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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26. 2020

내겐 가장 그럴싸한 거짓말
자비에 돌란의 '마미'

이건, 아마 영화가 태어난, 내겐 가장 커다란 이유다.


2015년 가상의 캐나다, 새 정부의 집권, 그렇게 도입된 S18 법안. 영화를 볼 때면 나와 닮은 누군가, 혹은 어떤 장면에서 바보같은 망상을 하고는 하는데, 자비에 돌란의 2014년 영화 '마미'를 보며 그 어찌하지도 못하는 사념을 멈출 수가 없다. 다분히 자기 반영적인 스토리의 얼개를 가져와 140여 분의 영화를 만들면서, 자비에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지만, 시작과 함께 제시되는 건 2015년 가상의 캐나다라는 공간. 영화라는 두 자의 프레임은 가끔 그렇게 도망을 치기에 꽤나 유용하 공간이다. ADHD 증후군을 앓는, 아빠의 죽음 이후 이탈을 하기 시작한 16의 소년, 스티브에게 자꾸만 나의 어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오늘이 스쳐갔다. 이건 어김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출구를 찾지 못한 이단아의 1년 남짓이고, 영화는 그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폭발하는 아마도 '가장 스티브'의 시간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애정 결핍, 감정 조절 장애, 과도한 폭력, 그를 수식하는 건 이렇게 음흉한 이곳의 언어이지만, 애초 스티브가 태어난 자리는 이곳이 아니다. 시설에 수용됐다, 집에 돌아왔다, 엄마와 일상의 틀을 넘는 수준의 폭언을 주고받고, 어쩌다 그가 찾게 된 '그나마의' 출구는 의외의 맞은 편 여자의 움츠러든 오늘이다. 왜인지, 아마도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말문을 닫아버린 전직 고등학교 교사 카일라. 흉터진, 뒤틀린 날들을 바로잡는 건 정해진 길 위에 데려오는 애씀과 무리가 아니고, 그 곁에 다가가는 또 하나의 굴곡진 오늘이다. '마미'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영화 '마미'에서, '마미', 엄마는 중요하다. 영화의 타이틀이 가지는 무게 이상으로 그 두 단어는 영화의 보이지 않는, 불가능의 목적지를 향한다. 오로지 알게된 세상에서 스티브의 세계는 엄마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렇게나 싸우고, 증오하고, 하지 못할 말들을 퍼부우면서도 그곳에 돌아온다. 물론, 전형적인 뮌하우젠 증후군의 서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마미'의 주어는 결코 평생을 바라봤던, 별 볼 일 없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따내고,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겨우 그렇게 사는 마흔 중반의 엄마, 디안이 아니다. 방화, 폭력 혐의로 수 백 만불의 합의금을 지불해야 하게 된 상황에서, 디안은 평소 추근거렸던 지방 법원 직원에게 '몸을 팔' 생각을 하지만, 스티브는 그렇게 현실적인, 이곳이 만들어놓은 불순물의 세계에서 그녀를 구출하려 한다. 아빠를 잃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결코 전형적이지 못한 엄마 아래 자라면서, 세상은 스티브를 ADHD 증후군 환자라 이야기하지만, 영화는 아슬아슬한, 위태로운, 치명적인 그의 한 조각 '삶'을 보석처럼 그려낸다. 언제 끝나버릴지 모를 거실 내의 무디한 팝 음악, 다시 폭발할 것 같은 스티브의 활짝 웃는 얼굴, 금방 추락할 것 같은 주고받던 말들의 별 거 아닌 한 마디, 이 모든 게 이 영화를 이곳에 정착하지 못한 세계, 위태로움 그 자체로 지켜낸다. 살아가기 위한 시간이 아닌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위한 시간.  그렇게 타협 없는, 비현실적인, 동시에 가장 해방적인 영화. 어차피 현실을 살면서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이런 시간의 140분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는 하루가 있다. 그건, 아마 영화가 태어난, 내겐 가장 커다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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