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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n 21. 2019

오랜 역사의 내일이 그리는 책방

100년이란 시간에 하루를 더한다는 것


2018년 12월 도쿄 록뽄기에 유료 서점 ‘분끼츠’가 등장했다. 입장료 1500엔을 지불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독 화제가 되었지만, 매일같이 서점이 문을 닫는 최근 도쿄에서 책방의 오픈은 조금 다른 울림을 갖는다. ‘분끼츠’가 들어선 건 38년의 역사를 지닌 서점 ‘아오야마 북 센터’ 록본기 지점이 있던 곳이고, ‘분끼츠’는 ‘아오야마 북 센터’의 구조를 살리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입구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왼쪽 삼각형 모양의 벽장은 ‘아오야마 북 센터’의 계단이 있던 자리다. ‘분끼츠’는 그 계단 아래 공간을 활용해 잡지 코너이자 ‘전시실’로 사용한다. ‘파친코나 게임 센터가 생긴다면 좀 서운할 것 같았어요.’(분끼츠’ 하야시 이즈미 부점장) 지난 6월 ‘아오야마 북 센터’ 록본기가 문을 닫고 1년, ‘분끼츠’는 ‘아오야마 북 센터’의 내일이 됐다. 

2015년 10월, 도쿄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거리 시부야에 요상한 공간이 생겨났다. 다이닝 레스토랑 푼라쿠(ぷん楽)를 제외하면 8층 빌딩의 모든 층을 사용하는 ‘시부야 츠타야는’ 6층과 7층에 책방이자 카페, 카페이자 책방 ‘쉘프67(shelf67)’을 오픈했다. 여기서 67은 6층과 7층이고, ‘쉘프67’은 2층짜리 거대한 책장같은 구조를 갖고있다. 마치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7과 1/2층처럼, ‘Shelf67’은 새로운 유형의 책방으로 화제가 됐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서로 다른 층이 아닌, 계단으로 이동하는 동일한 층을 의식했습니다.’(츠타야 홍보 담당 타다 다이스케) 책장을 넘기며 술잔을 나누고, 하얀 셔츠에 아이보리 색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커피를 나르고 책값을 계산하는 풍경은 확실히 새로운 책방의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쉘프67’을 만든 건 ‘츠타야(1983년)’와 ‘카페 컴퍼니(1999년)’, 둘의 나이를 더하면 50이 넘는다.


연호가 바뀌고 2020년 올림픽을 향한 재개발에 들썩이는 도쿄에서 거리는 새로움과 변화로 채워진다. 호텔과 결합된 책방(’북 앤드 베드’), 아침 7시에 오픈해 모닝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책방(시부야의 ‘북 랩 도쿄’), 맥주를 마시고 토크 이벤트에 참여하고 간단한 잡화까지 구매할 수 있는 책방(시모키타자와의 ‘비 앤드 비’) 등. 책방을 단지 책을 구매하는 공간이 아닌, 책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도쿄의 책방을 물들이는 가장 가까운 내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1조 엔이 넘는 규모의 일본 출판 시장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어김없이 대형 체인 서점들이고(매출 상위 5개 서점 합계 전체 중 32%, ‘도쿄상공 리서치’ 조사), 다른 업종과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독특한 콘셉트의 책방들은 아직 일본 출판 업계 어느 한 구석에 불과하다. 도쿄엔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150여 년의 서점(’마루젠’)이 건재하고, 수도권이 아닌 추코쿠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를 전개하는 체인 서점 ‘후타바 토쇼’에선 책방 한 켠 인터넷 카페 ‘후타바 앳 카페’도 운영한다. 도쿄의 책방엔 오래된 내일의 역사가 있다.  

