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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pr 03. 2020

멀리서 보면 '이토 상',
가까이서 보면 '오또상'

이 영화적 꼼수는, 내게 상냥하기 그지없다.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내가 알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곱씹어보게 될 일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도 집에서, 고작 2천 걸음을 걸으며 보내던 중, 넷플릭스에서 어쩌다 클릭한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お父さんと伊藤さん)'는 묘하다. 주인공 아야(우에노 쥬리)는 아빠 뻘 나이의 남자와 동거하지만 그건 그저 어쩌다 벌어진 일이고, 그런 딸을 알고도 아빠는 화를 내지 않고, 같이 파르페를 먹으며 그 사실을 알게된 서른 무렵의 남자가 아야의 전 남편인지, 헤어진 애인인지, 설마 오빠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간략히 말하면, 아야(우에노 쥬리)와 동거하는 이혼남 이토 씨(릴리 프랭키), 아야의 오빠 키요시(하세가와 토모하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아버지 격인 오토 상(후지 타츠야)과 함께 살(았)던 또 한 집, 종종 이모인 사에카(와타나베 에리)는 등장하지만, 그건 얼마 전 세상을 뜬 아야의 엄마를 대변하는 듯한 포지션에 가깝고, 영화는 조금 다르지만 사실 별 다르지 않는 나날을 덤덤하게 훑어간다 .현실의 고정관념이랄지, 퀘퀘묵은 편견이랄지, 선입견, 일상을 좌우하는 각종 틀을 들이대면 분명 크게 진동할 영화가 바라보는 건, 그저 창밖에 조금씩 꽃을 피우는 화단이다. '우연히 술을 마시러 갔다가, 어쩌다 또 가고, 또 가고...' 이토 씨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아야의 이 문장은 마침표를 찍기도 전, 같은 이불을 덮고있는 헝클어진 둘의 아침에 도착해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기준, 타인의 시선, 남을 의식하고 짊어지는 삶의 무게에 열변을 토하고 있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무료하고, 영화는 별 의지기 없다. '이토 상과 오또 상', 이 타이틀은 일본어로 결국 한 자 차이인데, 어쩌면 영화는 그런 별 거 아닌 '한 자'의 틈새를 들여다 보는지도 모른다. 연출을 한 타나다 유키는 오래 전 아오이 유우 주연의 '백만엔과 고충녀'를 본 적이 있는데, 세월은 흐르고, 그녀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간다. 



영화엔 두 번의 죽음이 지나간다. 몇 번의 무너짐이 스쳐가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찾아온다. 아내를 잃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반기지도 않는 아들, 딸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오또상'의 이야기는 독거 노인의 말년, 그런 가장 위태로운 혼자의 시간이지만,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 그렇게 틀에 박힌 진부한 톤의 스토리가 아니다. 갈 곳 없는 '오또상'에겐 사실 오래 전 빈집으로 남겨둔 산장의 2층 주택이 있고, 눈만 감으면 딸네든, 아들 집이든 언제든 눌러 붙을 수도 있고, 매일 아침 일어나 동네 몇 바퀴를 돌고 돌아올 정도의 돈도 있다. 세상이 모두 뉴스가 말하는 것처럼 의미있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 자 차이의 '이토 상.' 어느 순간부터 이 남자의 정체가 점점 신비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는 아야의 아빠 앞에서, 아빠의 행방불명 이후 아야 앞에서 자신을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라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아야에게 아빠를 떠넘기며 쌍둥이 자녀의 진학 입시를 이유로 꺼내들었던 키요시 역시, 아빠를 보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아내의 말 못할 사정이 있고, 그 아빠는 왜인지 작은 스푼이나 포크를 가게나 마트에서 몰래 주머니에 넣는다. 작지만 절대적인 일상의 실패와 아픔과 버티려는 몸짓과 외면받는 관계들. 그저 그런 것들이 굴런간다. 아빠로서, 딸로서, 아들과 아내로서, 혹은 나이차를 의식하는 20대 여자로서가 아닌, 가장 맨몸의, 사람과 사람의, 함께 살거나 살지 않는, 그런 1인칭 서사가 흐른다. 이토 상은 편하지만, 오또 상은 불편한, 왜인지 그런 얄궂은 현실이 몽연히 드러나고, 어쩌면 말 장난, 작은 트릭에 불과했던 두 중년 남자의 동거는 작은 현실을 구원하는, 집 밖의, 조금 더 큰 하늘을 바라보는 아침을 데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위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일본 영화의 서사는 조금 치사하지만, 말이 현실의 조각이라고 할 때, 흩어진 그 파편들을 서로 마주보게 하는 영화적 꼼수는 내게, 상냥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가까이서 보면 '오또상', 멀리서 보면 '이또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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