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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11. 2020

멜로는 상실을 낳고 도망간다,
조제의 10년

이별과 헤어지는 날들을, 생각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오해는 자란다. 오오모리 타츠시의 영화 '일일시호일'에서 페드리코 펠리니의 '길'은 제자리를 찾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고,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 그 짧은 단편 정유미의 작은 떨림, 그 안의 숨어있던 찰나의 위험을,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다. 영화를 본다는 건 매일같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돌연 마주한 오래 전 영화에서 나는 종종 숨고싶어 질 때가 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이 말은 의외로 영화에 자주 따라붙는 지루한 변명, 세월, 나이를 탓해보려 해도, 그건 그저 시절의 어긋남, 스쳐 지나버린 날들의 뒤늦은 후회에 가깝다. '조제'의 소식을 듣고, 김종관 감독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이누도 잇신의 벌써 10년이 넘게 흘러버린 나의 청춘의 영화를 본다. 타나베 세이코가 1984년 썼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소와 사강의 책이 작은 방에 세월의 먼지를 입고, 서툰 시간과 고여있던 시간이 이상하게 조우하는, 조금 별나지만 사실 가장 보편의 성장통의 이야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게임 클리어하듯 영화를 찾아봤던 시절의 나에게 장애 앞에서도 꿋꿋하게 맞서는 사랑의 다소 건조한 영화였고, 나이가 들어선 츠네오의 이유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오래 남았고, 숱한 상실이 흘러간 뒤, 그 영화는 긴 제목의 몽연한 그림처럼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거기엔 다시 흘러버린 1년이란 세월이 남을 뿐이다." 조제는 그렇게 얘기했다.

영화는 아마 이누도 잇신의 가장 몽환적인 작품일지 모른다. 달려가는 길을 수평의 팬으로 느릿하게 유영하는, 초반을 비롯 대부분의 신들은 아마도 매일 대부분을 철거 직전 작은 방에서 보내는 조제의 시선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그려지는 듯한 뿌연 리듬의 연출은 그곳을 완전한 하나의 세계로 착각하게 한다. 사실 뚜껑을 열어놓고 줄거리를 건져보면 이제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건더기일 뿐인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엔 여전히 마음 한 켠을 저리게 하는 잃어버린 시절의 빛이, 서툰 모습 그대로, 실패도 모르고 걸어간다. 조제와 시설에서 함께 지냈던 코우지(아라이 히로후미), 동네에서 그나마 관계를 갖고 지내는 초등학생 여자 어린아이 둘, 가끔씩 등장하는 츄리닝 차림의 변태 백수 아저씨와 동네 골목의 이름 모를 강아지들. 그저 사람과 사람, 그저 오늘과 오늘의 별 거 아닌 하루가 사실, 세상의 전부이기도 하다. 이별을 예감한 세상에서, 헤어짐이 예고된 거리에서, 결국 이런 사소함들이 남는다. 내일이면 다시, 지겹도로 다시 마주할 별 거 아닌 사소함들. 다시 만난 '한동안의 여자 친구' 카나에(우에노 쥬리)와 길을 걸으며 츠네오는 눈물을 터뜨리고, 또 한 켠, 할머니, 오래된 집, 그 많던 책들, 어쩌면 모든 걸 잃은, 하지만 다시 돌아온 조제는 전동 휠체어를 가졌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쿠루리의 '하이웨이.' 상실은 길바닥의 요동치는 울음으로 터져나오고, 이별은 어제에서 어김없는 도착한 오늘의  풍경을 걸어가고, 그 짧은 시절의 뒷모습은 오직 그곳에만 남아있다. 나이를 먹었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고작 한 뼘의 뒷모습. 딱 그 만큼의 상실을 기억한다. 

https://youtu.be/H0jXfEx0h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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