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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월 3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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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13. 2020

김종관의 '조제'를 기다리며

'미안하다'는 말에는 사실 더 많은 미안함이 담겨있다.


코로나가 흉흉하던 날, 김종관 감독을 만났다. 그의 촬영차 지방에 있던 탓에 만남은 한 달 즈음 미뤄졌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못다한 과제의 겨울인지, 기다리는 계절의 봄인지, 마음은 뒤숭숭했다. 코로나는 어감은 조금 귀엽기도 한데...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곤 한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의 '폴라로이드 작동법'에 여느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몰래 마음을 졸였고, 두 편의 장편에서 잠시 마법처럼 도착했다 스쳐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그저 애절해서 슬펐다. 그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는 꽤 많은 사과를 여기, 저기, 그리고 그곳에도 해야만 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에는 사실 더 많은 미안함이 담겨있다. 날들은 왜인지 자꾸만 그곳에 등을 돌려, 나의 작은 책 두 권도 잠시 멈춰있지만, '조제'를 기다리는 계절은 곁에 다가왔다. 김종관 감독의 2020년의 '조제'를 기다리며. 코로나 시절에 마스크를 쓰고, 그를 만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는 이별 후 담담하게 흘러가는 오후 돌연 울음을 터뜨린다.  물고기 헤엄치는 러브호텔, 조개껍질 베드, 멜랑꼴리한 네온 빛이 세상의 전부일 것 같던 시절이 끝이나고, 영화엔 쿠루리의 적적한 멜로디가 쓸쓸히 흘러간다. 김종관의 ‘페르소나’ 중 ‘밤을 걷다’엔 끝나버린 시절의 남아있는 것들이 아른거리고, 떠나갔지만 떠나가지 않은 것, 밤을 방문한 듯한 꿈의 한 폭이 어둠 속 몽연한 세계를 산책한다. 현실은 어둠처럼 비어있지만, 영화는 남아있는 것들을 바라본다. 김종관 감독의 책, ‘사라지고 있습니까(2010)’와 ‘나는 당신과 가까이에 있습니다(2019)’의 10년과 같이. 밤이 되어서야,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 김종관의 영화는 지금, 영화적 우연을 걷고있다.

-싱글즈 3월호, 인터뷰 기사 중에서


https://youtu.be/xmu0CCNxgyQ

*그리고  영상은, 참고로 (제 얼굴 관계로) 작은 화면으로의 시청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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