불황의 출판 업계, 작아지는 종이 시장, 서점의 연이은 폐점. 지금 일본의 책방은 대부분 이런 어두운 말들로 설명된다. 실제 일본 전역의 서점은 2018년 1만 2026곳으로 1990년 후반(2만 2000 여 곳)에 비해 1만 곳 이상 줄었고, 시장 규모 역시 1조 엔 이상 감소했다(1996년 2조 6천억엔, 2018년 1조 3천억엔, ‘서점조사회사 아루미디어’). 올해만 해도 해가 바뀌자 마자 오사카의 ‘텐규사카이쇼텐’ 텐가차야 지점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15년 8월 문을 닫은 이케부쿠로 ‘리브로 서점’ 자리에 들어선 건 140여 년 역사의 서점 ‘산세이도’이고, ‘산세이도’는 ‘키노쿠니야’, ‘마루젠’과 함께 일본의 대표 노포 서점이라 불린다. 최근 매해 10곳 이상의 점포를 정리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30년 전통의 중고 체인 ‘북오프’ 역시 2018년 6월 ‘종합거래창구 북오프’란 이름으로 새로운 매장을 에비스에 선보였다. 2018년과 올해 ‘북오프’가 새로 오픈한 매장은 모두 스무 곳이 넘는다. 침체, 혹은 몰락의 전조가 아닌 그저 조금 소란스러운 재편. 100년 넘는 책의 역사를 가진 일본에서, 책방의 이별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일본 3대 대형 서점 중 하나인 ‘마루젠’의 본점 마루노우치는 개업 당시부터 ‘뮤지엄’이 콘셉트였다. 전국 52개의 점포를 갖고있는 ‘쥰쿠도’의 본점 이케부쿠로는 컴퓨터, IT 서적의 성지로 불린다. 2018년 록본기 지점의 폐점으로 아오야마 본점 단일 책방이 된 ‘아오야마 북 센터’는 서점이 위치한 지역(아오야마) 특성 상 패션, 디자인 관련 서적이 충실하고, 1995년 오사카에 1호점을 낸 ‘북 퍼스트’ 나카노 지점의 카페 ‘노타 노바(nota nova)’는 서점보다 인기가 좋은 카페다. 일본에서 책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과 시간, 관계가 책을 매개로 어울리는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커뮤니티를 길어내는 서점이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츠타야’ 다이칸야마 티사이트(T Site)로 유명한 ‘츠타야’의 모회사는 ‘컬쳐 콘비니언스 클럽(CCC)’이다. ‘’쉘프67’은 책방의 이름이 아닙니다. 책과 카페의 공간이고, 책을 통해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츠타야는 어느 지점이든 ‘손님을 위해’라는 원칙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습니다.(타다 다이스케)’ 최근 마케팅 시장에서 얘기되는 ‘물건 소비에서 경험 소비로의 전환’을 일본에선 같은 듯 다른 단어, ‘모노(もの)에서 코토(こと)로의 전환’이라 이야기하는데, 책방은 애초부터 후자에서 태어났다.



2017년 5월, 한 서점 경영인의 말이 출판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형 서점은 책을 찾기 힘들다. 이젠 그냥 불편한 가게가 되어버렸다. 화석같은 장사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고, 대표주자가 준쿠도다.’ 서점 경영인들이 모인 ‘니케이 BK 특약회’ 자리에서 대형 체인 서점의 선구자라 불리는 ‘쥰쿠도’의 창업자 쿠도 야스타카는 일본 책방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인터넷 서점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온라인 상 다양한 출판 관련 서비스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침체에 빠진 출판 업계는 대형 서점의 두터운 벽도 흔들고 있다. ‘마루젠’과 ‘쥰쿠도’는 각각 2008년과 2009년 재정 악화로 유통 회사 ‘대일본인쇄’의 자회사 되었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서점 ‘북 퍼스트’는 2013년 또 하나의 거대 유통 회사 ‘토한’에 자회사로 흡수됐다. 하지만 책방이 단지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고 할 때, 시장의 숫자는 별 의미를 갖지 않기도 한다. ‘키노쿠니야’는 2015년 전문 서적을 보다 충실히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마루젠’은 2016년 ‘유슈도 서점’을 합병하며 도서관 지원 사업을 강화하는 노선을 마련했다. ‘마루젠’ 마루노우치 본점이 운영하는 ‘카페 1869 바이 마루젠(Cafe 1869 by Maruzen)’의 1869는 마루젠의 창업 년도이다. 그곳에선 ‘마루젠’이 무대가 된 카지이 모토지로의 소설 ‘레몬’의 타이틀을 따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도쿄의 책방엔 책을, 지성을, 문화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가는 내일이 존재한다.


지난 여름 문을 닫으며 새삼 화제가 됐던 ‘아오야마 북 센터’ 록본기 지점은 남다른 취향으로 팬이 많은 서점이었다. 하루 250여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책방의 메인 진열대를 차지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아트 서적이거나 이름 모를 포토그래퍼의 사진집들. 입구엔 ‘검색으로 찾을 수 없는 책과 아이디어’라 쓰여진 간판이 서있었고, 이곳에서 ‘분끼츠’를 오픈한 하야시 이즈미 부점장은 ‘이상하게 이상한 책들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신간의 스피드에 밀리고, 중개 유통의 개입에 휘말리며 획일적인 책장이 반복되고있는 지금, 도쿄의 책방은 책을 소개하고, 제안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신간을 메인에 진열하기는 하지만, 전국에서 팔리고 있다는 걸 기준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이 지역, 책방에서 손님들께 무엇을 제안할 수 있을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걸음 앞서, 손님들과 함께 걸으며 제안하고, 책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아오야마 북 센터 본점 마츠바 켄이치)’ ‘아오야마 북 센터’에선 올 3월부터 ‘아오야마 북 초이스’란 이름으로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고, 그곳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4만이 넘는다. 



