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하테 타히는 어떻게 도쿄의 포에틱한 내일이 되었나
일본에서 개봉한 자비에 돌란의 영화 '마티아스 막심'은 한 편의 시가 되어있었다. 몽롱하게 눈부시는 미장센이 치명적인 그의 영화는 늘 많은 대사를 품고도 감각 안에 흘렀고, 일본의 영화를 선전하는 마케팅 사람들은 그의 신작 '마티아스와 막심'에 사이하테 타히의 시 한 편을 얹었다. 제목은 '상처 자리(傷痕).' '조금이라도 스친다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상처 부위가...'로 시작하는 이 시는 배우 스다 마사키가 낭송을 했다. 화면을 둘로 나눠 서로의 서로 다른 '오늘'을 보여주는 영상은 상처를 품은 두 사람의 경계, '마티아스와 막심'의 사이의 '와', 어찌될 지 모를 두 세계의 아슬아슬한 쓰라림처럼도 느껴진다. 영상, 예고편의 길이는 1분 04초. 영화로 시를 쓴다면, 이런 3자간의 부유하듯 스쳐가는 혼잣말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했다. 스다 마사키는 "상처를 이겨낼 마음이 있을 리 없고, 그저 하염없이 괴로운. 하지만 그 모습은 가장 아름답고, 사람에겐 사랑이 있다, 그렇게 알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코멘트했다. '마티아스와 막심'과 사이하테 타히와 스다 마사키와 어떤 '사랑'과.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은 어쩌면 돌란의 영화와 닮았는지 모른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겨울의 시간은 / 아주 조금 불그스레진 볼조차 / 별과 같이 눈부셔서 / 히이라기 열매 사이를 빠져나가 / 착해지고 싶은 마음도 / 강해지고 싶은 마음도 / 약해지고 싶은 마음도 / 거짓말쟁이로 있고 싶은 것도 / 이 온통 새하얀 한 해에 묻혀 / 새해를 향해."
-2017년 크리스마스에 쇼핑몰 '루미네' 계단에 쓴 詩
사이하테 타히는 86년생 시인이다. 말하자면 이미 30대 중반을 넘겨버린 한 때 젊었던 시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 가장 많은 '시의 활동'을 벌이고 있고, 내가 그녀의 시를 처음 알게된 건 2017년 크리스마스 쇼핑몰 '루미네'가 진행한 일련의 캠페인 광고에서였다. 아무런 제목도 없는 다섯 편의 시를 사이하테 타히는 쇼핑몰 계단에, 지하철 외벽에 한 구절, 한 구절을 고요하게 적었다. "생각해보면 말이란 건 일상 어디에도 있잖아요. 시가 지면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 다른 어디에 있다고 해서 별 다를 건 아니라 느껴요." 사이하테 타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시의 루미네 캠페인은 시를 빌려왔다라기 보다, 사이하테의 시 다섯 편에 기반해있고, 그에서 파생한 것들이 크리스마스 시끌벅적한 거리 한 켠을 조용히 울렸다. 지금의 도쿄를 그녀에게 대입해 본다면, 장르와 경계를 무화하며 드러나는 도시의 새로운 화법은, 말들이 물결치는 시집 마지막 장, 정색하고 이야기하는 딱딱한 건조체의 해설문에 어울릴 법도 싶다. 도시와 시, 말과 언어, 그리고 말과 말. 처음 그녀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펼쳤을 때, 나는 도쿄의 시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보았을 때, 만약 아름답다 생각하거나, 시라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아름다움이나 시가 눈을 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아름다운 말도, 그것만으로는 시가 아닐지 모르고, 한 명의 사람이 그걸 읽고 그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감정이 그 말에 반응하고, 피어나는 것으로, 말은 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히라노 케이치로의 기억이 흐릿한 소설 초입엔 시나가와 항구에서 기린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거대한 콘테이너 박스를 나르는 타워 크레인의 높게 솟은 철제를 보고 남자 주인공은 "기린 같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이 대목과 스친 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어제인데, 도쿄를 걷다보면, 창 밖의 무엇도 아닌 풍경과 마주칠 때 종종 이 비유, 혹은 망상을 떠올리곤 한다. 회색 벽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우울. 빌딩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아찔함과 같이. 수 백년 도쿄의 역사를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곳의 몇몇 표정, 장면은 이따금 나를 다시 그곳에 데려간다. 