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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Sep 09. 2019

책방은 책방이라 책방이다(3)

리-팩토링의 시대, 위기는 기회로 찾아온다.


책방은 아마도 가장 수상한 생명체다.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신간으로 채워지는 획일적인 책장이 세계 공통의 그림인 것 같아도, 로컬을 이야기하게 된 지금 책방은 지금 가장 로컬한 시간을 사는 공간이기도 하다. 신간 중심의 체인 서점이 만들어 놓은 먹이사슬을 지우기라도 하듯 지역의 문화에서 책방이 문을 연다. 대만 타이페이 송산 문화 창조 공원에 위치한 YueYue는 그 지역을 배경으로 제작된 2014년 아이돌 드라마의 타이틀을 따 오픈한 곳이다. 책방의 운영 관계자는 ‘건물은 1954년 세워졌고, 본래 담배 공장이었다’고 얘기한다. YueYue는 책과 음악을 의미하는 대만어이고, 둘의 서로 다름을 보여주듯 책방은 두 명의 운영자 조우 빈과 루오 홍에 의해 서로 다른 공간으로 운영된다. 문을 열면 좌우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책방은 왼편에 리버럴 아트 타이틀을, 오른편에 보다 대중적인 서적들을 진열한다. 모노톤의 차가운 질감과 오렌지와 블루, 그리고 우드톤의 따뜻한 채도가 대비되듯 어울리는, 좀처럼 보기 힘든 투 인 원(Two in One) 책방이다. 이곳에선 다양한 이벤트와 워크숍도 이뤄진다. 다름이 공존하고, 때로는 어울리고 스며들는 YueYue는 기존의 책방에서, 유독 눈에 띈다. YueYue는 책과 음악, 서로 다른 한자를 쓰지만 같은 발음, 똑같은 소리를 낸다. 별 거 아닌, 꽤 근사한 우연이다. 

국내에서도 활발히 이뤄지는 독서 모임이 책을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공유의 시간이라면, 도쿄 긴자 골목길에 자리한 모리오카 서점은 책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간직하는 시간 속 책방이다. 2015년 문을 연 모리오카 서점은 ‘한 권, 하나의 공간’을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긴자 카야바쵸에 같은 이름으로 책방을 하던 모리오카 요시유키가 1929년 지어진 빌딩에 갤러리 겸 책방 형태로 모리오카의 2호점 격인 긴자점을 시작했다. 이곳에선 1주일에 한 번씩 단 한 권의 책으로 관련 전시와 낭송회, 토크쇼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본래 일본공방이란 사무소가 자리했고, 유수의 사진가, 디자이너들의 원점과도 같은 장소의 맥락을 이어가는 의미로 ‘한 권, 하나의 공간’에 집중한다. 10년 넘게 운영되었던 본래의 모리오카 서점은 지금 문을 닫고 없다. 모리오카는 “긴자는 화려한 거리라는 인상이 있지만, 이곳엔 성실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온 일의 문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라고 애기한다. 신간이 신간을 밀어내는 출판 시장에서 유일하게 1929년부터의 시간을 이어가는, 책의 느린 리듬 속 공간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대형 서점 BookXcess 역시 ‘오늘의 반대편’에 자리하는 서점이다. 이곳은 팔리지 않아 반품된 책들을 원가의 2~30% 가격으로 제공한다. 물가에 비해 책값이 비싸고, 출판에 소요되는 비용이 높은 탓에 말레이시아는 책을 읽지 않는 나라 랭킹 61국 중 53위에 오를 정도로 책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잡지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앤드류와 재클린이 그 어두운 현실에서 BookXcess을 끌어냈다. 앤드류와 재클린은 “가게를 하면서 아직 여기엔 독서 습관이 없고, 책들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책을 살 여유가 없고, 팔리지 않은 책은 분쇄돼 버려진다. 그걸 바꾸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2006년 쿠알라룸푸르의 15평 남짓 작은 책방으로 시작한 이곳은 지금까지 모두 7곳의 매장으로 확장했고, 2018년 오픈한 타마린드 광장 지점은 100여 평 크기에 1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말레이시아 최대 규모 서점이다. “우리는 책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앤드류 대표의 말이, 왜인지 끝나버린 계절처럼 뭉클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활발한 가운데, 책방은 어김없이 책으로 돌아온다. 공간이 작아진만큼 무엇을 고를 것인가는 보다 큰 의미를 갖고, 지금의 활발한 변화는 사실 그 ‘선택’의 지형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책장의 풍경은 그만큼의 새로운 시간을 길어낸다. 엔지요우의 단 지에가 “우리는 책을 통해 문화 생활 제품과 라이프 스타일을 연결하고, 그를 중심으로 진열의 ‘리팩토링(Re-factoring)을 완수했다’”라고 말할을 때, 책방은 일상의 한 뼘으로 자리하고, 도쿄의 B&B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과 관련 이벤트를 진행할 때, 책방은 하나의 만남으로 기능한다. 더불어 록뽄기의 분끼츠가 입장료로 1500엔을 받을 때 책방은 ‘머뭄’으로 완성되고, 베이징의 90곳이 넘는 책방들이 밤에 불을 끄지 않을 때, 책방은 도심의 밤이 되기도 한다. 신간과 베스트셀러로 짜여지는 책방의 흐름은 비로소 샛길을 내고, 자체적인 움직임의 유통이 활발하다. 100% 자체 유통으로 책을 고르는 Readin’ Writin’의 오치아이 히로는 “위탁 유통을 그만두고 매출이 더 좋아졌다”고도 애기했다. 지금 당장 팔릴 베스트셀러, 신간이 아닌 5년, 10년을 생각하며 고르는 책 한 권. 근래 대만에선 독립서점 150곳이 자체 유통 시스템을 위한 단체를 꾸리기도 했다. 일본의 B&B는 그곳에 합류한 첫번째 비중화권 서점이다. “하루 수 백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시대에서 신간의 의미는 휘발됐다’고 얘기했던 단 지에의 말은 어쩌면 지금까지 굳건하던 책의 시간에 찾아온 위기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위기는 기회라는 오래되고 진부한 명언이, 왜인지 새삼, 남다르다.

(終)


*싱글즈 9월호에 게재된 기사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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