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방과 담배. 그 만큼의 얼터너티브.
#01 자비에 돌란의 '막심과 마티아스'를 배우 스다 마사키가 사이하테 타히의 시로 낭송하는 '네게서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로'의 이야기. 이보다 황홀한 영화 마케팅이 있을까. 사이하테 타히의 詩야, 그간 쇼핑몰 계단이랄지, 동네 골목이랄지, 심지어 호텔 어매니티에서 쓰이며 포에틱한 변주를 보여줬지만, 이 영상을, 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돌란의 영화가 보고싶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들을 말로 하려 할 때, 생겨나는 너와 나의 무수한 상처들. 그러고보면 막심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지.
조금이라도 마주친다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상처 자리가,
나 자신이라는 걸 알고있어?
너의 앞에서, 나는,
마주치고싶어 참을 수가 없어.
통증이 아름답다는 말 따위 하지않아,
나는 단지, 너를 갈구하고 있어.
피, 괴성 소리가, 내게서 흘러나와,
나는 그럼에도, 너의 손바닥에 안겨있고 싶었어.
상처 자리가, 미치도록 외로워.
누구보다 나를, 깊게 상처입히는 사람,
너의 손은 따뜻하다고, 나는 어서 빨리 너에게 말하고 싶어.
#02 ‘지금부터 이 책 읽을 거에요’ 도쿄의 책방 후즈쿠에는 좀처럼 외출이 힘든 요즘, 서로의 독서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작은 사이트 하나를 오픈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혹은 일고 난 후 그 기록을 점 하나로 남기면되는데, 어두운 밤 지도 위 원하는 곳을 클릭하면 노란 불빛 하나가 켜진다.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 그리고 번역을 해보고 싶어 주문한 책이 도착한 어제, 몇 장을 넘기고 서울 언저리, 아마도 내가 있을 듯한 자리에 불빛을 하나 켰다. 5시간 후면 꺼진다고 하고, 아마 그 즈음이면 다른 어딘가에 다른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를 펴겠지. 좀처럼 불을 끄지 않는 이 시절의 어느 밤.
#03 JT, 일본의 담배 인삼공사, JT의 캠페인 카피 '사람의 시간을 생각하다(人の時を、思う)'를 오래 전부터 좋아했는데, 인류 역사상 흡연자의 어깨가 이렇게나 좁아질 수 있을까 싶은 시절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담배의 시간을 생각한다. '다르니까, 사람은 사람을 생각한다(違うから、人は人を思う).' 코로나 이후 집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딪힘이 늘고, 오해가 쌓이고, 없던 싸움도 늘어나며 일본에선 최근 이혼 상담이 급증했다는 뉴스가 들려오는데, 고작 담배를 이야기하던 그 한 문장을 그들은 이곳에 데려온다. '다르니까, 사람은 사람을 생각한다.' 담배 한 모금 등장하지 않는 이 광고에 흡연자를 위한 변명은 어느 한 마디도 없지만, 자연스레 사람을 바라보고 나는 그저 그 와중에 담배 한 가치가 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