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이 코로나를 살아가는 '센토'의 #OOO
사우나, 동네 목욕탕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위험군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얼마 전 도쿄의 오랜 목욕탕, 80년 역사의 '히노데유' 홈페이지엔 '목욕은 집에서'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일본에선 센토(동네 목욕탕)를 공중 위생을 위한 장소라며 영업 제한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그곳의 4대 타무라 유이치는 '오지 말아달라'는 글을 올렸다. ” 와줬으면 하는 마음은 가득이지만,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다 안전해지면 놀러와주세요." 목욕을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배짱인가 싶지만... 거기엔 "아마 망하지는 않을테니까요"라는, 작은 희망의 문장도 더해져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1년 여. 오늘도 사우나발 확진자는 터져나오고, 맨몸에 사우나는 여전히 좀 찜찜하기만 한데, 바다 건너 그곳엔 동네를 뎁히는 온탕이 문을 연다. 도쿄 한복판 쇼핑몰 옥상에서 센토 팝업숍 같은 행사가 열리고, 탕안에서 생뚱맞게 요가를 하고 수업을 듣기도 한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그저 평범한 하루의 조금 수상한 모습. 참고로, 타무라 유이치의 '히노데유'는 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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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센토, 동네 목욕탕은 요즘 좀 세련됐다. 1965년 정점 이후 인력의 고령화, 시설의 노후로 점점 사라진다는 뉴스가 들려오는 가운데, 목욕탕, 센토가 붐이다. 두 해 전 패션 브랜드 BEAMS는 도쿄의 센토 550곳과 도시의 센토를 다시 바라보는 '센토의 추천'이란 제목의 컬러버래이션을 진행했고, 요즘 인기가 좋은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바 유는 센토의 노렌을 센치한 도시 감각으로 새로 그렸다. 골목 곳곳의 사우나를 탐방하는 드라마 '사도'는 '고독한 미식가'의 사우나 버전인 것만 같아, 센토, 사우나의 1인칭 서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성공했다는 평도 들었다. 그저 손님의 중심축이 중년 남성, 노인층에서 2030 세대로 이동하고 있을 뿐인 이야기기도 하지만, 그곳에 쓰여지는 새로운 이야기는 새삼 신기하다. 한 마케팅 리서치 회사는 "세대 교체가 이뤄지며 젊은 점주가 등장했고, 라이프 스타일 안에서 자신만의 센토를 즐기는 사람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는데, 그러고보면 다무라 유이치는 올해로 서른 아홉. 코로나로 문을 닫은 도쿄 시나가와쿠의 '코야마 센토'를 이어받은 건, 센토와 아무런 연이 없던 벤쳐 그룹 대표 스물 두 살의 사와라 마사유키다. 창업을 하듯, 스타트업을 시작하듯, 그들이, 세로운 세대가 움직인다.
코로나는 돌연 나타나 세상을 쪼그라뜨리고 몰라보게 변화시키는 줄 알았지만, 그 안에 익숙한 어제와 오늘이 흘러간다. 얼마 전에 패션을 하는 지인은 지방 어딘가에 넓은 오프라인 라운지 매장을 열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좀 바보같이. 때로는 장사를 해도 된다는데 오지 말라고 말하는 타무라 유이치의 모순 덩어리와 같은 오늘을 품고. 하지만 이런 바보같고, 때론 모순 가득한 날들은 어김없이 변화로 세월을 사는 도시 곁에 있어, 그 안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움의 내일이 열린다. 다무라 유이치는 센토에서 고구마도 구워먹고, 남여탕을 서로 다른 장르의 클럽으로 변주해 '후로야(風呂屋, 목욕탕) 가 아닌 '플로워'(floor, フロア)를 연출하고, 배우 이세야 유스케와 함께 맨몸으로 수업을 듣는 '맨몸의 학교'를 여는 등, 기상 천외한 딴짓을 벌이지만, "그저 '이곳서 할 수 있는 것을 궁리했다"고만 말한다. 말하자면 센토의 보이지 않던 쓸모가 시작된다
때로는 보지 못한 '쓸모'를 뒤늦게 가져와 센토의 '자리'를 확장하기도 한다. 조깅이 한창 유행일 무렵 도쿄에선 달리기를 마친 후 센토에서 몸을 닦는 '센토 조깅' 코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요즘 도시를 가장 떠들석하게 하는 키워드 '융합'의 맥락에서 커피 브랜드 '네슬레'가 커피 한 잔을 내놓았고, 홍보팀 후쿠시마 히로시는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기초 대사를 올려주고, 지방 연소를 촉진, 포리페놀에 의해 자외선에 의한 기미를 예방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 그게 전부라는 좀 별난 이벤트 '사우나 마츠리'를 기획하는 '스파 사우나 협회'의 타나카 카츠키는 "예전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근엔 참여자 중 30% 정도가 여자"라고도 이야기한다. 유행과 첨단의 도시 도쿄라 해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들. 조깅과 커피, 그리고 센토가 한 자리에 모이는 '하루'는 이렇게 태어난다.
센토는 일본에서 사양산업이라 불린(렸)다. 코로나 이후 예상치 못한 장애 요소들은 더욱더 오랜 동네의 작은 사교장을 위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센토의 매력을 알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도시에 결여되어 있던 '커뮤니티'의 하루를 그곳에서 발견한다. 아트 디렉터로 살다 5년 전 70년 역사의 '기라쿠유'를 이어받고, '젊은 세대에게 센토의 매력을 알린다는 취지의 미디어 '도쿄 센토'를 창간한 야노 쇼타로는, "기존의 일을 하다 의문을 느꼈고, 보다 새로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치를 찾다 센토를 떠올렸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를 통해 센토의 역할을 점점 확대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야노가 건축 컬쳐 미디어 웹진 'BEYOND ARCHITECTURE'와 나눈 인터뷰 중 한 마디다.
기존의 세월이 쌓인 동네 센토에서 '내일'은 코로나 콧바람에도 휘청이기 쉽지만, 오랜 세월의 깊은 품속에서 걸어나온 도심 한복판의 센토는, 아직 할 말이 많다. 외출이 꽁꽁 묶인 시절, #를 달고 조금 낯선 일상을 누리듯, '센토에서 OO'는 코로나 시절 새로운 시대의 문장이 되고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센토에서 고구마를 먹고 요가를 하는 건 낯설고, 무엇보다 위험해 주저하게 되지만, 동네라서 가능한 일. 결국은 사람 사는 세상이고, 단골이라 보장되는 신뢰, 그렇게 지속되는 '하루'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게 어쩌면 도시가 기억하고 있는 '센토'의 내일이 아닐까. '사교'가 '커뮤니티'로 변해가는 길목에서, 동네의 센토는 그렇게 또 한 번의 불을 지핀다.
*이 기사는 '허프포스트'와 동시에 게재됩니다.
** 기사 중 히노데유의 타무라 유이치 씨 이야기는, 저의 첫번째 책 '도쿄의 시간 기록자들' 중 #02번째 이야기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496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