도쿄에선 같은 ‘츠타야’라 해도 살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다르다. 잡지를 살 계획이라면 ‘시부야 츠타야’를 방문하는 것이 좋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게임, 라이트 노블을 찾는다면 JR을 타고 이케부쿠로에 가는 게 낫다. 오래된 문고본을 구하고 싶다면 아예 ‘츠타야’를 버리고 ‘시부야 츠타야’ 맞은 편 ‘타이세이도’의 문을 여는 게 정답이다. 획일적이고 보편적으로 뻗어가기 마련인 체인 서점에서 도쿄는 지역의 색을 외면하지 않는다. 시부야의 오랜 서점 SPBS의 후쿠이 세이타 대표가 ‘오래 전부터 마을의 중심엔 항상 책방이 있었다’고 말했듯, 일본에서 책방은 마을과 함께 시간을 산다. ‘마루젠’의 본점 마루노우치 지점엔 비지니스 서적이 1층을 장식하고, 그곳이 위치한 곳은 도쿄역 근처, 샐러리맨들의 밀도가 유독 높은 거리다. 이키 나오야 점장은 ‘(’마루노우치’는) 도쿄에서 가장 비지니스적 이용이 높은 지역입니다. 목적을 갖고 오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찾기 쉬운 진열에 신경을 씁니다’라고 말한다. ‘마루젠’ 마루노투치 지점엔 모든 층에 만년필을 비롯 문구류가 진열되어 있고, 심지어 타자기도 판매한다. 일견 비지니스적 셈법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도쿄의 책방은 마을을 품어내며 자리하는 곳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갖는 책방 ‘키노쿠니야’의 타카시 마사시 사장은 비지니스 월간지 ‘케자이케’와의 인터뷰에서 ‘신주쿠 본점 앞은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한는데, 그냥 책방 안에 들어와 기다렸으면 좋겠다’고도 말한다. 책과 사람이 오가고 어울리는 공간. 도쿄의 책방에선 흘러간 어제가 느껴진다. 


‘키노쿠니야’ 본점 신주쿠 지점엔 2015년 ‘키노차야’란 카페가 오픈했다. 카페와 융합된 여타 책방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키노차야’에서 판매하는 건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가 아닌 호지차, 현미차, 일본차 등이다. 나날이 변해가는 시장에서, 더욱이 2020년 올림픽을 앞에 두고, 도쿄의 오랜 책방들은 100여 년 쌓아온 두터운 시간에서 내일을 만들어낸다. 건물 구조 상 엘레베이터가 4층까지밖에 서지 않는 탓에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엔 여전히 ‘오퍼레이터’라 불리는 여자들이 엘레베이터의 탑승을 돕고, 의학 전문서가 진열된 5층에는 쇼핑 카트가 구비돼 있다. 무거운 책을 들고 계산대까지 가야하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의 일환이다. 오픈 당시부터 지금까지 90년, 이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속하고 이어가며 만들어내는 내일이 거기에 있다. ‘키노쿠니야’ 총무부장 사토 유스케는  ‘오퍼레이터는 인건비가 들지만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손님의 안전과 경비는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키노쿠니야’는 지하 1층부터 7층까지 모두 120만 권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의 시장을 생각할 때 어리석은 숫자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지(知)’를 지켜가는 책방으로서 이 숫자는 어떤 변화보다 내일을 향해있다. ‘120만 권의 책 중 1년에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책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책은 읽혀지는 것만 놓아두면 안됩니다. 10년에 한 번 밖에 읽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책을 모으고, 공개하고, 지키는 게 책방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키노쿠니야’의 사장 타카이 마사시가 말하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책방이다.

카페, 호텔, 갤러리 등과 융합하며 변화하는 지금 도쿄의 책방은 사실 매우 오래된 그림의 책방을 품고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책을 발견하는 ‘어쩌다’의 시간, 책을 두고 오가는 이런저런 대화들, 책과 사람이 오가며 만들어지는 커뮤니티. ‘마루젠’ 마루노우치 본점의 ‘뮤지엄 존’에선 전시, 토크 쇼, 페어가 꾸준히 개최되고, ‘아오야마 북 센터’가 토크 이벤트를 시작한 건 이미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키노쿠니야’의 미스테리라 불리는 1층 ‘화석 가게’에선 1993년 ‘쥬라기 공원’이 개봉하던 무렵 화석 관련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때마침 러시아에서 운석이 떨어졌고, 이틀 후 200만 엔짜리 운석이 팔렸다고 한다. ‘마루젠’ 본점의 이키 나오냐 점장은 최근 책방의 변화를 ‘다른 공간과의 상승효과, 샤워효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래된 어제를 떠올려 볼 때, 지금 도쿄의 책방이 보여주는 변화는 책이 가진 고유한 시간이 만들어낸 내일일지 모른다. 고유한 취향으로 만들어진 책장은 ‘책의 사이클’ 안에서 오늘을 산다. 그리고 내일을 맞이한다. ‘책의 좋은 점은 시간에 ‘어긋남’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노스탤지어는 아니지만, 지금  이 시대이기에 보이는 책의 좋은 점을, 책방이 끌어내고, 책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책방이 존재하는 의의이고, 책방이 남기고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아오야마 북 센터’ 본점 마츠바 켄이치) 그에게서 도착한 메일에서, 가장 오래된 내일의 책방을 만났다.


*한겨레21에 '일본 서점 기행'으로 작성한 원고이고, 3부작 중 2편입니다. 잡지에 게재되기 전, 편집 이전의 버전입니다. 잡지 상의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7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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