도쿄엔 무수한 타인이 수도 없이 많아 느껴지는 체온이 있고, 이른 새벽 콘비니에 남아있는 밤자락, 뒷골목 구석의 자판기가 보여주는 무심한 하루의 표정이거나, 지하철 플랫폼엔 왜인지 부끄러운 설렘, 용기같은 게 시작하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하나의 하루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어나 잠들고 다시 일어나고 다치고 상쳐주고 받고 외면하고 소외받으며 걸어가는 오늘과 오늘들. 이시이 유야의 2017년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보았을 때, 아마도 그런 외롭지만 슬프지 않은, 슬프지 않지만 외로운 도쿄, 도시를 가장 잘 스크린에 옮겨낸 작품이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타워 크레인에서 기린을 바라본 영화. 제목에서 보이듯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사이하테 타히가 새삼 새로운 건, 단지 그녀의 시집이 여타 다른 시집들에 비해 잘 팔려서 만은 아니다. 물론 그녀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은 별 거 아닌 별(死んでしまう系の僕らに)'은 3만 부가 넘게 팔렸고, 그 작품은 출간이 시작되자 마자 중판이 확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일본의 평균 시집 판매 부수는 수 백 부. '사랑은 별 거 아닌 별'이란 제목은 이해가 되는 (자)의역이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 풀어보면 '죽어버렸는지도 모를 우리들에게'. 사이하테는 "죽음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건 시가 아니라 생각해요. 사회가 정해놓은, 이미 정해진 의미 안에 머물면서 답습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제겐 있어요"라고도 말했다. 그녀의 시엔 '죽음, 死'가 참 많이도 나온다. 그럼에도 사이하테의 시는 화장품 광고에도 쓰이고, 모두가 기쁘고 웃어야 하는 크리스마스에 낭송되고, 얼마 전엔 사이타마 시 오미야(大宮) 역 동쪽 출구 인근 뒷골목에도 쓰여졌다. '오늘만큼은 당신이 믿은 것들이 진실일지도', '당신과 당신과 당신을 잊어버린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봄은 난시(乱視)에요.'라는 두 줄의 시. "정해진 책이나 마음을 먹고 찾아보는 시가 아니라, 우연히 길을 걷다 무언가 마주치며 보게되는 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라고, 인터뷰마다 줄곧 말했던 그녀의 소망은 얼마 걸리지 않아 실현되었다. 금이 간 콘크리트 바닥에 쓰여지는 시. 일상 속에서 우발적으로 시를 만나버릴 때, 어쩌면 그게 진짜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말이 있고, 하지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은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안다'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답을 건네기 위해 시를 쓰고있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무언가 정해진 골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3년 전 도쿄와 아오모리를 오가던 여름, 사이하테의 네 번째 시집을 끼고 있었다. 그 해 부산에 초청된 이시이 유야의 영화와 관련된 일을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 즈음의 도쿄는 유독 아픔으로 기억되어 있다. 몸에 맞지 않은 유카타를 입은 채 아사쿠사 골목 카페에서 "이거 무슨 책이에요?"라고 그가 물었는데, 나는 어서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픈 마음 뿐이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것도 이제는 조금 부끄러운 추억꺼리가 되었지만, 다시금 사이하테 타히를 마주한 건 가장 지금의, 도쿄의 변화를 훑던 지난 해 복판 어딘가에서였다.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고 새로운 빌딩이 새워지고 시대가 저물고 다시 일어나는 문턱에서 우연히, 우발적으로 어쩌면 자연스레 그녀의 시와 재회했다. 사이하테 타히는 지난 3월 교토 호텔 객실 방에 시를 썼다. 추억 속 그 무렵의 내게 필요했던 건, 혹시 이런 자리, 말로 하지 못할 마음을 감출 수 있는 어느 이불 한 구석은 아니었을까. 호텔은 이름도포에틱하게도 she is. 사이하테의 시가 쓰여진 3층 객실엔 '시의 호텔'이란 별칭이 붙었다.
"본래 '시는 책 안에만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위하감을 느낍니다. 생활 속에서는 어디든 말이 있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나 시는 기본 어디든 쉽게 스며들거라 생각합니다. 그곳에 경계선을 긋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달까. 그러니까 '시를 전시한다'는 시상(事象)이, 그만큼 특수하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습니다. '시인데 여기있어, 의외댜'라는 게 싫은 느낌."
