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제안하는 코로나 시절의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세상은 종종 알 수 없는 일들로 굴러간다. 뚜렷한 이유나 인과 관계가 아닌 우연이나, 운, 혹은 기적같은 말로 설명되는 것들. 가령 지난 10월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이 개봉 3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한달을 조금 넘겨 2000만 관객을 달성(11월 25일 기준)했다는 뉴스는 놀람을 넘어 황당하기만 했다. 누구나 알고있듯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이고, 일격을 당하고 아직 일어서지도 못했는데 대체 무슨 영문의 히트작인지... 세상은 수상하기만 하다. 그런 이유로 '귀멸의 칼날'은 개봉 3일간 세계 극장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을 피하기 위해 3밀을 이야기하며 가게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 일본의 이 애니메이션은 이런 말도 안되는 돈을 벌어들였다. '궤멸의 숫자'들은 왜인지 현실이 되었다. 세상은 종종 수수께끼 투성이고, 어쩌면 이건 '영화라서 가능한 일, 영화적 인과관계'는 아닐까, 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긁적였다.
코로나 시절의 역대 최대 흥행작만큼 이해불가한 일이라고 하면, 근래 일본의 몇몇 감독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상한 행보'다. 대부분의 제작사가 몸을 사리며 개봉을 미루고 제작을 중단하며, 극장들은 영화가 모자라, 클래식 공연 심지어 온라인 게임 대회까지 중계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은 단 3개월 만에 장편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8일만에 죽어버린 괴수와의 12일간의 이야기.' 제목부터 어딘가 수상하기만 한데, 스토리는 한 남자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워주는 '캡슐 괴수'의 알(말 그대로 알)을 구입하고 사육하는, 그 과정을 인터넷 화상을 통해 타인들과 공유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남자를 배우이자 감독인 사이토 타쿠미가 연기했고, 근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논(のん), 영화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던 히구치 신지 감독 등이 '화면 너머 화면'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촬영 현장 한 번 펴지 않고, 모두가 리모트로 각자 찍은 영상을 모아 조각조각 붙이듯 완성됐다. 유튜브 용으로 기획돼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선공개됐고, 2021년 1월 27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담이지만 손바닥만한 '캡슐 괴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솜씨다.
코로나는 돌연 세상을 바짝 움츠리게 한 것만 같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이와이 슌지의 '리모트 영화' 뿐 아니라, 배우로 출연했던 사이토 타쿠미는 HBO 아시아 시리즈 'FOODLORE' 중 '벤토'로 지난 12월 4일 발표된 Asian Academy Creative Award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자숙하는 동안 집에서 보았던 '사랑의 불시착'과 함께 수상해서 몸이 후들거렸습니다"라는 말도 더했다. 'FOODLORE'는 싱가폴의 거장 에릭 쿠 감독이 총지휘하는 시리즈, 세상은 어쩌면 더 가까워지고 있다. 참고로 '사랑의 불시착'은 최우수 드라마 상을 수상했다. 이에 더해 극장을 잃어버린 감독들의 '극장 밖 애씀' 또한 활발하다. '두더지'로 일약 주목을 받고 근래엔 회화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소노 시온, 국내에선 '행복한 목욕탕'이 3년 전 개봉했던 나카노 료타, 그리고 오다기리 죠의 인기가 한창일 때 독특한 코미디 영화로 분주했던 미키 사토시 등 다 섯 명(팀)의 감독은 이름부터 리얼 그대로인 '긴급사태선언'이란 옴니버스 영화를 아마존 프라임 전용으로 공개했다. 일본의 아마존 프라임은 시청 제한이 참 많은데...극장이 문을 닫은 자리, 아마존, 유튜브, 넷플릭스는 제2의 극장이 되는걸까. 일상은 돌연 질문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영화의 선전 방식도 좀 수상하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프라인 상의 관계를 보다 더 의식한 듯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지난 9월 25일 개봉한 쿠사나기 츠요시 주연의 '미드나이트 스완'은 무려 925초, 15분 25초 분량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보통의 영화들이 1분 남짓 길면 3~4분의 예고편을 제작하는 걸 생각하면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이 오리지널 스토리는 예고편이 단편 영화 수준 러닝 타임이다. 이게 딱히 코로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예고편'의 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가 이 925초엔 있다. 기나긴 예고편을 '한참' 보고있으면, 트랜스젠더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소녀 사이의 아슬아슬한 외로움의 서사는, 애초 1~2분 짜리 그릇에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확신이 들기도 한다. 더불어 정반대의 지점에서 코미디언 테라카도 지몬의 첫 연출작 'Food Luck 식운(食運)'은 6초 짜리 예고편을 100번 연속 뿌리는 '100연발 X 6초' 마케팅을 벌이고, 배우 스다 마사키는 요즘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도의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목소리를 빌려주며(나레이션) 연기보다 바쁜 '부캐'의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마티아스와 막심'의 예고편은 요즘 가장 인기인 시인 사이하테 타히가 영화를 위해 새로 쓴 시를 스다가 직접 낭송하는 포맷을 취했다. 전에 없던 이 '크레에이티브'들은 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새삼 묘해지는 시절, 세상은 더 많은 물음표로 채워진다.
기존처럼 영화를 만들 수도, 볼 수도 없는 시절, 오히려 돌아보게 되는 건 영화와 관계된 OO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이후 모든 촬영이 스톱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계속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의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고, 찍어놓은 영화의 재고도 언제 동이날지 모를 일이다. 극장의 사정으로 돌아오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좌석의 절반 정도만 열고 장사를 이어갔던 일본 극장가에선 '귀멸의 칼날' 개봉과 동시에 좌석수 제한 조치를 해제해버렸다. 흥행이 기대될 작품이기 때문이란 이유였는데, 그에 상응하는 대책으로 팝콘과 콜라를 비롯 극장 내 매정 운영은 금지시켰다. 그저 꼼수를 꼼수로 뗌질하는 바보같은 모습처럼 보이기만 하지만, 사실 알 수 없는 게 더 많은 요즘이다. '긴급사태선언' 중 '고독한 19시'를 연출한 소노 감독은 "점점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영화 하나하나 피와 폭력이 늘 낭자하던 그의 이번 작품은 본인 표현대로 "이솝 우화는 아니지만 그런 풍의 영화"가 되었는데, 코로나가 참 무섭구나 싶기도 하면서 영화는 어김없이 세상과 함께 만들어가는 120여 분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답이 하나가 아닌 시대', 수많은 물음표 곁에서 영화는 또 하나의 말도 안되는 리얼리티를 꿈꾸고, 이와이 슌지의 8일에서 12일간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그런 이상은 셈법은, 그래서 때때로 가능해진다. 세상이 돌연 영화같아져버린 시절, 현실이 새삼 영화를 물어왔다.