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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05. 2019

이 시절의 도쿄 #02

宮本から君へ。


#01 세상은 정말 살고 볼일인지 모르겠다. 잘 웃을 줄도 모르는 내가 늦은 오후 일본 개그의 산실이라 할 요시모토 회의실에 앉아 개그와 웃음, 농담과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었다. 오래 전 초등학교를 되살려 개조한 빌딩은 사뭇 진지하고 무엇이든 일종의 크래프트십이 발동하는 일본은 웃음 역시 순간의 시끌벅적이 아니다. 책방에서 시작해 카페, 영화관, 갤러리, 마켓, 술집, 공쟝...그곳엔 모두 사람이 있었고, 같은 곳에서 조금 다른 곳을 함께 바라보는 별 거 아닌 시간에, 나는 만남이란 걸 이제와 새삼 촌스럽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엔화는 오늘도 오르고, 다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신주쿠 인파에 파묻혀 더딘 걸음으로 조금 느긋하게 품고 있었다.



#02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도 여유로운 날이었다. 한 편 값 남짓만 쓰고도 두 편을 본 날이었다. 일본에선 매달 1일을 영화의 날이라 부르고 1800엔인 티켓값을 800엔이나 깎아준다. 최근 들어 도호가 앞장 서 100엔을 올렸지만, 여전히 영화의 날엔 800엔 만큼 마음이 가볍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를 보고 울면서 나왔던 날, 입사 2년차 출근하듯 들락거리며 결코 잡을 수 없는 일상을 아슬아슬 걸었던 날, 시부야의 유로 스페이스와 오모테산도의 이미지 포럼은 그런 극장이었고, 여전히 그런 곳들이다. 유로 스페이스를 오르는 언덕길의 아침, 고작 신인 감독 영화가 대형 포스터로 장식되어있는 도시. 10여편이 연달아 나오는 예고편에 이상한 눈물이 흘렀다. 지독히도 이케마츠 소스케라 아팠고 그래서 안도했던 어느 이기심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아오이 유우는 더욱더 아오이 유우가 되어가고, 세상에 내가 아닌 것은 사실 어느 하나 없다. 아라이 히데키의 동명 만화를 가져온 '미야모토가 너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드하고 괴롭지만, 나와 너의 사이, 'へ’에 흘러가는 시간이 그곳엔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열차 선로에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https://youtu.be/9BLWRhQTFIA

이곳에 와 망설임의 연속이다. 점심은 무얼로 할지, 잠깐 빈 시간에 어디를 갈지, 이 책을 살지 말지, 미하라 야스히로의 후루기를 살지, 하레의 새로나온 잿빛핑크 블루종을 살지. 영화관 Uplink는 시부야로 갈지, 키치죠지로 갈지. 곁에 누가 있다면 우유부단과 시간 낭비의 전형이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바보인 줄알면서도 그 망설임의 시간이 유독 길다. 이미지 포럼에서 밤에 영화를 본 건 거의 10여 년만이었다. 근처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지, 회식을 하고 헤어지는지, 하루가 눈을 감는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 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시계가 유독 새로웠고, 문득 이곳의 내가 아닌 내가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죽음이 던지고 간 한 시간 여의 어긋남. 이곳의 사람들은 유독 무척 친절하고 오늘은 니가타 현의 술을 한 병 받았다. 그리고 여기가 아닌 곳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미지 포럼에서 해가 지는 무렵에 본 건 임흥순 감독과 일본의 모모세 감독이 주고받은 교환일기. 도쿄와 그곳 사이, 부재의 시간이 오간다.

#03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 말들이 있다. 라이프스타일, 콘셉트, 인사이트, 트렌드. 10년을 잡지를 만들었으면서 이런 말들이 왜인지 내것 같지 않게 느껴지는 30여 년이다. 예쁘고, 멋있고, 새로운 건 설레지만, 말들에 덧씌어진 이름 모를 수선함에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어김없이 있다. 지난 5월 무렵 도쿄를 취재하며 알게 된 호텔 Koe는 커피도 팔고, 빵도 팔고, 파스타도 팔고, 심지어 옷도 판다. 밤에는 DJ 부스에서 클럽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곳에서 하는 tofubeats의 라이브를 나는 고작 체력 탓에 포기한 적이 있다. 빠듯한 일정 중 왜인지 비어버린 두 시간 남짓을 그곳에서 보내며, 공간이 힙하다고 사람마저 힙할 필요는 어쩌면 없고, 아무리 멋진 곳이라 해도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잘 구워진 스콘에 더 끌린다고 다시 한번 느낀다. 대만의 청핀서점이 도쿄에 들어와 꽤나 들썩이는 분위기지만, 삶을 큐레이팅한다고 할 때 그건 내게 시장같은 그림은 아니다. 지난 번 취재를 하며 'Switch'의 사이토 씨가 알려준 사무실 지하 카페 'Rainy day bookstore cafe'에 앉아 온갖 것이 뒤엉킨 가방 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맵지 않은 카레에 마음이 그저 놓인다. 삶을 큐레이팅한다는 건, 내게 그저 마음을 놓을 곳,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을 단장하는 일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이곳에서의 이런저런 つながり. Rainyday bookstore and cafe는 카타오카 요시오가 사자성어 晴耕雨読에서 가져왔다. 


*오늘 13일 오후 2시 마포구 후에고(Juego)에서 살롱합니다.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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