. 한 쪽 귀의 청력을 잃은 소녀 스즈메에게 한 쪽만 들을 수 있는 기쁨을 일러주는 '반만, 파랗다(半分、青い)'의 아침, 시련과 시련과 시련 속에 자신을 잃지 않는 '만복(まんぶく)'의 주인공 후쿠코의 아침. 컵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의 삶을 그리면서도 모모후쿠가 아닌 그의 처, 후쿠코를 이야기하는 일본의 아침 드라마. 일본의 아침은 왜인지 여자를 바라본다.  

사실 국내의 아침 드라마가, 일본의 아침 드라마가 여성을 의식해 만들어지는 건 별반 특별한 이유는 아니다. 그저 주요 시청자인 가정 주부를 타깃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그렇게 서로 다른 아침을 채워갈 뿐이다. 다만, 두 나라가 아침을 바라보는 방식은 맑고 흐린 날처럼 다르고 달라, 나는 우연히 스치듯 보게 되는 국내의 아침 드라마보다, 어쩔 수 없이 시차를 두고, 결코 아침이 아닌 늦은 오후거나 이른 새벽에 보곤 하는 일본의 일본의 아침 드라마에서 보다 아침 다운 아침을 느낀다. 2015년 가을 방영된 아침 드라마의 제목은 무려 '아침이 왔다(あさが来た)'고, 그보다 10년 전, 1994년 겨울의 아침 드라마는 '봄아, 오라(春よ、来い)'였다. 물론 제목은 그저 제목일 뿐이지만, '나의 파란 하늘(私の青空)', '맑게 개었어(どんどん晴れ)', '날개(つばさ)'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아침에서, 나는 왜인지 어제의 내가 아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국의 아침 드라마가 험담을 하며 현실을 외면할 때, 일본의 아침 드라마는 모두의 일상 곁에 자리한다. 5년 전 '잘 먹었습니다(ごちそうさん)'에 이어 99번째 아침 드라마 '만복'에 출연하는 스다 마사키가 라디오 방송에서 ''ごちそうさん' 다음이 'まんぶく'라면 그 다음은 '졸리기 시작했어(もう、眠くなった)'일까'라며 깔깔깔 웃기도 했듯, 아침은 본래 그렇게 무거운 시간이 아니다.

'半分、青い'란 제목의 울림이 그저 좋아 보기 시작한 일본의 아침 드라마는, 한물간 배우, 좀처럼 안방극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의 피지 못한 시간이 쌓아올린 아침이 아니다. 2012년 방영된 '우메짱 선생(梅ちゃん先生)'의 주인공은 호리키타 마키였고, 그녀는 당시 영화 '백야행', '3번가의 석양' 등으로 이미 톱스타였다. 대부분이 한 여성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탓에, 아직 주목받지 못한, 삶의 아침에 자리하는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의 아침 드라마는 결코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밀린, 짜투라기 시간의 드라마가 아니다. 99번째 아침 드라마 '만복'의 주인공을 연기하게 된 안도 사쿠라는 '출산 후 작품이란 점에 고민했지만 출산 했기에, 지금의 나이기에 출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10년 전 영화 '바람의 바깥쪽'에서, 주인공의 갑작스런 하차로 빵구를 땜질하듯 데뷔했고, 이미 알려졌듯 지난 해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느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주목을 받았다. 1년 365일을 절반으로 나눠, NHK 도쿄와 오사카가 상반기, 하반기의 작품을 만들고, 그렇게 동쪽과 서쪽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열도 곳곳에 전하는 일본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의 시간이 건저올린 아침, 누군가의 아픔이 쌓아올린 빛. 시간을 연호로 세기도 하는 일본에서 올해는 헤세(平成)의 마지막 해이고, 안도 사쿠라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오지 않은 내일의 첫번째 아침을 전한다. 어제 없는, 지나간 밤 없는 오늘 없듯, 어쩌면 이 아침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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