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라디오'란 라디오 DJ를 시작하며 무라카미가 꺼낸 문장은 다소 늦은 이모작의 시작이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인터뷰도 하지 않고, 노출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인생도 60이 되니, 다른 것 하나 쯤 있어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달리기와 레코드, 그리고 위스키와 고양이... 잡지를 만들 던 시절, 'OO의 루틴' 같은 기사를 쓰며 여러 유명인들의 일상을 훔쳐본 적이 있는데, 하루키는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짧은 에세이가 완성될 듯 싶었다. 인생의 이모작은 나이가 들어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뿌려놓은 씨앗을 나이가 들어 수확하는 일...그런 착각을 품고 우리는 종종 뒤늦은 꿈을 꾸는지 모른다
2018년 여름, 'RUN & SONG'란 테마로, 일회성 방송으로 시작한 그의 라디오는 어느새 16회를 맞이했고, 지난 2월엔 어느 주부의 연애 상담을 함께해주기도 했다. 코로나가 만연하기 시작했던 무렵엔 '스테이 홈' 스페셜을, 여름이 끝나버릴지 모를 8월 중순엔 '써머 스페셜'을... 선곡은 물론 방송 전체를 아우르는 무라카미 라디오는 주기도 들쑥날쑥 게으른 농부와 같지만, 어쩌면 그런 새로운 리듬의 계절을 그는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하루키가 고민중인 주부에게 건넨 '인생을 조금 소설처럼 사는 법. 도움은 되지 않지만, 왜인지 도움이 될 것도 같다.
고민맘: 저는 남편을 많이 좋아하고 제겐 너무 소중해요. 그런데 얼마 전 첫눈에 반했던 남자에게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많이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정말로 격렬해서, 6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솔직히,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결혼을 했으니까 식사를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적절치 않겠죠. 지금까지 나름 성실히 살아왔는데 참 한심하죠...무라카미 씨, 어드바이스 주세요.
무라카미 : 소설가로서는 그렇게 하지(만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으니까, 만나러 가죠. 리스크가 무서워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요. 소설이 되지 않고요. 그래서, 소설가로서는 '만나러 가세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현실적인 것들, 그러니까 생활들. 그 남자를 만나면 리스크를 본인이 떠안지 않으면 안돼요.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가볍게 만나러 가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역시 저로서는, 그렇게 만나고 싶으면 만나러 가는 게 순리가 아닌가 생각해요. 만약, 혼란이 일고 마음에 진통이 남는다면, 그게 인생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인생은 섹스랑 마찬가지로... 혼란도 없고, 마음의 진통도 없이 섹스가 끝났다면, 그건 방식이 잘못된 거에요. 인생도 똑같이, 혼란도 마음의 진통도 없는 인생은 방식이 잘못된 거에요. 추억을 만드는 건 매우 중요하고, 추억이라는 건 인생의 연료가 되지요. 나이를 먹으면, 그 연료가 있고 없고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큰맘 먹고 만나러 가세요. 그렇죠, 네코야마 씨?
인생은 섹스와 같다고 하지만 소설과 인생은 달라 하루키의 책을 덮고 나는 다시 비오는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고작 지금, 단지 이곳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길 바라는 요즘, 하루키가 프레디 맥코이의 'Pet Sounds'를 들려주며 건넸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한 마디는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
"가수는, 자신의 마음 속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듣는 이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곳에 공감이 태어난다."
이 말은 분명 소설에도 접목시킬 수 있을 거에요.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 속 구멍을 메우기 위해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있는지 몰라요. 또는 노래를 부르고, 문장을 쓰고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공백을 품고있다는 건 사람에게 소중한 거에요. 물론 너무 그런 것만 의식하면 지쳐버리겠지만, 가끔은 자신 안의 어떤 결함에 소리를 기울이면서, 인생이 오히려 조금 풍부해집니다.
전에 없는 대대적 공백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공백'을 걷고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공백'은 다른 어떤 나만의 결함과 달리 너와의 거리가 없고, 그렇게 지금 필요한 건 구멍을 메우기 위한 시간 = 하루키의 글, 혹은 그의 소리를 곁에 두고 왜인지 '스키야키'가 되어버린 사카모토 큐의 1961년 노래 '위를 바라보며 걷자'를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가 좀처럼 그치지 않는 주말, 비닐 우산에 떨어진 빗방울에 비친 하늘이 유독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루키가 얘기했던 '맑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음악, 그리고 기분들.' 위를 바라보며 그의 라디오가 흘러가는 내 방의 작은 오후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