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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31. 2018

기괴한 삶의 단면, '양의 나무'

삶은 양이거나 나무, 반쪽에 가려진 고작 반쪽 세상


'좋은 마을이에요. 사람도 착하고, 생선도 맛있고.' '양의 나무'는 이 세 문장 안에 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안내하며 시청 직원 츠키스(니시키도 료)가 건네는 문장들은 정해진 공무원의 매뉴얼 같은 말들이겠지만, 어딜 찾아보아도 있어야 할 마침표가 찍혀있지 않다. 여섯 명의 이주민과 만나며 여러번 반복되는 이 말들은 분명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롭다. 심지어 이주민 모두가 살인자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 위에 올라선다. '양의 나무'는 어쩌면 가장 위험한 영화일지 모른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이주민 모두가 살인자란 설정은 그저 조금 과격한 범죄물의 전형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우오부카(魚深)라는, 이름도 묘한 어촌을 선과 악, 악과 선이 서로 기생하는 시간의 현장으로 만들어간다. 양이 열매를 맺는 나무, 타타르란, 생소한 이름만큼 멀고 먼 어딘가의 이야기, 꿀처럼 달고 물고기처럼 부드러운 피와 살, 늑대 만이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열매. 동시에 동물이며 식물이고,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기묘한 존재. 영화는 머나먼 전설을 낭독하며 시작하지만, 이내 그저 평범한 어촌 마을의 시간에 안착하고, 균열을 드러내는 세 문장의 시간은 양과 나무 사이를 오고간다. 무엇보다 어감에서 영화의 제목을 떠올렸다는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말처럼, '양의 나무'는 좀처럼 완성되지 않는 그림의 불길한 기운같은 영화다. 나는 이처럼 대범한 영화를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슬픈 시간을 마주한 적이 없다.  

'종이 달', '키리시마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아름다운 별', '영원한 들장미', 그리고 '양의 나무.' 요시다 다이하치 영화는 어느 하나 위태롭지 않았던 적이 없다.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제목의 불길함, 묘하게 표류하는 문장의 외로움, 그렇게 추상화를 닮은 제목들. 대부분 소설이나 만화가 원작이었지만 요시다 다이하치 영화에서 제목은 알 수 없음에 대한 공포, 불안정함의 은유이기도 하다. '양의 나무'에서 요시다 감독은 만화의 대부분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드러나는 세계는 자신의 영화 전반을 포괄한다. 불행의 신, 노로를 기리는 우오부카 시엔 어쩌면 종이 달이 떠오를지 모르고, 한 명의 인간과 범죄자, 친구와 시청 직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창고 구석의 츠키스는 '키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키쿠치(히가시데 마사히로)의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하나씩 사실이 드러나며 마을을 조여오는 소동 속에 나는 왜인지 자꾸만 부정되던 '아름다운 별' 속 기상 캐스터 오스기(릴리 프랭키)의 다소 어처구니 없는 항변이 떠올랐다. 쳐다보면 불행이 닥쳐온다는 노로 신이지만, 아이들은 좀비 흉내를 내며 '노로, 노로~'라 외치며 뛰어놀고, 거듭되는 미야코시(마츠다 류헤이)의 범행에 놀라던 마음도 그저 한 명의 사람인 그 앞에선 왜인지 뒷걸음을 친다. '양의 나무'는 굳이 생선 두 마리를 사, 한 마리를 구워 먹은 뒤 한 마리를 묻어주는 이상한 질서의 시간을 바라본다. 작은 무덤에서 새싹이 돋아날 때 느껴지는 건 생의 희열보다 이상한 야릇함이고, 그렇게 삶은 양이거나 나무, 반쪽에 가려진 고작 반쪽의 세상이다.

'양의 나무'의 시작은 어촌의 부흥을 위한 이주민 정책이고, 그건 고작 이야기의 구실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화의 초점은 어쩌면 거기에도 있다. 범죄자를 갱생하는 것, 속죄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것. 영화는 꽤나 사회 드라마의 틀을 품고 있지만, 그건 사실 매우 원초적인 이야기다. 야쿠자 조직에 속해 셀 수 없이 많은 살인을 저지른 남자는 출소 후 모든 게 들통난 상황에서 자포자기의 맘으로 '직감은 거의 틀리는 경우가 없다'고 말하지만, 직감은 사실 사람 제각각의 것, 그렇게 서로 다른 게 사실이다. 가학이 쾌락이기도 한 사람에겐 사랑이 정말 때때로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밉지 않다는 흔하고 흔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요시다 다이하치의 영화는 결코 무리해 이야기를 매듭짖지 않고,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양과 나무의 동거, 그렇게 이질적인 균형의 아슬아슬함이 어쩌면 이 영화의 전부이다. 수차례 살인을 저질렀던 스기야마(키타무라 카즈키)의 죽음 곁엔 새로운 남자를 간병하는 오타(유카)의 새로운 삶이 있고, 그렇게 둘은 서로 다른, 달궈진 후라이팬과 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도 좋고, 생선도 맛있어'는 실제 토야마 현 바닷 마을 우오부카 시의 캐치 카피이고, 악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바라보지 못한 선의 뒷모습, 선은 어찌할 수 없는 균형 속에 악의 희생으로 맺어진 열매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 영화를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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