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RESQ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May 30. 2017

지금 그리고 나, 너와 100번째 사랑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레코드 따위는 없다

유치할 줄 알았다. '너와 100번재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봐서나, 나오는 사람들(사카구치 켄타로, 미와)로 봐서나 영화로 건질 거리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뻔한 사랑에 뻔한 웃음, 뻔한 슬픔이 뻔한 흐름으로 그려졌다.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건(그것도 아주 일부에게만) 사카구치 켄타로 뿐인데 용케도 수입을 했다 싶었다. 일본판 순애보 얘기는 철 지난 지 오래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영화는 유치하고 또 유치했지만 내 맘을 붙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극중 리쿠(사카구치 켄타로)의 시간에 대한 마음이다. 영화는 시간으로 장난을 친다.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을 흘리며 시간의 주관적 의미에 대해 얘기한다. 리쿠에겐 시간을 특정 시간으로 돌릴 수 있는 거짓말 같은 레코드가 있고, 그는 이 레코드를 이용해 시간을 수십 차례 되돌린다. 그렇게 매일 같은 하루를 산다.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사랑하는 여자 아오이를 위해서다. 2016년 7월 31일, 오후 어느 무렵으로. 리쿠와 아오이는 시간을 거스른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다. 영화는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시간은 마음으로 느끼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구절이 영화의 캐릭터는 물론 스토리의 얼개, 나아가 메시지까지 품고 있을 줄 알았다. 현재를 충분히 느끼지 않고 살면, 있는 힘껏 살지 않으면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간다고 얘기할 줄 알았다. 그렇기는 하다. 영화는 그런 얘기를 한다. 하지만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그 거짓말 같은 레코드가 영화를 거짓말처럼 만들고 만다. 솔직히 좀 우스웠다. 시간을 자꾸만 거슬르는 바람에 인물 간 시간 축은 엉망진창으로 엉키고,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울퉁불퉁해진다. 아쉬운 연출 솜씨가 몹내 아쉽다. 영화는 그 레코드 없이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쿠의 아오이를 향한 마음, 아니 시간과 세월을 뒤집으려는 믿음은 유치함에도 힘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되돌리고, 되돌려도, 100번을 되돌려도 바뀌지 않는 건 존재했고, 리쿠는 그제야 지금의 자신을 바라본다. 내 맘대로 이 영화는 리쿠의 성장영화다.


난 이 영화가 좀 더 사랑에 집중한 영화가 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초반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영화가 망할 놈의 레코드 판을 꺼내들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하이틴 로맨스 영화로 그럴싸했다. 뭐든지 앞서 나가는 아오이와 침착하고 진중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리쿠의 관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연애의 시계처럼 다가왔고, 그래서 어긋나고 따라잡지 못하는 둘의 사이는 애절하고 안쓰러울 것 같아 보고싶었다. 사랑의 감정으로 캐릭터가 형성된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하지만 영화는 타임 리프라는, 이제는 별 새롭지도 않은 실험을 했고, 영화는 무수한 결점들을 품고 종반으로 달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사랑스럽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양보하는 마음은 흔치 않아 아름다웠고, 어쩔 수 없음에 눈물을 흘리며 수긍하는 태도는 내일을 기대해봐도 될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이라는, 오후 세 시(내가 오후 세 시에 글을 쓰고 있다)라는 순간의 값진 맛을 안겨주워 고마웠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레코드 따위는 없다. 그저 우리는 지금을 살고 내일을 열 뿐. 유치한 영화에서 건진 교훈이다.


*그나저나 이 영화 여자 주인공 너무 못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어의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