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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28. 2020

한류라는, 새삼 묵은지에 대하여

 J.Y.PARK의 Y는 미들 네임? 그런 시時차 아닌 시視차



좀처럼 듣고도 믿지 못하는 말이 있다. 근래 문제가 되는 페이크 뉴스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왜인지 진짜가 아닌 것 같아, 혹시나 뻥으로  부풀려진 이야기는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이야기들. BTS의 세계적 지위를 실감하게 된 건 몇 번의 '바람잡이'가 다녀간 다음이었고, 듣기 좋은 낭보는 때때로, 혹은 자주 실속 없는 뉴스일 때가 있다. '욘사마'와 한류를 이야기하기 시작해 20여 년, 지금 일본에선 4차 한류를 이야기한다. 2차, 3차도 아리송한데 4차? 근데 이건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코로나와 사느라 버거워 잊었을지 모르지만, 이맘때면 매년 우리가 했던 일은 얼룩진 한해를 얼마 남지 않은 한해 앞에 돌아보는 일이었다. 올해의 영화를 골라보고, 자축에 가까운 방송사 시상식에 한숨을 내뱉고, 서점가에 나붙은 '올해의 책' 리스트 앞에선 얼마 되지 않는 독서량에 좌절도 하고... 바다 건너 일본에선 그런 일례로 '올해의 유행어'들을 뽑는데, 올해엔 후보 리스트에 '4차 한류'란 말이 등장했다. 현빈,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함께. '노재팬'을 외쳤던 게 아직도 생생한데, 그곳에선 4차 한류를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후 새삼 멀어진 '거리'에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한류는 아직 죽지 않고 그곳에 있다.



'4차 한류'란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어김없이 두 편의 드라마 때문이다. 지난 겨울 방영됐던 '사랑의 불시착'과 국내에선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새로웠던 박서준의 '이태원 클라쓰.' 이 둘은 넥플릭스를 통해 일본에 건너가 팬데믹이 1차 피크를 찍던 3월과 6월 사이 1, 2위를 돌아가며 나눠가졌다. 집안에 틀어박힌 시절 국경을 넘나드는 OTT 서비스망이 짝짝꿍 상승 효과를 일으킨 예일 뿐이겠지만, 일본에선 둘을 '팬데믹 시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은혜를 입은 K드라마'라고 소개한다. 2000년 초반 tvN, 그리고 JTBC로 대두되는 'TV 드라마의 구조 개혁'의 결과라는 해석도 뒷따른다. 하지만 그보다 믿을만한 건 TV 방영 후 찔끔찔끔 에피소드를 올리는 일본과 달리 본방과 동시에 리얼타임으로 넥플릭스 송출을 '강행'하는 한국의 대범함이 코로나 시절, 집콕에 주효했다는 지점이다. "한국 드라마는 분량도 7~80분으로 길고, 대부분 16회 완결이라 긴 편이다. 본국에서 한 회가 끝나면 바로 넷플릭스에 송출. 매주, 리얼타임으로 세계 송출하는 방식은 여유를 갖고 찾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후소샤'가 발행하는 뉴스 사이트 '하버 비지니스'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https://youtu.be/kSL4EUmKM-8


여전히 요즘같은 시절 4차 한류는 막연해 잘 다가오지 않지만, 두 편의 드라마가 지핀 일본에서의 오랜 한류는 새삼 기세가 좋다. 무엇보다 20여 년 전 '오바상'들이라 불리는 중년 여성을 넘어 중년 남성, 그리고 젊은층까지 골고루 K 드라마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박서준은 최근 주요 잡지 3~4곳의 커버를 장식했다. 야후 재팬을 열면 매일같이 K가 붙은 연예 뉴스들이 1면을 장식하고, 박서준이 출연한 비비고의 김치 광고는 얼마 전 공중파를 탔다는 소식이 그 1면 한쪽을 차지하기도 했다. 더불어 유명 댄스 그룹의 멤버가 '박새로이'의 머리를 따라한 사진은 닮은 듯 안 닮은 듯, 나름 화제가 되고,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는 공식 석상에서 스스럼없이 박서준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얼마 전엔 '아사이 신문 출판'이 '집에서 한국(おうち韓国)'이란 제목의 책도 출판했는데, 최근 중판이 확정됐단 소식이 들려왔다. 이쯤되면 코로나가 불러온 네 번째 환류의 귀환? 4란 숫자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이론이 있지만, '겨울 연가'와 배용준, 동방신기와 KPOP, 트와이스와 K패션, 그리고 지금의 넷플릭스와 코로나 궁합의 순이 아마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은, 확증적 의심이 든다.



'4차 한류'와 '사랑의 불시착'처럼 2020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네 번째 한류에 새로 이야기되는 말 중 하나는 '한류계'라는 말이다. 라디오 DJ이자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 말은, 80년대 시부야 컬쳐를 지칭하는 '시부야계(系)'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후루야는 근래 한일 합작으로 시도되는 새로운 포맷의 콘텐츠 제작을 일컬어 '한류계'라 부르고 있지만, 최근 일본에 불고있는 익숙하고 낯선 한류의 바람은 '붐', 혹은 매니아 층의 전적인 지지로 지속되는 국지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 생활 양식으로 스며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지난 10월 도쿄 한복판 시부야에 문을 연 국내 편집숍 ALAND는 오픈날부터 매장 앞에 긴 줄을 세웠고, 아르바이트 모집엔 정원 30명에 9백 명 넘는 응시자가 몰렸다고 한다. ALAND와 독접 계약을 한 어패럴 기업 'ADASTRIA'의 히구치 카즈유키는 "한국같은 것은 일본에도 많지만, 지금은 '한국 그 자체(韓国ドンズバ)'를 소구하는 타겟이 있다"고도 말한다. 또 한 번의 한류가 아닌 세로운 세대의 등장?  박진영이 소니 뮤직 재팬과 함께 진행한 '니지(虹) 프로젝트'는 '제2의 트와이스'가 탄생한다며 화제가 되고, 그는 요즘 J.Y. PARK로 꽤 유명 인사처럼 불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건 좀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근래 일본에서 화제가 된 K문학이 '82년생 김지영' 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서점에선 '한국 문학' 페어가 심심찮게 열리곤 했다.


서점에서 진행중인 '한국 문학 페어 코너'(右), 아사히 신문엔 '혐한'이 아닌, 진짜 모습을 알게하는 '문학'을'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左) 


이렇게 그럴듯한 뉴스만 늘어놓고 보면 '4차 한류'란 말에 신뢰도는 좀 올라갈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절 '한류'는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애초 그곳의 짝사랑은 종종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고, 근래 차기작 '브로커(가제)'를 송강호, 강동원 그리고 한국 제작진과 함께한다고 밝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미 5년 전 쯤부터 영화제에서 만나고 술 마시면서 나누던 이야기가 실현되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저 멀어져서 알게되는 것일 뿐. 코로나 시절의 '거리'가 알게해주는 것들. 혹은 시대가, 세대가 변해가고 있을 뿐. '부심'은 잠깐 어깨를 들썩이게 할 뿐 금새 식고 말지지만, '한류'는 어느새 세월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멀고도 가까워진 시대, 새로운 관계는 그렇게 태어난다.


*이 글은 허프포스트와 동시 게재됩니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tokyo-diary_kr_5fbef5d8c5b68ca87f815d01?utm_hp_ref=kr-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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