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기억한다는 건, 내일을 다짐한다는 건.
#01 박스오피스 성적이 예상치도 못한 하양세라 하고, 심지어 1위에 오른 작품이 5만도 찍지 못하는 요즘, 이 와중에 일본은 올림픽 걱정을 하곤하지만, 그간 들어간 엔만 생각해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불안도, 공포도 여전히 알 수 없이 퍼져가지만, 모든 걸 손 놓고 있는 날에 내일은 더디기만 하다. 싸고, 인디 아트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 극장이 3월까지 문을 닫았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려면 광역 버스를 타야하는 터라,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영화가 보고싶다. 지난 가을 도쿄 국립영화아카이브에선 흑백 영화를 복원하는 오오사와 씨와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고, 그가 얘기했던 '올림픽 기록영화' 특별전이 지난 달 그곳에서 끝이 났다. 르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1896년의 아테네 올림픽. 둘의 시작은 고작 한 해 차이고, 지난 하반기 일본에선 58년 도쿄 올림픽에 관한 드라마가 방영됐다. 이런저런 다사다난한 날들이 흘러간 뒤에 남아있는 어제를 차곡히 소장하고, 간직하는 조금은 이상한 오늘의 자리. NHK에서 방영된 '이다텐'은 쿠도 칸쿠로의 각본으로 1912년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마라톤 선수의 비화, 그리고 근대 올림픽에 쌓여있는 사람들의 눈물과 땀방울을 반 년에 걸쳐 그렸고, 오오사와 씨는 '그 마라톤 선수는 도중 쓰러져 근처 민가에서 치료를 받았고, 나중에 알고보니 반 년만에 골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라는 웃지못할 얘기도 했다. 어제를 기억하는 건, 아마 돌아볼 때 알게되는 애뜻함, 그리고 잊고있던 웃음 때문이다.
#02 어차피 자주 나가지도 않는 요즘이지만, 집에 틀어박혀 쇼핑만 하다보니, 어제는 주소의 '동'을 틀리더니, 오늘은 한 권을 주문했는데 '브루타스' 커피 특집편이 두 권이나 왔다. 처음엔, 실수? 웬 횡제?라며 실실 웃다, 인보이스엔 엄연히 1이 아닌 2가 적혀있다. 그나마 짙은 브라운데 아침 신문에 커피 마시는 남자의 일러스트 잡지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책을 산다는 건 읽지 않아도 배부르는 묘한 감각의 쇼핑이고, 아직 첫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책이 수두룩인데, 마츠다 류헤이와 아야노 고의 영화 '影裏' 원작 소설을 샀더니 영화 스틸로 표지가 바뀌어있다. 벌써 두 해 전 록뽄기의 '아오야마 북 센터'의 폐점 이후, 도쿄에서 유일한 '아오야마 북 센터'가 되어버린 오모테산도 지점은 창업 이후 처음으로 로고를 바꿨고, 그곳의 얼굴도 잘생긴 야마다 유 점장이 올린 글엔, 세월이 흘러 기존 로고에 대해 알고있는 직원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두 번의 폐점을 거쳐, 다시 문을 여는 어제를 지나, 어김없이 다시 책을 사러 가는 동네의 오늘. 로고를 디자인한 타카야 오오타는 마찬가지로 오모테산도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이고, 그 골목엔 내가 좋아하는 어제의 추억이 한움큼이다. 멋지고, 예쁘고, 새로운 건 많지만 다시 떠오르는 어제를 품은 오늘은 그리 많지 않고, 이상하게도 책 읽는 계절이 찾아왔다. 내가 아는 가장 최첨단의 서점은 시모키타자와의 고작 5평 남짓의 카페에 기생하는 '북 숍 트래블러'라고, 비가 오는 날이니까 별 쓸모도 없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리고 봄은 아직 더디기만 하지만, 사카구치 켄타로의 조금 이른 봄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