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RESQ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Apr 14. 2017

언어의 온도

예쁜 제목, 실패한 의미

언어의 온도, 예쁜 제목이다. 어떤 얘기일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하면 언어에 온도가 있을 수 있을까. 시적이고 몽환적이다. 하지만 책은 실상 별로  예쁘지도 시적이지도 몽환적이지도 않다. 이기주 작가의 책 <언어의 온도>는 일상의 자잘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모아 엮은 사색과 성찰의 결과다. 하지만 그 메시지의 타율이 좋지 않다. 별 거 없는 이야기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고(56,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방법'), 소박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그저 소박하게 끝나고 만다(48, '길 가의 꽃'). 전체적으로 비유의 주어와 대상이 너무 동떨어져 뜬금없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별 필요 없이 단어를 쪼개고, 억지로 조어를 만들기도 한다(258, 묘기척). 온도를 느끼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는 느낌이다.

      

가령 뱅뱅 사거리와 세종로 사거리를 인생의 사거리와 함께 비교해 이야기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92)은 너무 뻔한 결말이라 허무하고, 부모의 쓸쓸한 헌신을 이야기한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64)은 이야기에 비해 제목만 거창하다. 심지어 '마모의 흔적'(73)과 같은 경우는 메시지에 맞춰 이야기를 끼워넣은 듯한 인상도 풍긴다. 제목이 감싸지 못하는 글(236, '지지향, 종이의 고향), 앞부분과 뒷부분이 연결되지 못하는 이야기(177,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도 있다.  이기주 작가는 관찰과 엿듣기, 그리고 생각을 통해 메시지를 길러내는데 그 과정에서 과잉과 오버 해석이 들어간 느낌이다. 말, 글, 행 세 챕터로 나눈 구분 역시 글 사이에서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그래서 그저 멋내기인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물론 읽어볼만한 글이 없는 건 아니다. 마치 언어의 껍질을 벗겨 내음을 맡고 온도를 느끼는 듯한 체험을 주는 글이 몇 편 있다. 그 중 마음에 들었던 건 '그냥 한번 걸어봤다'(32). 이기주 작가는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썼다. 특별하지 않은 것 안에서 특별한 것을 길어낸 예다. 더해서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해'(103)는 작가의 의도대로 언어가 주는 애절하고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부모는 참 그렇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주고, 자신의 꿈을 덜어 자식의 꿈을 불려주고, 밖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돈을 벌어다 주고(후략)". "백미러를 보며 지나온 날을 돌아본다"라는 표현처럼 가슴 한 켠이 울컥이는 대목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온도>는 책으로서 완성도가 좋다고 말할 순 없는 한 권이다. 1/3 정도로 줄였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온도 비스무리한 걸 느꼈던 순간은 얼마 없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한세주의 싸가지없음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