근래의 호텔이라면, 장식하던 아트는 체험하는 아트로, 1박이라 하지만 자고 일어나기에 바빴던 'stay'는 컬쳐와 레져를 오가며 잠을 미루고, 심지어 잠을 거부하는 호텔마저 생겨나고 있지만, 사이하테가 시를 써내려간 호텔은 시와 함께 잠에 드는 어김없이 1박, 수면의 자리다. 시라는 게 사실 있는 듯 없는 듯, 낭송을 한다 해도 낮은 데시벨이 흐를 뿐이고, 혹여 장식을 한다해도 여타 시끄러운 인테리어에 묻히기 십상인지라, 시로 호텔을 만든다고 할 때의 그 도입은 분명 지금의 호텔, 변화하는 객실들과 같은 문을 열 수는 없다. hotel she is 는 홈페이지에 '역 뒷편의 넓게 뻗어있는 쿠죠(九条) 에리어 구석, 교토 중앙을 가로지르는 카라스마도오리(烏丸通) 로드 사이드에 조용히 자리하는, 여행의 끝 오아시스 hotel she is 교토'라고 썼는데 2016년 교토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그곳의 콘셉트는 '소셜 호텔'이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L&G는 "홋카이도에서 엄마와 같이 여관을 할 때 해피 아워를 정하고 무료로 바를 오픈했더니 숙박객 사이의 자연스레 교류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했다. 말하자면 '예정부조화(予定日調和)의 1박. 객실마다 다른 디자인과 가구, 콘셉트를 갖춘 부분은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을 연상케도 한다. 그저 몇 번 지나칠 뿐인데 알고있는 내가 아닌 사람들. 눈인사를 하거나 안하거나. 다시 한 번 마주치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침이 겹치거나 어긋나거나. 어쩌면 잠에서 깨어난 사이하테 타히의 아침이 이런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이하테 타히의 호텔은 지난 해 겨울 12월부터 바로 얼마 전 30일까지 10개월간 문을 열고 닫았다. 호평에 입어 몇 개월 연장의 시간도 거쳤다. 하지만 이 생소한, 아마 세계 최초일지 모를 '시의 호텔'은 사실 사소한, 조금은 하찮은 시작에서 비롯되었다. 2019년 리뉴얼을 하며 she is 가 새로 지은 콘셉트는 '가장 끝(最果)의 오아시스', 그리고 사이하테 타히의 사이하테(最果). L&G의 대표 료자키 쇼코는 "단순히 '사이하테'라는 연을 제안을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어찌보면 말도 안될, 하지만 너무 사람같아 웃음이 나온다. 시를 적어내려간 호텔, 시를 품은 호텔은 그렇게 탄생했다.
객실엔 사이하테 타히의 시 구절이 이불, 어메니티, 침대, 방 열쇠와 머그컵, 샴푸와 린스를 비롯 일련의 욕실 용품에 쓰여있다. 가장 글씨를 적기 쉬운 벽지나 방문엔 물론 시 구절이 흐른다. 이곳에서 1박을 한 아트 큐레이터 코가네자와 사토시는 "시가 적혀있다, 놓여있다는 감각이 아닌, 그곳에 존재한다, 내가, 너가, 동물이 있는 것처럼 '있다(ある)'가 아닌 '살고있다(いる)',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감각이다"라고 술회했다. 사실 좀 과장이라 느껴지지만, 사이하테 타히는 말을 가장 말이게 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시의 호텔'에 대해 "시는 사람의 생활이나 숨소리에 녹아 흘러가는 것처럼, 그 사람 본인의 말로 흘러나온 것이길 바랍니다. 그건, 어쩌면 이런 '방'의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책, 종이가 아닌 방 곳곳에 쓰여지는, 살아 존재하는 단어들. 그런 생경함의 밤, 시와 함께 잠에 드는 새벽은 나에게 돌아오는, 그곳에 이불을 펴고 만나는 만나지 못했던 밤일지 모르겠다. 시는, 도시의 밤을 꿈꾼다.
"돌아간다는 것이, 어른이 되면 될 수록 어려워진다. 집 열쇠를 갖고있어도,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는다 해도, 열쇠도 없고 길도 몰랐던 어린 시절보다 더욱더, '돌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감각이 있다. 내가 고른 가구, 가전, 방을 마련한 곳에서, 왜인지 그곳에 몸을 뉘이는 것만이 '돌아간다'는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잘 갖춰 만들어놓은 장소가, 나에게 정말로 '딱 좋은 장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조금은, 멀리 떠나고 싶어집니다. "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시가 시대를 사는 법'이랄지, '시의 우리가 몰라던 활용술'이랄지, '시는 사실 (현실적으로!)도움이 된다'류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시도 아닌 무엇도 아닌 시에 대한 한탄, 혹은 감탄, 또는 도쿄의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잘라 말해, 사이하테 타히는 지금 가장 잘 팔리는 시인이다. 아이돌 가수의 가사도 쓰고, TV 광고에 몇 구절을 빌려주기도 하고, 포스트 카드나 마스킹 테이프와 같은 기념품은 물론 텀블러, 유리컵, 센베이와 같은 과자, 심지어 핸드 크림까지 제작된다. 그리고 지난해 요코하마, 그리고 올해엔 모빌을 활용해 전국 순회 대대적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가장 현실 적용 가능한 시의 활동을 사이하테 타히는 하고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쇼핑몰이 시를 낭독하고, 인스타그램에 시를 쓰고, 유튜브에 발표하는 지금 이 도시의 일상에서 사이하테 타히의 '시'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익숙할 수 없는 '말'의 발화되지 않은 말, 글의 쓰여지지 않은 글, 그러니까 시, 보이지 않던 도시의 표정을 드리우고 있는지 모른다. 현실 적용가능한 시라는 건, 시를 숨기고 살아가는 도시의 하루를 의미하고, 그렇게 우울했던 저녁 바다 건너 타워 크레인은 기린으로 보이기도 한다. 말에 저항할 때 말이 태어나는 것처럼, 나에게서 떠날 때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시는 도시와 도시 사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틈새에 현실의 글자를 적는다.
*참조한 인터뷰, 발췌한 사이하테 타희의 말, 그리고 가져온 사진 출처들 : hotelshekyoto.com, 美術手帖, cinra.net, tsutayatsite.japan, 産経新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